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아무개(31)씨가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받았다는 ‘퇴직금’ 50억원은 재벌 총수들에게 지급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퇴직금을 떠올리게 한다. 근무 기간이 6년에 채 못 미칠 정도로 짧았다는 사정까지 고려할 때 최고위급 전문경영인 수준은 가볍게 뛰어넘고 재벌, 그것도 최상위권 재벌 회장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경영자 중 최고 보수를 받은 것으로 공시된 사례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정 회장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두 곳에서 567억5천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현대자동차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527억3천만원을 더한 결과였다. 효성 조석래 명예회장이 지난해 급여 2위를 기록한 것도 퇴직금 수령에서 비롯됐다. 조 회장은 퇴직금 251억1천만원을 포함해 281억2천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지난해 삼성전자에서 퇴직한 권오현 고문은 임원 근무 기간 27년에 지급 배수 3.5를 적용받아 93억원을 받은 것으로 공시돼 있다.
곽 의원 아들의 퇴직금 절대 액수가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근무 기간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곽씨가 화천대유에 몸담은 기간은 2015년 6월~올해 3월까지로 밝혀져 있다. 6년에서 3개월 모자라니, 1년 치 퇴직금이 8억7천만원에 이르는 셈이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에서 일한 기간은 47년이었다. 1년 치는 11억2천만원 수준이다. 조석래 회장에 적용된 근속 기간은 51년이었다. 한해 4억9천만원꼴이다. 곽씨는 퇴직금에서 권오현 고문(1년 치 3억4천만원)의 두배를 웃돌고, 조 회장을 훌쩍 뛰어 넘어섰다.
퇴직금의 법적 근거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다. 지난 2005년 기존 퇴직금 제도를 근로기준법에서 분리해 새로 도입한 퇴직연금제도와 통합하면서 만들어진 법이다. 퇴직급여는 퇴직금과 퇴직연금을 포괄해 일컫는다.
법에 따라 퇴직 노동자에게 반드시 지급해야 할 법정 퇴직금은 ‘퇴직 직전 3개월 하루 평균 임금’에 30(일)을 곱하고 다시 재직 일수를 곱한 뒤 365(일)로 나눈 값이다. 월평균 보수에 재직한 기간(년)을 곱하는 개념이라, 대략 1년에 한 달 치 월급이 퇴직금으로 쌓인다고 보면 된다.
곽씨에 지급될 적정 퇴직금 규모가 대략 2200만~2500만원으로 추정된 것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곽 의원 쪽은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월 230만~380만원가량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받은 퇴직금은 법정 규모의 200배를 넘는다.
재벌 회장들에게 지급되는 거액의 퇴직금은 평상시 받는 보수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상식적인 ‘배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퇴직금 산식에 적게는 3~4배, 많게는 6배까지 곱해 지급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에겐 4배수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 조양호 회장이 201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퇴직금을 받을 당시 적용된 배수는 6으로 파악돼 있다. 1년 일할 때마다 6개월 치 보수가 퇴직금으로 적립된 꼴이다. 재벌 회장을 비롯한 기업 임원 퇴직금은 이사회에서 ‘직급에 따른 배수’를 적용하고 있는데, 그 이사회가 총수에 장악 당해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곽씨는 26일 오후 아버지 곽 의원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50억원에서) 원천 징수 후 약 28억원을 4월에 받았다”며 “화천대유에 입사해서 일하고 평가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럴까?
통상적인 퇴직금 실태는 제쳐두고 화천대유의 다른 직원들 사정에 비춰서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주장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화천대유가 지급한 연간 최고 퇴직금은 1억3천만원으로 공시돼 있기 때문이다. 퇴직금 명목으로 받았다는 곽 의원 쪽의 설명과 달리 모종의 이면 거래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추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