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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원전 온배수 ‘콸콸’…주꾸미 없는 ‘주꾸미 명품마을’

등록 2012-06-12 20:10수정 2012-06-13 13:12

전북 고창군 구시포항 진입로의 풀밭에 조업을 포기한 어민의 어선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전북 고창군 구시포항 진입로의 풀밭에 조업을 포기한 어민의 어선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 영광원전으로 어장 잃은 고창 구시포항
주꾸미·새우 등 풍부했는데…
원전 증설·온배수 통로 만든뒤
물길 바뀌고 퇴적물 쌓여 황폐
전문가들도 “어장 기능 잃었다”

한수원 10년째 ‘보상 배째라’
피해보상 않기로 한 약속 내밀며
“보상금 주라” 재판부 권고도 묵살
군과 점용허가 갱신 싸고 소송전

구시포항(전북 고창) 어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다. 주꾸미, 새우, 숭어가 지천으로 잡히던 어항이 폐허로 변한 탓이다. 사달이 벌어진 건 2002년 한국수력원자력의 영광원전 5·6호기가 가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원전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배수는 인근 바다의 생태계를 바꿔놓았다.

전북 고창군 구시포항 입구에는 ‘주꾸미 명품마을’이라는 화강암 비석이 놓여 있다. 긴 밧줄에 빈 소라 껍데기가 줄줄이 달린 주낙을 늘어놓으면, 알을 낳기 위해 구시포 앞바다를 찾은 주꾸미들이 하나 걸러 들어차 있던 구시포항이었다.

<한겨레>가 구시포항을 찾은 지난달 30일, 구시포항에선 예전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주낙은 제멋대로 엉켜 먼지 쌓인 채로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이맘때면 중하(새우의 일종)잡이 준비에 분주해야 할 고깃배 10여척은 아예 수풀이 우거진 뭍에 올라와 시퍼런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고창 구시포에서 낚싯배와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영근(45)씨는 “영광원전에서 온배수를 내뿜고 1㎞가 넘는 방류제를 쌓은 뒤로 수온도 높아지고 물길도 바뀌어 이제는 주꾸미도 중하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주낙을 늘어놓으면 그대로 다 돈이라 한줄이라도 더 놓으려고 어민들 사이에 다툼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주꾸미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몇해 전부터는 수산시장에서 주꾸미를 떼어 와 손님들께 내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주꾸미 없는 ‘주꾸미 명품마을’이 됐다는 말이다.

구시포항에 어떤 변화가 있던 것일까. 고창·영광군 앞바다는 ‘칠보 해안’이라 불릴 정도로 해산 자원이 풍부했다고 한다. 3~4월에는 주꾸미, 5~6월에는 중하, 여름·가을엔 잡어를 잡고, 겨울에는 숭어를 낚았다. 장어의 치어를 잡는 것도 소출이 쏠쏠했다. 그런데 2002년 영광원전이 5·6호기 추가 원전을 가동하고, 온배수 배출 통로를 만든다며 1132m 방류제와 342m 돌제(퇴적물 방지 및 수심 유지를 위한 인공 둑)를 바다를 가로질러 만들고 난 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온배수 배출량이 늘고, 조류의 흐름도 바뀌게 된 것이다.

영광원전이 1초에 쏟아내는 온배수는 300t이 넘는다. 365일 24시간 내내 바닷물보다 섭씨 7~8도나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여름이면 바닷물 표면이 최고 섭씨 41도까지 오르고, 겨울에는 유독 온배수 배출구 쪽에만 안개가 끼곤 한다. 이 지역을 조사한 연구기관의 결론도 비슷하다. 군산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는 2005년 “고창 해역의 17㎞ 범위까지 수온이 섭씨 1도 이상 올라 생태계에 변화가 생겼다”는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또 전남대학교 수산과학연구소도 2006년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영광·고창 지역의 어장은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내용이었다. 고창군에서 어업권을 가지고 조업을 하던 어민은 230여명 되는데, 지금은 기껏해야 30여척만 바다로 나가는 실정이다.

방류제와 돌제 탓에 생기는 퇴적물도 문제다. 뜨거운 온배수를 먼바다로 내보내겠다며 1㎞가 넘는 인공 수로를 만든 셈인데, 오히려 원래 물길을 가로막았다. 이 지역 조류는 영광 앞바다에서 고창 앞바다로 남북을 오가는데, 길목이 막히다보니 조류가 회오리치듯 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퇴적물을 싣고 온 해류가 제대로 빠지지 못해 구시포 해안에는 퇴적물이 쌓이게 됐다. 군산대 연구보고서는 “2년마다 1m씩 퇴적물이 쌓이고 있다”고 밝혔다. 펄에 살던 저생생물의 터전 위로, 1년마다 50㎝ 두께 지붕이 덮이고 있는 셈이다. 한 어민은 “예전에는 ‘끌빵’만 끌어도 조개가 무진장이었는데, 요즘은 새로 쌓인 펄이 썩어가고 있어 조개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30일 오후 2시께 물이 빠진 구시포 앞바다는 펄이 ‘一’자 모양으로 균일한 게 아니라, 일부분이 기형적으로 돌출돼 있었다.

