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9일 오전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 민생본부 등이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처리 불발과 관련해 국회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쿠팡·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이베이코리아 등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26개사를 상대로 한 분쟁사례를 분석한 결과, 67.6%가 ‘거래상 지위 남용’(불이익 제공)에 해당하는 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장 분쟁 건수가 많은 사업자는 쿠팡으로, 전체의 44%에 달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 등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기 위한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이 사실상 폐기된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분석결과다.
한국소비자원과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26일 개최한 ‘온라인 플랫폼 관련 정책 이슈와 자율규제’ 연구성과 발표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김건식 공정거래연구센터장은 온라인 플랫폼과 관련해 최근 5년간 조정원에 접수된 분쟁사례를 조사·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김 센터장이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매출액 기준 100억 이상, 중개거래액 1천억원 이상인 온라인 플랫폼 26개사를 대상으로 한 262건의 분쟁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7년 19건에 불과했던 조정 신청 사건은 2019년 48건, 2020년 79건, 2021년에는 91건에 달해 연평균 47.9%씩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대면 거래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 관련 거래가 증가하면서 분쟁 또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1월29일 오전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 민생본부 등이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처리 불발과 관련해 국회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분쟁조정 신청사건을 신청 이유에 따라 분류해 보면, ‘불공정거래행위상의 거래상 지위남용’ 중 불이익 제공이 177건으로 67.6%에 이르렀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기반으로 거래 상대방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조건을 설정 또는 변경하거나 플랫폼 사업자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유로 분쟁조정을 신청한 사건들이다. 그다음으로는 계속적인 거래관계에 있는 특정 사업자에 대해 거래를 중단하거나 거래하는 상품 또는 용역의 수량이나 내용을 제한하는 거래거절 사건이 15.3%(40건)로 뒤를 이었다.
분쟁 대상을 보면, 쿠팡이 116건으로 44.3%에 이르는 압도적 1위였다. 2위 네이버(41건·15.6%)나 3위 이베이코리아(32건·12.2%)에 견줘 분쟁 발생 건수가 3~4배에 달했다. 앞서 <한겨레>의 보도에서 보듯
쿠팡이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입점업체들한테 판매장려금 명목의 광고비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하는 등 ‘갑질’을 일삼고 있다는 입점 업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분쟁조정 사건을 세부적으로 나눠 살펴보면 ‘검색·배열 순서, 이용 후기’ 등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이 자체 내규에 따라 판단한 결과가 분쟁의 주요 쟁점이 된 ‘내규 분쟁’이 23.3%(61건)로 가장 많았다. 김 센터장은 “분쟁 판단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많고, 자체 규정을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해석·판단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며 “검색 상위에 위치하게 하는 플랫폼 자체 알고리즘 등과 관련한 불만이 증가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내규와 관련한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조정원이 조사한 분쟁 대상을 보면, 쿠팡이 116건으로 44.3%에 이르는 압도적 1위였다. 2위 네이버(41건·15.6%)나 3위 이베이코리아(32건·12.2%)에 견줘 분쟁 발생 건수가 3~4배에 달했다. 쿠팡 누리집 갈무리
온라인 플랫폼의 광고비 환불과 관련한 분쟁이 21.0%(55건)로 두 번째로 많았다. 특히 쿠팡과 관련한 분쟁이 다수를 차지했다. 쿠팡은 2018년 하반기 검색광고 사업을 확대하면서 영업을 위해 텔레마케터를 대거 모집했고, 광고비를 ‘하루 1만원’으로 광고했지만 실제로는 ‘상품당 하루 1만원’으로 계산돼 매일 수십만원이 과금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김 센터장은 “쿠팡에서는 대응팀을 만들어 사례별로 검토해 환불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으나, 2020년과 2021년에도 같은 분쟁이 지속해서 접수됐고, 동일한 피해를 본 판매자가 수백 명에 이르러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정산 관련 분쟁이 14.9%(39건), 고객분쟁 9.2%(24건), 수수료 4.6%(12건) 등 순으로 분쟁이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센터장은 “자본이 많지 않은 중소 판매자는 제때 대금을 정산받아야 하지만,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체 내규를 근거로 판매업체와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산금 지급을 보류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다수였다”고 말했다.
김건식 센터장은 “분쟁사례를 보면, 플랫폼 사업자가 자체 정책에 따라 정하고 있는 노출 순위, 알고리즘, 댓글정책 등과 관련한 분쟁이 많은데,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이런 항목이 보다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며 “공정위에서 발의한 온플법안 제6조에서는 플랫폼 사업자가 ‘계약 기간, 변경, 갱신, 해지, 중개서비스 내용, 노출 순서, 교환·환불 등을 계약서에 기재해 교부’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플법에서 규정하는 주요 분쟁 관련 조항들(주요 서비스 내용 공개·계약서 교부) 등이 신규·소규모 기업의 시장 진출을 어렵게 하고, 플랫폼 분야의 성장에 장애가 될지 의문”이라며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가 확대된다 해도 공정위에서 지적한 사항들이 반영될 수 있도록 일정한 가이드(연성규범)를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