‘노동귀족’ 자발적 포기·청년층 취업 앞장선 모델 배워야
2012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에서도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구상에는 이미 100만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유독 큰 관심을 끄는 이유가 뭘까?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총자산 54조, 연매출액 30조에 이르고, 8만5천명의 노동자와 금융·제조·유통·지식 부문의 사업체를 거느린 거대한 다국적 기업집단이다. 하지만, 몬드라곤에는 특정 가문이나 대주주의 지배가 없다. 노동자이면서 조합원인 3만5천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소유권과 경영권을 행사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이다.
세계경제가 저성장국면으로 접어들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더욱 중요해진 지금, 일반기업이든 노동자협동조합이든 잘나가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는 않다. “그래 너희끼리 잘먹고 잘 사는구나!” 하지만 몬드라곤은 그 점에서도 예외적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기업목표는 이윤 극대화나 기업가치 극대화가 아니다. ‘고용의 확대’라고 명시적으로 못박고 있다. 노동자 조합원들은 입사할 때 1만4천 유로(약 2천만원)의 출자금을 내고, 동일업종 노동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1년에 한차례 출자금에 대한 배당을 누린다. 다만, 배당금은 출자금 계좌에 적립됐다가 퇴직할 때에 찾아갈 수 있다. 30년 일한 조합원들의 누적 출자배당금은 평균 20만 유로(약 2억9천만원)이다. 연금은 따로 받는다. 스페인에서 이 정도면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몬드라곤은 50여년 동안 연평균 10%의 고속성장 가도를 달렸다. 몬드라곤 노동자들이 일반 영리회사의 주주들처럼 제몫만 챙기려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급여와 배당을 지급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100만 유로(약 14억6천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퇴직 때의 배당금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몬드라곤 사람들은 ‘노동 귀족’의 풍요가 아니라 해마다 더 많은 청년들을 동료 노동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량한 노동자’의 길을 선택했다. ‘고용없는 성장’과 ‘수익률 중심의 배당 극대화’에 집착하지 않고, 함께 일자리를 나누고자 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 마니아’로 빠져드는 이유이다.
원주는 한국에서 협동조합 네트워크가 가장 활발한 도시이다. 몬드라곤처럼 협동조합 기업집단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싹을 틔우고 있다. 굳이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를 거명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이 지역사회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오래된 ‘정신적 유산’을 저장하고 있는 곳이다.
원주가 저성장시대를 통과하는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성지, ‘같이 먹고 사는 모델지역’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협동조합을 바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몬드라곤이 아니라 가까운 원주를 방문하고 원주를 고민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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