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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다닥다닥 14평 공장…패션시장의 새벽을 밝힌다

등록 2006-08-10 19:30

하루종일 미싱사가 박은 옷들은 저녁이 돼서야 단추를 달고 다림질을 하는 끝손질에 들어간다. 공장주인인 최명주씨가 여성 윗도리들을 펼쳐놓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조기원 기자 <A href="mailto:garden@hani.co.kr">garden@hani.co.kr</A>
하루종일 미싱사가 박은 옷들은 저녁이 돼서야 단추를 달고 다림질을 하는 끝손질에 들어간다. 공장주인인 최명주씨가 여성 윗도리들을 펼쳐놓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미싱사 부인-재단사 남편
디자인·생산·판매까지 ‘원스톱’
소매상 불야성 기나긴 하루
저무는 ‘유행의 고향’ 창신동 리포트
② 끝나지 않은 도전

최명주-홍금례씨 부부의 24시

창신·숭인동의 하루는 ‘드르륵’ 거리는 재봉틀 소리와 함께 돌아간다. 좁은 골목을 따라 벌집처럼 붙어있는 다세대주택마다 하루만에 옷을 ‘뚝딱’ 만들어내는 가내 공장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평범한 주택가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공장들이다. 숭인동에 있는 최명주(53)씨 공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AM 9:00~

최씨 공장이 문을 연다. 미싱사는 부인 홍금례(49)씨 혼자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6살 때부터 재봉틀을 밟았다. 33년째다. 홍씨는 “한 벌 당 공임이 4천원(봉제 2천원+재단 2천원)인데, 먹고 살려면 우리 공장에서 하루 40벌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 공장들은 청바지·숙녀복·아동복 등 저마다 전문 품목이 있다. 최씨네는 중년 여성 윗도리가 전문이다. 여름엔 남방, 겨울엔 점퍼를 만든다.

안감 달기→주머니 박기→어깨선 박기→소맷단 달기→옆솔기 박기→깃 달기로 이어지는 모든 공정을 홍씨와 미싱보조 최성순(49)씨가 익숙하게 해낸다. 디자인과 재단은 남편 최씨의 몫이다. 재단사는 대부분 남자들이다. 최씨도 1980년대 초 학원에서 재단을 배웠다. 카탈로그와 옆 매장 옷들을 두루 참고해 디자인과 재단을 한다.

그러나 유행이 눈 깜짝할 사이 바뀌는 캐주얼은 전문 디자이너가 있어야 한다. 이들 ‘디자이너’는 하루에 옷을 몇 벌 만들지 공장 사장과 협의해 결정한다. 캐주얼은 유명 연예인이 한번 입고 나온 옷을 그 다음날 바로 지어낼 수 있을 만큼 기동성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유행을 탄 옷은 늦어도 이틀이면 동대문 전체에 쫙 퍼진다. 중년 여성복 옷 도매 수익이 15% 수준이면, 캐주얼은 40%가 넘는다. 그러나 재고가 많고, 올해 인기있는 디자인은 다음해엔 통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높다.

PM 8:00~


해가 저물면 옷은 온전한 모양새를 드러낸다. 남은 것은 단추 달기와 다림질 뿐. 이런 마무리 작업은 보통 ‘시아게집’이라 불리는 끝손질집에 맡긴다. 하지만 최씨는 직접 한다. 한 벌당 1500원씩인 공임도 아깝지만, 저녁 때 한꺼번에 물량이 몰리는 시아게집의 품질도 만족스럽지 못한 탓이다. 최씨는 ‘시루시’(단춧구멍을 내는 작업)를 하고 단추를 다는가 싶더니, 금방 끝내고 한쪽 구석의 다림질 방으로 옷들을 싸들고 간다.

끝손질 집에선 한 벌 당 1분이면 끝나지만, 꼼꼼하게 하느라 시간이 세 곱은 걸린다고 했다. 도매시장이 문을 여는 밤 10시께까지 매장으로 물건을 나르려면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물건을 갖다 준 뒤에야 동네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들며 소주 한 잔을 걸친다.

AM 4:00~

평화시장 가는 길목은 관광버스로 가득 차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들이 타고온 차다. 길이 꽉 막혀 있는 일도 많아 이곳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최씨의 매장은 도매상들이 밀집해 있는 구평화시장 4층. 건너편에는 두타, 밀리오레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소매업소들이 모여 있다. 최씨 매장은 딸 이름을 딴 ‘은아패션’. 주로 지방에서 올라온 중간도매상과 소매상들과 주로 거래한다. 낮 동안 미싱사였던 부인 홍씨는 이번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가게를 지킨다.

새벽에는 원단 영업사원들이 도매상을 한바퀴 도는데, 때때로 날이 훤해지도록 이들을 기다린다. 원단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수고를 마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이 밝기 전에 관광버스들은 동대문을 떠난다. 곱절로 길었던 창신동도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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