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대안은
실물경제 생산성 제고 없이
금융혁신 시도 허상 드러나
민생 챙길 방편 모색해가야
실물경제 생산성 제고 없이
금융혁신 시도 허상 드러나
민생 챙길 방편 모색해가야
아랍에서 시작된 민주화 열풍이 유럽을 거쳐서 세계 경제의 심장부인 미국 월가에 상륙했다. 아랍에서의 출발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었지만, 지금은 경제적 민주주의가 초점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드러난 부의 불평등 혹은 ‘손실의 불평등’이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사실 ‘아랍의 봄’ 역시 금융위기의 충격이 세계 경제의 주변부에 집중된 결과이며, 런던 등지에서 터져나온 유럽 청년들의 ‘분노의 여름’도 금융위기 이후 고강도 긴축의 영향이 서민층에 고스란히 응축된 탓이다. ‘미국의 가을’이 더욱 쓰린 것은 위기의 작동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의 생산성을 제고하려는 노력 없이 단지 ‘금융혁신’을 통해 황금 알을 낳으려던 시도가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위기는 거품 붕괴의 책임을 그 주범에게 지우기보다는, 서민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오히려 월가를 비롯한 글로벌 고도금융(투자은행·헤지펀드 등 대형 첨단복합금융)은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회계조작, 정부보증과 세제지원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수익과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다. 실물경제에 대한 원활한 자금지원이라는 본기능은 늘 뒷전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이처럼 실물과 유리된 금융정상화의 본질을 문제 삼고 있다. 경제는 망가지고 서민들은 고용불안과 주거박탈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민생안정 대신에 이른바 ‘시스템 안정’에만 정책 에너지가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랄까, 월가 내부에서도 조금씩 반성의 목소리가 전해진다. 워런 버핏이 미국의 바닥난 재정을 대신하여 민생을 챙길 방편으로서 제안한 ‘슈퍼리치 증세’가 일례다. 유럽에서도 구멍 난 세수를 메우고 금융과잉을 규제할 수단으로서 금융거래세가 핫이슈다. 아마도 이런 고민들은 부의 불평등 해소는 물론 ‘금융의 디엔에이(DNA) 개편’을 위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세상의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른바 금융선진화를 꿈꾸면서 금융자유화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요즘의 저축은행 사태는 물론이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입증된 국내 금융권의 취약성은 “자유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제 그 대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jangbo@hanaif.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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