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국무총리, 허창수 전경련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왼쪽부터)이 지난해 3월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만찬에서 정몽구현대기아차 회장의 제안으로 건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재벌개혁 시리즈
삼성전자 갤럭시에스(S)2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회사원 김서민씨는 씨제이(CJ)의 햇반과 김으로 아침을 때웠다. 제일모직의 로가디스 정장을 입고 엘지(LG)패션의 해지스 코트를 팔에 걸친 김씨는 롯데 레쓰비 캔커피를 들고 주차장으로 나섰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김씨는 현대로템이 운영하는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하철은 스마트폰에 빠진 승객들로 초만원이다. ‘에스케이(SK)텔레콤의 3세대(G) 통신망이 부쩍 안 터지는데, 4세대 엘티이(LTE) 엘지유플러스로 바꿔볼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회사에 도착했다. 삼성전자 컴퓨터를 켜고 일과를 시작했다.
입고 먹고 쓰고 보고 듣고…
재벌 제품·서비스가 지배 30대 재벌 연매출 1134조
국내총생산의 96.7% 달해 부의 집중 넘어 사회 장악
무소불위 권력자로 고착화 아내 박선이씨는 엘지전자 진공청소기를 들고 집안 청소를 마쳤더니 벌써 오전이 끝나간다. 친구들과 점심때 만나기로 한 박씨는 남편이 두고 간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시동을 걸었다. ‘기름이 떨어졌네.’ 집 근처 지에스(GS)칼텍스로 갔다. 점심은 씨제이푸드빌의 ‘비비고’에서 먹고, 신세계 스타벅스에서 수다를 떨었다. 이마트에 들러 현대카드로 결제하고 저녁거리를 장만했다. 삼성물산 래미안아파트에는 한진택배에서 두고 간 물건이 있었다.
일반 개인의 일상에서 재벌그룹은 공기와 같은 존재다. 어디를 가도 이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재벌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적으면 10개, 많으면 30개 정도다. 이들이 개인의 삶을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오늘날 재벌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없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30대 재벌그룹의 전체 자산은 1460조5000억원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 1172조원보다 300조원 가까이 많다. 연간 매출은 1134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96.7%에 이른다. 1980년부터 2011년까지 30대 재벌의 자산은 70배, 매출은 48배로 불어났다. 1990년대 들어 급상승한 30대 재벌의 매출액은 2000년 들어 상승 속도가 주춤하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급증했다. 재벌(총수)의 부가 곧 국부가 됐고, 재벌 중심 사회체제는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롯데 등 5대 재벌그룹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훨씬 심각하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의 분석을 보면, 국내총생산에 견준 5대 그룹의 매출액 비중은 2001년 49.5%에서 2010년 55.7%까지 늘어났다. 1980~90년대 2세 승계가 이뤄진 뒤 갈라져 나온 친족그룹까지 포함하면 이들의 몸집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삼성·신세계·씨제이·보광·한솔 등 범삼성그룹, 현대차·현대백화점·현대중공업·성우·한라 등을 아우르는 범현대그룹, 엘지·지에스·엘에스(LS)·희성 등 범엘지그룹을 포함한 5대 재벌그룹의 국내총생산 대비 매출액 비중은 2001년 59.0%에서 2010년 70.4%까지 커졌다. 인구의 0.1%도 안 되는 재벌 총수와 일가친척들이 나라 경제력의 70%를 쥐고 흔드는 셈이다.
부의 집중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재벌은 일반 국민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치·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막강한 지배력을 구축해왔다. 그 반대쪽에는 재벌에 짓눌린 99.9%의 사람들이 있다. 사라져가는 골목상권을 바라만 보는 자영업자들, 자투리 일감마저 뺏긴 중소기업들, 독과점과 담합으로 호주머니를 털리는 소비자들, 매일 구조조정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재벌 제품·서비스가 지배 30대 재벌 연매출 1134조
국내총생산의 96.7% 달해 부의 집중 넘어 사회 장악
무소불위 권력자로 고착화 아내 박선이씨는 엘지전자 진공청소기를 들고 집안 청소를 마쳤더니 벌써 오전이 끝나간다. 친구들과 점심때 만나기로 한 박씨는 남편이 두고 간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시동을 걸었다. ‘기름이 떨어졌네.’ 집 근처 지에스(GS)칼텍스로 갔다. 점심은 씨제이푸드빌의 ‘비비고’에서 먹고, 신세계 스타벅스에서 수다를 떨었다. 이마트에 들러 현대카드로 결제하고 저녁거리를 장만했다. 삼성물산 래미안아파트에는 한진택배에서 두고 간 물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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