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 “1996~97년 엔지니어링 주식 대량매입”
이재용씨, 지분팔아 12배 차익 올려…삼성 “우연의 일치”
이재용씨, 지분팔아 12배 차익 올려…삼성 “우연의 일치”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이 이건회 회장의 외아들 재용(삼성전자 전무)씨의 ‘재산 불리기’에 적극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22일 “삼성화재에 이어 삼성생명도 지난 1996~97년 재용씨가 삼성엔지니어링과 에스원 보유 주식을 매각할 즈음에 해당 주식을 집중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개혁연대는 앞서 재용씨가 지난 98년 11월 제일기획 보유지분을 매각하기 전에 삼성화재가 이 회사 주식을 대량 매입해 ‘주가 떠받치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삼성생명의 사업보고서 등을 보면, 1996년 말까지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이 전혀 없던 삼성생명은 6개월 뒤인 97년 6월에는 39만주(지분율 4.3%)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난다. 재용씨는 97년 2월 삼성엔지니어링 보유 주식(47만주)을 주당 5만8500원~6만원에 모두 내다 팔았다. 당시 재용씨는 이 회사 주가가 최고점에 올랐을 때 지분을 매각해 취득 원가의 12배인 260억원의 차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 회사 주가는 재용씨 지분 매각 직후부터 급락해 6개월 뒤엔 2만6900원까지 떨어졌다.
삼성생명은 또 재용씨가 에스원 보유지분 26만주를 매각(96년11월, 97년2월)할 즈음에도 이 회사 주식 30만주(지분율 9.73%)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이 과정에서 ‘동일계열 금융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 5%를 초과해 취득할 수 없다’는 금산법 24조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삼성생명은 이에 대해 “97년 3월 ‘5%룰 조항’이 생기기 이전 취득한 지분이어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이 손실을 무릅쓰면서까지 보험 계약자 돈으로 재용씨의 매각 차익을 키우려 주가 떠받치기에 나선 정황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며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회사와 다른 주주들한테 손해를 끼친 명백한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이에 대해 “문제의 주식 거래는 계열 금융사의 자체적인 투자 판단에 따른 것이며, 금산법 위반은 당시 처벌·제재 조항이 없어 잘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다. 재용씨가 보유 지분을 팔고, 금융 계열사들이 해당 주식을 사들인 행위는 별개이며 우연의 일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2일 공개된 삼성 내부 문건을 보면, 재용씨는 에스원·삼성엔지니어링·제일기획 등 3개 비상장 계열사 지분 매각 대금을 종잣돈 삼아,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 등 그룹 지배권 확보에 필요한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나온다. 김 소장은 “금융 계열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법을 위반해 가며 특정 계열사 주식을 매입한 사실을 우연으로 볼 수 있느냐”면서 “재용씨의 경영권 승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다는 증거인 만큼 사법당국이 위법 행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산법 위반 논란에 대해서는 “그 즈음에 삼성이 다른 계열사간 지분거래를 할 때는 ‘5%룰’ 조항을 엄격히 지킨 사례가 있는데 잘 몰랐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금산법이 아니라 보험업법 위반 등으로 처벌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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