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재벌의 나라 ② 재벌, 청년실업을 부른다
재벌은 국외 투자·채용 늘리고 ‘고용 8할’ 중기는 점점 몰락
재벌은 국외 투자·채용 늘리고 ‘고용 8할’ 중기는 점점 몰락
대기업-중소기업 순이익률 격차 3배 이상 벌어져
삼성전자 “국외 투자는 국내 고용과 관련없다”
전경련은 ‘규제완화’ 선물받고 신규채용 ‘뻥튀기’ 삼성·엘지·현대차·에스케이 4대 그룹의 매출액(2010년 제조업 기준)은 463조원에 이른다. 4년 전인 2007년 말보다 63% 급증했다. 금융위기 여파에도 전체 상장사 평균 매출증가율(44%)을 크게 웃도는 성장을 한 것이다. 사업 확대와 인수합병으로 덩치가 커진 만큼 일자리도 많이 늘었을까? 4대 그룹의 지난해 말 임직원 수는 50만4000명이다. 4년 전보다 5만8854명, 13.2% 늘었다. 매출 신장세에 견줘 5분의 1 수준이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7.8%, 현대차가 12.3%, 엘지가 33.7% 증가했다. 에스케이는 6.2% 줄었다. 재벌 그룹의 매출이 아무리 늘어도 고용은 좀체 늘지 않는다는 ‘고용 없는 성장’의 좋은 사례다. 재벌 그룹의 비대화는 오히려 고용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입지를 좁히면서 청년실업과 양극화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4대 그룹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부가가치 기준으로 20% 안팎에 이른다. 그러나 고용의 규모는 전체 2424만4000명의 2.1%에 불과하다. 4대 그룹이 신규로 만들어내는 일자리도 100명 중 5.9명에 그친다. 4대 그룹의 경제력은 급속히 커지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고용 창출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듬해인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들이 청와대에서 만났다. 노 대통령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은 세계적 추세이고 국민의 뜻”이라며 ‘시장개혁 3년 계획’을 발표한 직후였다. 총수들은 회동에 앞서 연초보다 크게 늘린 투자와 고용 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다. 이때부터 재벌 그룹들이 해마다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고 전경련이 이를 취합해 발표하는 관행이 굳어졌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와의 만남이 이뤄질 때마다 총수들이 투자와 고용 확대를 ‘선물’하는 모습도 재연됐다. 전경련은 지난해에도 30대 그룹의 신규채용이 12만4000명, 투자규모는 114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없다. 전경련이 발표한 연간 고용규모는 우리나라 전체 연간 신규 취업자 수의 25~30%에 이른다. 실제 채용 규모는 발표된 수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권력이 재벌과 손을 잡는 명분만 제공했을 뿐이다.
재벌그룹들은 최근 몇년 동안 끊임없이 투자와 고용 창출을 외쳐왔다. 그러나 실제 고용의 87.7%는 중소기업(자영업 포함)의 몫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은 전체의 12.3%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4대 그룹 고용은 2.1%로 축소된다. 대기업, 특히 재벌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이들의 일자리 창출 여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국내 산업의 매출 10억원당 평균 고용인원(취업유발계수)은 8.7명이지만, 30대 그룹의 취업유발계수는 1.03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대기업의 투자 확대가 고용을 늘리고 성장률을 높인다’는 낡은 패러다임에 여전히 갇혀 있다고 지적한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재벌 그룹의 주요 모델은 글로벌 생산·판매 시스템을 갖춘 수출 제조업인데, 이들의 덩치가 커지고 생산성이 향상될수록 고용 흡수력은 반비례해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고용 창출 여력이 큰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십수년째 ‘말로만 육성’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재벌 계열 대기업들의 순이익률이 상승하고 있는 것과 달리 중소기업의 순이익률은 하락하고 있는 까닭이다. 경제개혁연구소 분석을 보면, 2000년대 초만 해도 중소기업의 순이익률은 3%대로 대기업보다 높았다. 그러나 2004년을 정점(4.31%)으로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1.77%로 떨어졌다. 반면 대기업은 2000년 1.13%에서 2006년 5%대로 올라선 뒤 줄곧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순이익률 격차가 세 배 이상 벌어졌다. 특히 경기가 나쁠 때는 중소기업의 이익 하락폭이, 경기 회복기에는 대기업의 이익 상승폭이 더 커지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위축과 몰락은 그대로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 재벌그룹의 팽창과 비대화가 단순히 ‘고용 없는 성장’에 그치지 않고 사회양극화와 청년실업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특히 재벌그룹들이 사업장을 국외로 이전하면서 이런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매출의 80%가 국외에서 발생하는 상황에서 시설투자는 국외 위주가 불가피하다”며 “국외 투자는 현지 일자리를 늘릴 뿐 국내 고용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재벌 그룹의 ‘강력한 수직계열화’ 체제도 중소기업 처지를 어렵게 만들고 전체 고용의 양과 질을 옥죄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발주 관행은 상위 한두 협력사에 대부분의 물량을 몰아주는 ‘집중 배분’ 방식이다. 생산 물량을 몰아주는 대가로 단가를 더 낮추겠다는 셈법이다. 이 경우 탈락업체의 고용 감소는 물론이고, 계약업체 역시 납품단가 인하에 따른 수익률 감소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게 된다.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사인 한 주물업체 사장은 “(물량 증가로) 외형은 늘었지만 수익률은 떨어져 비용 구조조정 압력은 더 심하다”며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높아지는데 급여를 더 늘려주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진방 교수는 “대기업 위주의 고용 시장이 고착화하면서, 제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광범위한 사내 하청 등 고용의 질 또한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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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가 열린 지난해 1월24일 케이티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코오롱 이웅렬 회장, 대림 이준용 회장, 두산 박용현 회장, 현대중공업 민계식 회장, 에스케이 최태원 회장, 삼성 이건희 회장, 이 대통령,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엘지 구본무 회장,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 에스티엑스 이희범 회장, 동부 김준기 회장, 동양 현재현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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