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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점점 난폭해지는 인플레이션,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등록 2022-04-05 08:59수정 2022-04-05 09:26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l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일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이 인수위 4차 전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10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밀가루 가격이 30% 가까이 올랐다며 “물가 안정과 서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범부처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의 모습. 연합뉴스
4일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이 인수위 4차 전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10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밀가루 가격이 30% 가까이 올랐다며 “물가 안정과 서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범부처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의 모습. 연합뉴스

변화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느리다. 하지만 일단 시작된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우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뀌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변화는 수많은 변수가 얽히고설키며 오랜 기간 상호작용한 결과다. 양이 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변혁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은 없지만 과거와 비교해보면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불을 붙인 것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다. 빠르게 번진 바이러스는 우리 일상과 경제 전체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꿔놓았다. 그것만이 변혁을 만들어낸 건 아니다. 양질전환의 핵심 촉매제 구실을 했을 뿐이다. 변화는 이미 그 전부터 시작됐고 바이러스가 연료 구실을 했다. 변혁의 기폭제는 또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을 기억했던 사람에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존 변혁의 흐름을 가속화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이래 진행되던 세계화의 퇴조는 이제 명확해졌다. 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우리는 현재 변화의 정점에 있다. 바이러스에 더해 새로운 지정학적, 경제적 변화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전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 가까운 미래는 익숙했던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다.

뉴노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는 불가피하다. 확실히 군사적 대응보다는 낫다. 하지만 제재는 연결을 끊는 행위다. 기존 방식을 버리는 데는 위험이 따르며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충돌은 어떤 것이든 일방의 승리나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상처를 입는다. 폐허에서 꽃이 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전쟁 발발 전 세계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이를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속속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플레이션이 연착륙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믿음이 이제 전쟁으로 확고해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뉴노멀’이 되고 있다. 전쟁은 인플레이션 핵심 인자 2개를 폭발시켰다. 에너지와 식량 등 필수재 상품 시장의 혼란을 불렀고, 공급망 단절과 왜곡을 심화했다.

러시아는 에너지, 우크라이나는 곡물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유럽이 얼마나 러시아 에너지에, 세계가 얼마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에 의존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들이 생산과 수출을 멈추면 그렇지 않아도 고공 행진하던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급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에너지와 곡물은 필수재다. 핵심은 그 부족분을 대체할 대안이 있는지다.

유럽은 부족한 에너지를 미국이나 중동으로부터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생산을 빠르게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에너지 업계가 생산량을 늘릴지도 불투명하다. 산유국과 원유 업계는 과거 유가 폭락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최근 미국 에너지기업 셰브론의 최고경영자 마이크 워스는 “에너지기업들이 이전의 완만한 증산을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실제로 산유국들의 증산 움직임도 있다. 가격이 충분히 높은 상태로 안정된다면 관련 업계는 이익을 늘리려 증산할 수도 있다. 셰일오일의 생산도 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하반기로 갈수록 낮아질 여지가 있다. 다만 그 수준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전쟁이 유가 안정이란 희망을 꺾었다.

곡물은 어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곡물이 세계 곡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이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앞으로 한두 달 안에 씨를 뿌려야 곡물을 수확할 수 있다. 가능할까? 전쟁으로 농업은 불가능하다. 전쟁이 끝나도 폐허 속에서 다시 농업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부족분을 브라질, 미국, 아르헨티나가 대체할 수 있을까?

