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여파가 올해 미국 정책금리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은행 시스템을 둘러싼 불안이 계속되면서 경기가 나빠지고 물가도 주춤해 통화정책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다. 반면 연방준비제도는 그런 가능성을 거론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위기다. 연준과 시장 간 ‘동상이몽’이 계속되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더욱 널뛸 가능성도 있는 만큼 그 추이가 주목된다.
26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를 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 참가자들은 올해 말 정책금리 상단이 연 4.14%(확률 가중평균)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정책금리 상단(연 5%)보다 1%포인트 가까이 낮다. 한달 전 시장 전망치보다는 1.3%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시장이 내다보는 금리 인하 시점도 앞당겨졌다. 최근 시장에서는 연준이 앞으로 추가 인상 없이 동결을 이어가다가 오는 7월부터 금리 인하에 돌입할 것이라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난달에는 9월이나 11월에야 인하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았다.
이번에 연준이 발표한 전망과는 정반대다. 연준이 지난 22일(현지시각) 내놓은 경제전망(SEP)을 보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예상하는 올해 말 정책금리 중간값은 5∼5.25%로 지난해 12월에 밝힌 것과 동일하다. 앞으로 한 번 더 인상한 뒤 연말까지 인하 없이 동결할 것이라고 보는 셈이다. 올해 4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전년 동기 대비 0.5%에서 0.4%로 소폭 낮췄고, 같은 기간 개인소비지출(PCE) 근원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5%에서 3.6%로 올렸다.
아직까지는 은행 시스템을 둘러싼 불안이 경기를 끌어내려 물가를 안정시킬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은행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계속해서 악화하면 가계와 기업도 대출을 받기 힘들어져 경기와 물가에 대한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럴지는 아직 물음표인 탓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뿐 아니라 더 긴축적인 신용 여건도 물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도 “(그 정도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고, 신용 여건의 긴축이 얼마나 유의미한 수준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시금 연준과 시장 간의 시각 차가 벌어지는 모습이다. 향후 시장의 기대가 좌절로 돌아갈 경우 연준의 실제 통화정책 기조가 시장에 급하게 반영되면서 변동성이 커질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 경우 원-달러 환율이 급격한 등락을 보이는 등 한국 금융·외환 시장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난달에도 미국 정책금리에 대한 시장 전망치가 빠르게 상향 조정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최대 23.4원 뛴 바 있다.
전세계 금융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미국 국채 시장은 이미 크게 출렁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직전 연 5%대로 올라섰던 국채 2년물 금리는 24일(현지시각) 연 3.777%를 기록했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와 정책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2주 만에 금리가 1%포인트 넘게 빠졌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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