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한 편의점 들머리에 안내문이 두 장 붙어 있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와, 사실은 그 안에 포함된 ‘띠부씰’ 때문에 인기가 폭발한 포켓몬빵에 관한 안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른바 ‘MZ’세대의 대표적 일자리로 꼽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긴 터널과 같았던 코로나19 대유행도 끝이 보이고 살랑살랑 꽃바람도 불어오는 봄날이지만, 상품을 진열하고 카운터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시간 단위’로 돈을 버는 편의점 알바생들은 요즘 ‘3중고’를 호소한다. 무슨 사정일까? 20대 알바생 3명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다.
포켓몬빵, 알바생은 죄 없다…시즌2 출시에 ‘허걱!’
재출시 40일 만에 1000만개가 팔려나갔다는 화제의 ‘포켓몬빵’. 편의점 앞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중고마켓에선 빵 안에 든 띠부실이 한 개 5만원에 판매되며, 띠부실 스티커의 시세를 정리한 표까지 등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의점 알바생들이 모인다는 커뮤니티에는 포켓몬빵에 얽힌 하소연이 하루 20~30개씩 올라온다. 대기자 목록을 만들어 빵이 들어올 때마다 순차적으로 연락을 주고 있다는 사연, 재고 리스트에 있다고 나오는데 왜 안 파냐는 항의에 시달렸는데 알고 보니 업주가 몰래 숨겨놨더라는 사연, 포켓몬빵을 못 산 ‘잼민이’(초·중등생)에게 욕설을 들었다는 사연까지….
편의점 알바 2년 차라는 이지연(가명·22)씨는 “포켓몬빵 판매의 ‘최전선’에 선 알바생들의 감정노동은 상상 이상이라서 알바들끼리 포켓몬빵이라면 치가 떨린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물량이 달리는 것은 알바생의 죄가 아닌데, 한 달 새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고 했다.
이렇게 포켓몬빵 대란에 “영혼이 털린” 편의점 알바생들을 더 큰 공포에 몰아넣은 것은 최근 전해진 ‘신제품 출시’ 소식. 에스피시(SPC)삼립 쪽은 지난 5일 “포켓몬빵 시즌2를 이번 주 안에 출시한다”며 “이번 ‘포켓몬 스위트 디저트’ 신제품 3종(푸린의 피치피치슈·피카피카 달콤앙버터샌드·피카츄 망고컵케이크)은 2000~3500원으로 1500원이던 기존 제품보다 값이 비싸게 책정됐다”고 밝혔다.
영등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조현지(21)씨는 “7일부터 포켓몬빵 신제품이 들어온다는 점장님의 귀띔이 있었는데, 물류시간에 맞춰 벌떼처럼 몰려들 손님을 생각하니 공포감마저 든다”며 “한편으론 학비를 벌기 위해 시간에 쫓기며 알바를 2~3개씩 하는 내게는 이런 ‘취미생활’이 딴 세상 얘기로 느껴진다”고 하소연했다.
‘사적 모임 10인·영업시간 밤 12시’ 거리두기 첫날인 지난 4일 낮 서울의 한 식당 들머리에 거리두기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실외 노마스크’ 만지작 정부, 괴로움은 알바생 몫?
이번 거리두기가 끝나면 방역당국이 실외 마스크 쓰기를 중단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거리두기 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6일 방역 당국이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화)이 된다는 것이 완전한 일상회복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벌써부터 시민들의 방역 의지는 허술해지고 있다. 편의점에 노마스크로 들이닥치는 사람들이 이런 분위기를 증명한다.
유흥가가 밀집한 지역의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이혜리(24)씨는 “최근 들어 술에 취한 채 노마스크로 들어와 담배 달라, 맥주 달라며 진상을 부리는 ‘편의점 빌런’(악당)이 판을 치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마스크 써 달라’고 요청하니 ‘오늘 검사한 자가검사키트 음성인데 뭐가 문제냐’고 큰소리를 치더라”고 전했다.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 지침이 엄격했을 때는 ‘신고하겠다’고 하면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방역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완화된 이후 이런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바생들은 ‘실외 노마스크’가 실시되면 손님들과의 마찰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조현지씨는 “밖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있다가 편의점에 들어올 때는 철저히 챙겨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으면 알바생들만 곤욕을 치를 텐데,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2022년 최저임금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열려, 참석자들이 인수위에서 최저임금 개악 논의를 진행되는 것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업종별 최저임금 차별화?…“정치인들, 갈라치기 마세요”
지난 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들어간 이후 “최저임금이 급격히 높아져 자영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가 앞다퉈 보도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그 중심엔 ‘편의점’이 있다. 현재 시간당 9160원인 최저임금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바생들은 초조하기만 하다.
<한겨레>와 통화한 한 편의점 업주는 “최저임금 부담이 커지면서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 수익성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며 “편의점 업무는 숙련도가 필요없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다른 업종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알바생들은 지금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젊은 세대에게 불황과 폐업의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혜리씨는 “최저임금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결국 2030 세대 아니냐. 우리도 노동자이자 소비자인데, 소득이 줄면 씀씀이가 줄테고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없다”며 “지금도 업주한테 착취당하는 알바생이 많은데, 만만하고 힘없는 젊은 세대 탓만 하는 기성세대가 비겁하고 이기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면, 이지연씨는 업주들의 입장도 이해된다고 했다. 이씨는 “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업주와 알바생 2명이 교대로 일을 하는데, 사장님 역시 버는 돈이 별로 없는 ‘생활인’일 뿐이라는 걸 느꼈다”며 “업종별 차등화를 빌미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업주와 알바생을 갈라치기 하는 정치인들에게 화가 날 뿐”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