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9일 더불어민주당이 10조~15조원 규모의 올해 초과 세수분을 납부 유예해서 내년 세수를 늘려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쓰겠다고 밝힌 가운데, 일각에서는 “현행법상 불가능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11~12월에 걷게 될 굵직한 세목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유류세뿐이라 납부 유예로 확보할 수 있는 재원 자체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납부 유예 시나리오’는 초과 세수를 내년 대선(3월9일) 전에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쓰기 위한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세금이 제때 납부돼 올해 회계연도가 끝나는 시점까지 초과 세수가 생기면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금·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배분, 공적자금 상환기금 출연, 국채 상환 등에 써야 하고 나머지도 내년 4월 결산이 끝난 뒤에야 사용할 수 있는 탓이다. 하지만 여당 계획대로 납부 유예를 통해 올해 세수를 내년 세입으로 돌리면 이를 재원으로 해서 대선 전인 내년 초에도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문제는 납부 유예가 가능한 남은 세목 자체가 많지 않고 그 규모도 작다는 점이다. 납부 유예는 올해 11~12월 중에 걷을 예정이었던 세금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올해 안에 징수가 예정된 굵직한 세목은 종합소득세 중간예납과 종부세, 유류세 정도다. 종합소득세 중간예납의 경우 국세청은 이미 지난 8일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 136만명에 대해 3개월 유예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종합소득세 중간예납 규모는 8조2천억원 정도로 예측되는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분납제도를 통해 원래도 내년 세입으로 잡힌다. 실제 종합소득세 중간예납 ‘기한 연장’을 통해 확보되는 초과 세수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연말에 납부 유예가 가능한 나머지 세목인 종부세와 유류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 종부세가 약 5조1천억원가량 들어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종부세는 정부가 국세로 걷지만 전액을 교부금으로 지자체에 배분해 지방재정으로 쓰이기 때문에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쓸 여지가 없다. 유류세는 통상 11~12월에 2조5천억원 정도 걷히지만 이 중 90%는 목적세여서 재난지원금으로 전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류세에서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부가세에 해당하는 2500억원에 불과하다.
고가 주택 보유자인 종부세 납세자와 최근 실적 개선세를 나타내고 있는 정유회사에 대한 납부 유예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국세징수법상 세금의 납부 유예는 △재난이나 도난으로 재산에 심한 손실을 본 경우 △경영하는 사업에 현저한 손실이 생기거나 부도·도산의 우려가 있는 경우 △납세자나 동거가족이 질병이나 중상해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하거나 사망해 상중인 경우 등에만 인정된다. 종부세와 유류세를 국세징수법상 납부 유예 대상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법을 바꿔 세정 지원에 나서더라도 부자와 대기업에만 혜택을 준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의 납세 유예 주장에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납부 유예를 할 마땅한 명분이 없는데다, 내년으로 초과 세수를 이월하더라도 지방교부세·교부금은 정산해야 한다”며 “초과 세수를 이용해 내년도 예산을 증액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여권이 대선을 앞두고 특정 목적을 위해 세금 제도를 건드리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인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하니 여당이 이런 방법을 낸 것으로 보이는데, 세금 부담과 징수 모두 국가의 중요한 법률 규정이라 이렇게 쉽게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밝혔다.
이지혜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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