2020년 7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농촌 마을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이른다. 로이터
2020년 7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농촌 마을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이른다. 로이터

가격 상승 도미노

밀가루 가격 폭등은 ‘아랍의 봄’을 불렀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주식은 여전히 밀이다. 식량 부족은 평형과 안정을 깬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 수급 안정을 위해 식량 수출을 금지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3월9일 보도했다. 밀, 옥수수, 메밀, 귀리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도 필수 곡물에 대해선 자국 우선 공급을 명확히 했다. 곡물 가격 폭등은 가공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용 금속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러시아는 글로벌 니켈의 약 10%를 공급한다.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른다. 이뿐만 아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세계 3대 리튬 보유국이자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지하자원 채굴 광산을 국유화하는 헌법 개정 초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국민투표 절차가 남았지만 칠레의 사례는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자원의 무기화 바람이 불고 가격 상승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전기자동차 등의 가격 상승도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네온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고순도 정제 네온가스는 반도체에 필수적이다. 그것의 3분의 2를 우크라이나 항구도시인 오데사의 한 공장에서 생산한다. 공장이 파괴되거나 항구가 전쟁으로 제 기능을 못하면 반도체 가격은 어찌 될까? 반도체 품귀 현상이 길어지면 수많은 후방산업이 영향받아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전쟁으로 악화일로이던 공급망의 핵심인 물류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사실 많은 국가가 러시아 제재에 일사불란하게 동참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절실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계에서 하나의 고리가 끊기는 것의 파급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정확히 분석했는지는 의문이다.

선박 운임이 치솟고 있다. 해운사로서는 가격을 올리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더 심한 제재가 가해지면 배는 언제든 뜻하지 않게 억류될 수 있다. 전쟁이 격화하면 배가 공격받을 수도 있다. 리스크는 가격을 높인다. 이는 관련 은행, 보험사의 비용을 늘리고 마침내 가격 상승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3월14일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자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시민들이 해변에서 방어벽을 쌓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나르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순도 정제 네온가스의 3분의 2를 오데사의 한 공장에서 생산한다. REUTERS
2022년 3월14일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자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시민들이 해변에서 방어벽을 쌓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나르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순도 정제 네온가스의 3분의 2를 오데사의 한 공장에서 생산한다. REUTERS

불신의 시대

이번 전쟁이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종전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다. 제재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소한 푸틴이 권좌에 있는 한 그럴 것이다. 전쟁으로 국가 간 사업은 상존하는 위험을 경험했다. 러시아에 진출했거나 러시아와 교역하는 수많은 기업이 타격받고 있다. 거래 상대국, 상대방에 대한 불신은 점차 커질 것이다. 불확실성은 외려 더 심해질 수 있다.

불신은 러시아의 국가부도가 현실이 되는 순간 폭발할 것이다. 연쇄반응이 어떤 식으로 올지 불확실하다. 러시아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은행의 높은 레버리지와 상호 밀접한 연결성을 고려한다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악성부채는 러시아의 부도 외에 러시아와 교역하는 수많은 기업의 부실로도 생길 수 있다.

이번 전쟁이 은행 위기나 20세기 말에 발생한 국가부도 사태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서구 은행에 예치한 3천억달러(약 370조원)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막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많은 나라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보유한 외환을 자국 안에서 운용하려 시도할 것이다. 연기금 등 펀드도 마찬가지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자본흐름이 일시에 왜곡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이탈리아 정도다. 그렇다고 경제제재의 파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난폭해지고 있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도구가 무력해지는 데 있다. 수요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라면 긴축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공급이기 때문에 고약하다. 긴축은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익숙하던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고 있다.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20세기를 이끌었던 세계화 퇴조가 명확해졌다. 세계화의 핵심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교역과 소통이다. 이제 이것들이 곳곳에서 끊기고 있다. 끊긴 교역은 어떻게든 새로운 방식으로 건설될 것이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곤궁은 갈등과 전쟁을 낳는다. 갈등과 전쟁은 곤궁을 더한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예측한 2022년 1분기 미국의 실질성장률은 0%다. 중국의 2022년 성장률 목표가 5.5%다. 이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 경제대국들의 사정이 이렇다.

역사는 신뢰와 불신이 순환하는 연대기다. 지금은 불신의 시대다. 불신은 불확실성을 높인다. 경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그것이다. 침체가 종말은 아니다. 회복은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당분간 꽃길은 기대하기 힘들다. 고난의 길은 생각보다 길 수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성장, 침체가 함께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오고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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