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소.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김서진(41·가명)씨는 최근 전세보증금 인상분을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로 임차 계약을 연장했다. 애초 집주인은 기존 보증금인 7억원에서 5% 올린 7억3500만원에 전세 재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원래의 전세금도 김씨의 벌이로 마련할 수 있는 한계치였던데다, 금리도 오르고 있어 목돈을 전세에 묶어두기가 부담스러웠다. 김씨가 첫 계약을 했던 2020년에는 이 단지 임대차 계약 중 20% 정도만 월세를 꼈지만, 올 들어서는 절반이 보증부 월세다.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무주택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전세금과 대출 금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오르면서,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추세다. 이에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월세 계약 비중이 40%까지 치솟고 월세 시세도 오름세다. 반면 정부의 세입자 지원책은 여전히 전세대출 한도 완화 등에만 치중돼, 월세 가구 부담을 줄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전월세거래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1∼6월) 서울에서 계약된 아파트 임대차거래 중 월세 낀 계약의 비중은 39.4%로 지난해 같은 기간(35.7%)보다 3.7%포인트 늘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11년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치다. 반기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월세화는 전세시장 불안의 결과로 풀이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계약기간 이후 보증금을 돌려받는 전세가 월세보다 여전히 좋지만, 전세금이 과도하게 뛰면서 월 주거비 지출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보증금을 월세로 돌리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전세금은 약 3억4300만원에서 4억5100만원으로 30% 넘게 올랐다.
수요가 늘면서 월세 시세도 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전월세전환율(전환율) 통계를 보면, 4월 서울 85㎡ 초과 규모 주택의 평균 전환율은 4.2%로 지난해 11월(3.8%) 이후 5개월 만에 0.4%포인트 상승했다. 전환율은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되는 연 이율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임차인의 월세 부담이 커진다. 전세 보증금 1억원을 월세로 돌릴 때 연간 420만원, 월 35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전환율의 단기 상승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2019년 9월부터 지난 연말까지 2년여 동안은 같은 규모 주택의 전환율이 3.8∼4.0% 사이의 좁은 폭을 오르내렸다.
전·월세 가격이 모두 오르면서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6월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집세’ 항목은 지난해 같은달보다 1.9% 상승했다. 2015년 이후 7년 만에 6월 기준 전년 대비 상승폭이 가장 컸다. 목돈이 부족한 청년층·저소득층에서 월세화가 특히 빨라, 월세 전환으로 이들의 가처분소득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월세화 추세에 맞춘 임대차시장 안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생활비 중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월세 바우처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건섭 부경대 교수(행정학과)는 “자산 형성이 부족한 청년층, 월 고정수입이 적은 노년층 등이 월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들 계층에 대한 바우처 등의 지원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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