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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월 4만원부터 60만원까지…적어도 많아도 ‘기본소득 딜레마’

등록 2021-07-06 04:59수정 2021-07-06 09:53

“월 4만원대? 용돈 주나” - “월 60만원? 현실성 있겠나”
적으면 효능감 떨어지고 액수 늘리면 재원 지속성 의문

기본소득. <한겨레>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본소득. <한겨레>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본소득은 얼마가 적당할까?

기본소득의 대표적 주창자인 필리프 판파레이스 루뱅대 명예교수(벨기에)는 기본소득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5%쯤 되어야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삼으면 월 75만원 정도로, 가장 급진적인 기본소득당의 제안(월 6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재정 여력, 정치적 합의 수준 등 기본소득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다수의 기본소득 찬성자들이 낮은 단계부터 시작해 지급액을 차츰 늘려가는 방안을 주장하는 이유다.

문제는 기본소득이 구체적인 정책의 모습을 갖춰가며 현실적 가능성을 높여갈수록, 정작 지급액이 적다는 이유로 필요성과 효과를 외려 의심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소득이라 말하려면 어느 정도 금액이 돼야 하는데 10만원은 소득이라 하기 어렵다”며 “기본소득 주장은 쓸데없는 전력 낭비”라 일갈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논리가 대표적이다. 자칫하면 “부유층에겐 불필요하고, 빈곤층에게는 부족한 돈”이 될 수도 있는 기본소득은 과연 정책적 ‘가성비’를 챙길 수 있을까?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기본소득 딜레마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면 기본소득은 소액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충분성’ 요건은 장기 과제가 된 지 오래다. 말 그대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 상황이 찾아오지 않는 한,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소득은 불가능한 탓이다. 실제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2016년 총회에서 충분성 요건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바 있다. 기본소득의 주요 요건인 무조건성·보편성·개별성 등을 갖춘다면 적은 금액이어도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1982년부터 시작된 알래스카 ‘영구기금배당금’ 역시 지급액이 연 992달러(2020년 기준)로, 한 달에 10만원이 채 안 된다.

한국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도 월 4만~60만원 수준으로 ‘부분 기본소득’에 해당한다. 지급액 ‘수준’은 이미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월 30만원 기본소득’을 주장하며 이재명 경기지사의 월 4만원대 기본소득을 “용돈”이라 깎아내렸다. “생존과 생계를 위한 필수적 소요를 위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할 소득”이 되기에는 부족해 기본소득이 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병아리도 닭”이라며 “(김 전 의원이 주장한) 월 30만원으로 시작할 때 당장 필요한 연 190조원은 어떻게 마련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설전은 기본소득이 직면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금액이 적으면 ‘효과성 논란’에, 금액이 많으면 ‘실현 가능성 논란’에 휩싸이는 탓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기본소득은 아주 큰 재정이 드는 반면에 결국 지급액은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공공 재정 정책에 기대할 만한 재분배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적은 액수의 기본소득으로는 저소득층의 최저생계 보장도, 소득 재분배 효과도 거둘 수 없다는 지적이다.

소액 기본소득이라도 결국엔 완성형 기본소득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성장 모델’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본소득주의자들은 소액 기본소득을 완전 기본소득으로 가는 과정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국민적 동의 여부, 재정 여력 등 실증적 요소에 좌우된다”며 “알래스카 기본소득도 연 100만원이 조금 넘어 ‘완성형’이라고 하긴 어려운데 지난 30여년 동안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소액이어도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전 국민 고용보험 등 각종 복지정책과 조화를 이루어 ‘중층적 소득보장 체제’를 이룬다면 전체적 삶의 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데다, 저성장 시대에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만들어내는 경제 활성화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저소득층 생계 보장 △소득 재분배 △경제 활성화 등 각 부문에서는 효과가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모두를 합친 복합적인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기존 복지정책이나 경제정책과 차별점을 가진다는 주장이다.

물론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이 주는 무형의 효과도 중요하다.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기도 청년수당 성과를 분석해보면 기본소득은 삶을 나아지게 하고 있다”며 “취업을 못 했거나 가난해서 ‘불쌍하니까 받아라’ 하고 주는 돈과 당연히 내 권리여서 받은 돈은 분명 다르다”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의 지지 기반은 누구인가?

기본소득을 시행할 경우 80% 이상의 국민은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을 테니 국민 동의를 얻어내기 어렵지 않다는 게 기본소득주의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지사도 “기본소득 목적세 도입 시 80~90%의 국민이 ‘내는 기본소득세’보다 ‘받는 기본소득’이 많다는 걸 알게 될 때 기본소득용 증세에 나서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돈 10만원이어도 거저 주니 좋다’ 정도의 공감대로는 소득분배 체계의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정책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기본소득은 누군가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데다 공동체 전체의 재화 분배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이 정책을 강력하게 추동하는 계급과 정치세력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급액 수준이 실제 기본소득의 효과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까지 좌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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