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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영우와 남방큰돌고래 복순이

등록 2022-07-20 18:34수정 2022-07-27 12:15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2018년 8월10일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복순이가 갓 낳은 새끼를 데리고 헤엄치고 있다. 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2018년 8월10일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복순이가 갓 낳은 새끼를 데리고 헤엄치고 있다. 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자막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인 게 하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우영우가 그를 좋아하는 이준호와 함께 강화도 바다에서 낙조를 볼 때다. 고래 마니아인 우영우는 또 고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가 아기 돌고래들과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요?”

“수족관에 붙잡혀 돌고래쇼를 하다가 대법원 판결에 의해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입니다. 언젠가는 꼭 보러 갈 겁니다.”

다섯마리 남방큰돌고래 이야기를 할까 한다. 1986년 국내 두번째로 문을 연 돌고래수족관 ‘퍼시픽랜드’라는 곳이 제주도 중문에 있었다. 이 수족관은 돌고래가 그물에 걸리면 어민에게 돈을 주고 수족관에 데려와 쇼를 가르쳤다.(돌고래 포획은 불법이다.)

2009년 5월1일 복순이가 제주 신풍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퍼시픽랜드로 끌려온다. 유명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함께였다. 6월23일에는 춘삼이가, 이튿날에는 태산이가 끌려온다. 삼팔이는 이듬해 5월13일 고내 앞바다에서 잡혀 들어온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한무리를 이루고 있으므로, 아마도 군대에 끌려와 고향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돌고래는 음파를 쏘아 지형지물을 인식한다. 돌고래는 ‘귀로 본다’. 그런데 좁은 수조에서 음파를 쏘면 몇미터 못 가서 콘크리트 벽에 튕겨 나온다. ‘거울로 된 방’에 갇힌 느낌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고래들이 처음 배우는 건 냉동생선을 먹는 법이다. 활어는 비싸기 때문에 수족관 업자들은 돌고래가 ‘굴복’할 때까지 냉동생선만 준다. 돌고래는 길게는 두 주일 동안 굶다가 마지못해 냉동생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의 몸을 노예로 내준다. 돌고래쇼를 배운다. 돌고래쇼에는 비밀이 있다. 하루 몇차례 이뤄지는 쇼가 바로 이들의 식사 시간이라는 점이다. 돌고래에게 공짜 점심은 없다. 쇼를 하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는 살기 위해 복종을 택했다. 반면 복순이는 무기력에 빠졌다. 생을 포기한 것처럼 푸석한 냉동생선을 먹다, 안 먹다 연명했을 뿐이다. 돌고래쇼도 배우지 않았다. 복순이 곁에는 항상 태산이가 있었다.

복순이의 입은 비뚤어져 있었다. 조련사들은 그 탓을 했다. 하지만 충격과 공포로 우울증에 걸린 게 틀림없었다. 복순이는 단짝 태산이와 함께 수족관 내실에 머물거나, 가끔 쇼에 나가 헤엄치기만 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돌고래, 환호받지 못하는 돌고래, 복순이는 ‘잉여 돌고래’였다.

그러다가 2012년 혁명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공원 돌고래쇼 중단을 발표한 것이다. 서울대공원으로 팔려 와 쇼를 하던 제돌이는 이듬해 제주 바다로 돌아간다. 남방큰돌고래 불법 포획 혐의로 기소된 퍼시픽랜드에 있던 삼팔이와 춘삼이도 대법원 몰수 판결로 함께 바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복순이와 태산이는 서울대공원 수족관으로 옮겨져 외로이 지내야 했다. 복순이의 무기력은 야생방사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복순이와 태산이도 방사하자는 운동이 펼쳐진다. 이듬해 여름 야생방사가 결정됐고, 함덕 앞바다 가두리에서 방사를 기다릴 때였다. 복순이는 자꾸 가라앉는 새끼를 부리로 절박하게 물 위로 들어 올렸다. 갓 낳은 새끼가 죽어 있었다. 2012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두번째 사산이었다. 어쨌든.

다섯 돌고래는 지금 제주 바다로 나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삼팔이는 2016년 4월 새끼를 낳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세계 최초로 쇼 돌고래가 야생에 돌아가 생명을 출산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넉달 뒤 춘삼이도 출산 소식을 보내왔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소식은 2018년 복순이가 건강하게 새끼를 낳아 길렀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아이들은 장난감 기차를 줄 세우고, 말을 따라 하고, 돌아가는 회전문에 정신을 빼앗긴다. 모든 아이들은 우영우의 시절을 보낸다. 소거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신경 다양성이다. 자연은 다양성의 세계다. 타고난 기질대로 살도록 놔두는 것, 그로 인해 고통 주지 않는 것, 우영우는 우영우처럼, 복순이는 복순이처럼 살도록 놔두는 것이 인간과 동물을 가로지르는 평화의 원칙이다.

우영우는 돌고래 이야기를 하고는 이준호와 길게 눈을 맞춘다. 시선을 피하는 자폐 스펙트럼인 우영우가 눈을 맞춘 건 처음이다. 드라마의 끝에 둘은 돌고래를 보러 제주 바다에 가지 않을까?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 시대 모든 우영우들이 제주 바다로 돌아간 복순이처럼 행복해지기를 빈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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