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엔에이(EN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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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엔엔>(CNN)이 최근 한 국내 드라마에 대해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목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에이스토리라는 드라마제작사가 만든 <우영우>(16부작)의 국내 방영권은 우리나라 이엔에이(ENA) 채널이 사들였다. 넷플릭스는 해외 방영권을 확보했다. 국내외 시청자들은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두차례 <우영우>를 만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우영우>가 지난 4~17일, 2주 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비영어 티브이(TV) 드라마였다고 밝혔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일 이 드라마의 국내 시청률(비지상파 유료가구 기준)은 11.7%다. 분당 최고 시청률은 13.9%까지 올라갔다. 같은 시간대 지상파 또는 종합편성채널 드라마 시청률은 2~3% 정도였다. 이엔에이는 그리 잘 알려지지는 않은 채널이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10%를 넘어섰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를 잘 보여준다.
‘킹덤’ 이어 ‘우영우’ 대박 친 제작사
에이스토리 주가도 급등했다. <우영우> 첫 방송일(6월29일) 종가는 1만7200원이었다. 지난 21일에는 3만500원으로 마감했다. 에이스토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1과 시즌2를 제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첫사랑은 처음이라서>라는 작품도 넷플릭스와 함께 만들었다. 제작사 입장에서 <킹덤>, <첫사랑은 처음이라서>와 <우영우>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바로 지식재산권(IP)의 보유 여부다. 앞의 두 드라마 아이피는 넷플릭스 소유다. 제작사엔 아이피가 없다.
오래전 우리나라 드라마는 방송사가 직접 제작했다. 연기자도 방송사별로 직접 공채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외주제작 전문업체들이 많이 생겨났다. 방송사는 제작비 전액을 지원했다. 그리고 한자릿수 정도 이윤을 보장해주면서 드라마 아이피를 가져갔다. 드라마가 아무리 흥행해도 제작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제한됐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인기 연기자와 감독, 작가의 몸값이 크게 올랐다. 외주제작사 간 치열한 경쟁의 영향이 있었다. 당연히 제작비가 크게 증가했다. 방송사는 외주업체에 제작비의 70~80%밖에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다. 외주업체는 적자를 면하기 위해 드라마 간접광고(PPL)나 협찬을 끌어오는 데 주력했다. 노골적이고 빈번한 간접광고가 자주 문제가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당시 매체 기사를 보면 한 방송사의 시트콤 드라마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10차례 넘는 간접광고 경고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고도 또 운동기구 간접광고를 드라마에 삽입했다가 시청자 사과명령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방송사의 지원 능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제작사들은 국내외 판권 판매 등 아이피 수익 공유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0년~2010년대 <겨울연가>나 <별에서 온 그대> 등 히트 드라마의 방송사 방영이 종료된 뒤 일본, 중국 등 해외 판권 판매가 성사됐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제작사에 분배됐다.
2016년 넷플릭스가 국내 진출했다. 넷플릭스는 직접 국내 제작사와 손잡고 독점공개 드라마(넷플릭스 오리지널)를 만들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제작비 전액+10~20% 이윤’을 보장해주는 대신 아이피를 가져간다. 넷플릭스와 제작사 간 계약 내용은 비밀에 부쳐진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15% 안팎의 이윤을 확실하게 챙겨주는 대신 아이피는 넷플릭스가 갖는 방식이다.
에이스토리가 만든 <킹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다시 말해 제작사가 아이피를 갖고 있지 않다. ‘킹덤’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제작사는 이 드라마 자체에서 추가 수익을 얻기 어렵다.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같은 에이스토리 작품이지만 <우영우>는 다르다. 에이스토리가 직접 제작비를 투입했다. 제작 단계에 있던 지난해 말 국내 채널 이엔에이 및 넷플릭스와 방영권 판매계약을 맺었다. 일정 기간 독점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를 제공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준 것이기 때문에 아이피는 온전히 제작사가 갖는다. <우영우> 인기가 치솟아도 단기간에 에이스토리 호주머니로 큰돈이 추가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방영권 등 판매수익은 계약에 따라 정해진 대로 집행된다.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벌써부터 여러 채널이 <우영우> 시즌2 제작 제안을 하고 있다. 에이스토리는 아이피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즌2 제작 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계약 채널을 마음대로 선정할 수도 있다. 방영권은 이전보다 크게 높은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 협상할 수 있는 대형 채널이 많기 때문이다. 디즈니플러스와 애플티브이플러스 같은 글로벌 오티티(OTT)는 이미 국내에 진출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이치비오(HBO)맥스는 올해 말쯤 본격 서비스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미 삼화네트웍스와 손잡고 오리지널 드라마 <멘털리스트>를 제작 중이다.
지속가능한 생존법 ‘지식재산권’ 확보
글로벌 오티티 입장에서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 시장을 잡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다. 아시아권에서 한국 드라마 인기는 독보적이다. 넷플릭스의 올해 상반기 글로벌 유료 가입자 수는 감소했다. 그러나 콘텐츠 투자액은 더 늘린다. 특히 한국 시장 투자는 지난해 6000억원에서 70% 가까이 증가한 1조원 수준까지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국내 제작사들에는 반가운 일이다. 토종 오티티 ‘티빙’은 ‘시즌’과 합병한다. 글로벌 오티티에 맞서기 위한 몸집 불리기 차원이다. ‘웨이브’나 ‘왓챠’도 콘텐츠 투자액을 늘려나갈 것이다.
오티티들은 구작(지상파나 종편 등을 통해 방영했던 드라마) 확보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 제작사가 아이피를 보유하고 있다면, 구작 판매는 그대로 제작사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구작은 이미 비용을 다 털어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스튜디오드래곤이나 콘텐트리중앙처럼 상대적으로 우세한 자본력과 계열사 파워를 등에 업고 아이피 보유 전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제작사들이 수혜를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아이피 보유 전략을 강화하는 중소형 제작사를 주목한다. 에이스토리나 삼화네트웍스 같은 업체들은 방송사 외주전문으로 출발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오티티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을 거쳐 아이피 수익창출 능력을 지닌 업체로 진화하는 중이다. 이런 과정을 밟아나가는 제작사들이 늘어날 수 있을까? 주목해볼 만한 시점이다.
김수헌 _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