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시작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금리 인상 사이클이 막바지에 도달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인상 정책이 경기침체 우려와 금융안정 이슈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정책금리는 연 4.75~5.00%이고 최종금리 수준은 5.1% 선에 형성돼 있다.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포인트만큼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과, 동결할 것이라 보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후 중요한 것은 과연 높은 수준의 정책금리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다.
연준과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동상이몽 상태다. 시장 참여자들은 경기침체와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같은 금융안정 문제를 근거로 올해 하반기 금리인하를 기대한다. 그러나 연준은 연내 정책금리 인하는 없을 것이라며 이러한 기대를 일축하고 있다. 연준의 논리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 ‘폴 볼커의 실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시절(1979년 8월∼1987년 8월)을 기억한다. 볼커 의장은 당시 20%까지 기준금리를 높이며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 덕에 물가상승률은 1983년 이후 3%대 수준으로 복귀했고 미국 경기는 그후 약 40년 동안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폴 볼커도 한 차례 실수를 범했다. 1980년 여름 폴 볼커는 당시 행정부 수장이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은근한 금리인하 압력을 받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잡혀가고 있고 서민들의 고통이 극심하다는 것이 근거였다. 물론 숨은 목적은 곧 다가올 본인의 재선을 위한 것. 폴 볼커는 그해 7월 카터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여 17%대의 정책금리를 9%로 하향조정했다. 그러나 이는 부정적 결과를 불렀다. 잡히고 있는 듯했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경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당시의 금리인하 결정은 ‘폴 볼커의 실수’로 불린다. 이후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고 폴 볼커는 정책금리를 다시 19% 수준으로 돌려놓게 된다.
지금의 연준은 섣부른 금리인하 시그널이 얼마나 큰 시장 실패로 귀결되는지를 당시에 이미 학습했다. 이에 연준은 여전히 정책금리방향에서 ‘보다 높게, 길게’(Higher for Longer) 기조를 지속 중이며 물가가 2% 수준까지 수렴하기 전까지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통해 데이터 의존성(Data Dependency)을 강조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확인되는 데이터들 역시 연준이 긴축기조를 고수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6.0%(전년 동기 대비)이며 근원 소비자물가 역시 5.5%(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 중이다. 연준의 목표 물가수준인 2%와는 괴리가 있다. 특히 서비스물가의 하락 속도는 상품물가 하락 속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딘 상황이다. 서비스 산업 특성상 단기간에 공급을 늘리기 어려우며, 주거서비스는 수요 감소가 가격에 영향을 줄 때까지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파월 연준 의장은 이를 “끈적한 물가”라고 표현하며 긴축 정책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처럼 연준이 지속적으로 긴축 기조를 유지하려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경제주체들이 이를 고려하지 않고 ‘경기 둔화=연준의 정책금리 인하’라는 공식만을 염두에 두면 예상치 못한 복병에 당황할 수 있다. 경기가 점차 둔화되더라도, 연준이 이를 인내하며 고집스럽게 긴축 기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경제 주체들 간 엇갈린 기대가 혼재되어 있는 경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적절하며, 이는 예측의 영역보다 대응의 영역일 수 있다.
NH선물 리서치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