관광객도 줄고 있다고 한다. 따뜻한 물에 몸 담그러 오는 피서객이 없기 때문이다. 어민 차성현(60)씨는 관광객들이 ‘왜 이렇게 물이 뜨겁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원전 온배수 때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더 께름칙해하지 않겠느냐”며 “수심이 낮아 햇볕에 데워진 것이라 말하곤 한다”고 했다. 여름 한철 장사한다는 횟집과 민박집 등도 피해를 보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생계가 막막해진 어민들은 피해 보상을 원하고 있지만, 원전 운영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10년째 ‘감감무소식’이다. 구시포의 어민들이 정식 어업권을 허가받은 것은 1995년, 이미 영광원전이 가동된 뒤였다. 이 탓에 고창군은 어민들의 어업권에 ‘부관’(조건)을 붙였다. ‘온배수로 인한 피해보상 청구는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민들은 이 부관 한줄이 ‘주홍 글씨’가 될 줄은 몰랐단다.

물론 어민들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5·6호기 원자로가 추가 가동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창군청과 한수원을 찾아가 “추가 피해가 생기면 어쩔 거냐”는 항의를 했다. 이에 고창군은 2002년 3월 한수원에 방류제와 돌제를 쌓기 위한 공유수면 점용허가를 내주면서, “추가 온배수 피해와 방조제에 의한 퇴적물 피해조사를 실시하고, 보상을 실시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전남대·군산대 수산과학연구소의 보고서는 이 탓에 실시된 조사였다. 이에 한수원은 ‘피해 기여율을 다시 조사하자’는 등의 이유를 대며 피해 보상을 거부했고, 그러던 중 5년마다 갱신하도록 규정된 공유수면 점용허가 연장 신청 시점이 2007년에 돌아왔다.

고창군은 피해 조사 등을 핑계로 5년여 동안 보상을 미뤄온 한수원에 어민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계속해서 ‘부관’ 탓을 했다. “보상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군청 쪽에서는 “2002년 방류제와 돌제를 쌓으면서 추가 피해는 보상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설득했다. 고창군과 한수원은 “부관이 붙어 있는 어민들도 피해보상 대상자인지 해양수산부에 질의하고, 그 답변 내용에 따라 노력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고창군은 이런 합의 이행을 조건으로 새로 허가를 내줬다. 해양수산부에서 “부관이 붙은 어업권자들도 피해보상 대상자”라는 답변을 받은 뒤에도, 한수원 쪽은 “해양수산부에 재질의를 하자”는 등 계속해서 이의 제기를 했다.

온배수와 퇴적물 문제는 이제 한수원과 고창군의 다툼으로 바뀌었다. 고창군 관계자는 “합의 사안까지 무시하고, ‘그럼 원전 가동 중단하라는 말이냐’고 버티는데 도리가 없더라”고 말했다. 고창군은 2008년, 조건부로 내줬던 공유수면 점용허가에 대한 실시계획 인가를 취소해 버렸다. 그러자 한수원은 고창군수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결과는 고창군의 승리였다. 1심 법원이었던 전주지법 행정재판부는 한수원에 “어민들한테 295억원의 보상금을 주라”는 조정 권고를 내놓기도 했다. 행정법원은 법적으로 조정을 권고할 권한이 없지만, “어민들의 피해가 장기화될 수 있다”며 중재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수원은 재판부의 권유도 무시하고 항소·상고를 했다. 2010년 대법원은 한수원의 패소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고창군은 그 뒤 한수원에 “피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이행 명령을 6~7차례나 내렸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시 2012년, 공유수면 점용허가를 갱신해야 하는 시점이 돌아왔다. 한수원은 기다렸다는 듯 지난 2월 다시 갱신 신청을 했고, 고창군은 3월2일 이를 반려했다. 한수원은 다시 고창군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으로 시간만 벌며, 근거도 없이 바다를 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어민들이 지난 5월18일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영광원전 5호기가 가동되기 시작한 2002년 5월20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인 10년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한수원은 여전히 법으로 가리면 될 일이라는 태도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법적으로 해야 할 보상은 전부 했기 때문에, 부관이 붙은 어민들에 대해서까지 보상할 이유는 없다”며 “전국 각지에서 온배수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일방적인 민원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의 행태에 질린 고창군은 지난해 어민들의 어업권에 붙어 있던 부관을 모두 삭제했다.

고창/글·사진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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