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과 통신 시장의 과점을 해소하라고 지시했다. 이자 장사로 역대급 실적을 거둔 은행들의 ‘성과급 잔치’와 통신사들의 ‘고가 요금’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자, 정부가 나서 경쟁을 촉진해 민생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금융권에서는 신규 은행의 시장 진입 등을 허용해 경쟁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되며 통신업계에서는 제4이동통신사 등장을 적극 유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인터넷은행 추가 진입 등 새로운 ‘메기’ 투입 거론
15일 금융위원회는 윤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과점 구도에 기댄 (은행권의) 과도한 이자수익 의존도를 개선하겠다”며 올해 상반기 대책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모든 대안을 열어두고 은행·통신 시장의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은행업의 경우 정부 인허가에 기대 과점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시중은행들이 공공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반영돼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예대금리차 공시 강화, 대환대출과 예금 비교 추천 플랫폼 등으로 기존 은행권 내 경쟁을 유도하거나 금융과 아이티(IT) 산업 간 장벽을 낮춰 신규 경쟁자의 출현을 유도하는 방안을 예시로 거론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업 특성상 완전 경쟁 체제는 어려우므로 ‘메기 효과’를 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인터넷 전문은행 추가 진입을 허용하거나 전문 분야에 특화된 은행에 인가를 내주는 등 신규 사업자를 들여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에 인가를 내준 것처럼 경쟁 촉진을 위해 일종의 메기를 집어넣어주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은행들에 대해 현행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안도 거론된다. 중저신용자 대출 목표치를 낮춰 인터넷 은행과 기존 시중은행들과의 경쟁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서비스적인 관점에서 플랫폼을 늘리거나 은행 추가 진입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될 텐데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달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출범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금감원·은행권·학계·법조계·소비자 전문가 등이 티에프에 참여한다. 은행권 경쟁촉진과 구조개선 방안, 금리체계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한다. 성과급·퇴직금 보수체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도 검토한다. 올해 상반기 제도 개선안을 도출하는 게 목표다.
정부가 `과점체제 해소’ 방침을 밝힌 이날 4대 금융지주의 주가는 3~5%가량 일제히 폭락했다. 은행권도 정부쪽 엄포에 잔뜩 긴장한 눈치다. 이날 은행연합회는 3조8천억원 규모의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부랴부랴 내놨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은행이 과점 체제로 운영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건 (은행의) 진입 및 퇴출과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책 당국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취약계층에 도움이 될 방법에 대해 복지가 아닌 은행 차원에서, 은행에서 영업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과기정통부 “제4이동통신사 등장 적극 유도”
케이티, 에스케이텔레콤, 엘지유플러스 등 통신 3사도 과점 체제를 해소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됐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시장의 과점 체제를 해소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내놨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국외 기업을 포함한 신규 사업자에게 28기가헤르츠(㎓) 대역 5세대(G) 이동통신 주파수를 할당하겠다고 밝혔다. 제4이동통신사 등장을 적극 유도해, 서비스 품질 및 가격 경쟁이 더욱 활발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이 대역 주파수를 새로 할당받는 사업자에 최대 3년간 전용 대역을 공급하고, 할당 대가를 완화하며, 서비스 지역 선택권을 제공하는 등 혜택을 줄 계획이다. 신규 사업자에게 설비를 제공하고 상호 접속 망 구축을 지원하기 위한 특례도 마련한다. 또 신규 사업자가 희망할 경우 전국 서비스용 주파수도 할당할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과기정통부는 이어 최근 급격히 성장 중인 알뜰폰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위해 이동통신3사가 알뜰폰 사업자들에게 전기통신서비스를 도매로 의무 제공해야 하는 제도의 유효기간을 늘린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또 5세대 이동통신 망 이용(도매) 대가를 낮춰, 알뜰폰 사업자들이 엘티이(LTE)뿐 아니라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서도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가 지난 3일 공개한 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을 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알뜰폰 가입자 수와 시장 점유율은 1282만9247명(16.6%)로 집계됐다. 앞서 지난해 11월 1위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의 점유율이 처음으로 40% 아래로 내려간 39.9%로 집계됐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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