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피폐화하는 농촌지역을 복원할 대안으로서의 ‘지역순환경제’와 이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농촌기본소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경기 안성의 한 들녘. 안성/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지하다시피, 지역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다. 더 저렴한 임금과 생산비용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그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지역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지역 산업이 해체되고 있다. 또, 지역경제를 살려보겠다는 명분으로 시민 혈세를 대거 투입하여 유치한 대기업 계열 분공장 또는 지역 지사는 지역경제에 기여하지 못 하고 되레 그곳에서 벌어들인 돈을 그들 본사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보내고 있다. 나아가 지금 득세한 신자유주의적 지역정책의 기조는 이와 같이 지역경제가 핍진되어 가는데도 ‘일본식’ 지자체 권역 통합 등의 대응으로 지역의 문제에 대해 주민이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기회를 봉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지방재정과 관련하여 그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점이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생활권’에 포함되지 않는 주변 지역에 대한 관점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 중의 지역’인 농촌의 실상은 어떨까. 그간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 인구의 급격한 도시 이주와 이로 인한 농촌사회의 고령화를 초래했다. 국내 총인구 대비 농촌인구의 급감은 그 반증이다. 도시와 농촌 간의 양극화도 날로 심화되고 있다. 대외환경도 크게 변화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국내 농업의 교역조건은 급격히 악화했다. 이로 인해 국내 농업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농촌경제를 지탱해오던 소득, 소비, 투자 등과 같은 농촌 내부의 동력이 상실되었으며, 그 결과 국내 농촌경제의 자기 완결성이 저하하면서 농촌사회 전반이 피폐화하기 시작했다. 농가 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니, 농촌경제는 지금 숨통이 끊어질 직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이 이른바 소멸위기를 겪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역 중에서도 그 피폐화가 심각한 농촌에 대한 공공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농촌 지역은 식량 공급, 생태계 보전, 지역사회 유지와 같은 근원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도, 그 피폐화에 대한 정책적 보상은 미흡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과 농촌사회를 복원시키는 조건으로서의 ‘대안적인’ 지역경제 모델을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지역순환경제’다. 이는 소득·자산·자금·조달력의 역내 환류를 유도해 지역 안에서 창출된 경제적인 부(Wealth)의 외부 유출을 방지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지역경제 운영에 대한 지역 주민의 관여를 담보하고, 이른바 ‘생활권’에 포함되지 않은 주변 지역을 포섭하며,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지역화폐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적, 시민실천적 개념이다. 이와 같은 ‘지역순환경제’는 국내외 각지에서 지역을 살리고 또 농촌을 복원해내는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역순환경제를 농촌 지역사회에 접목하면 크게 세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 농촌 내부의 소득, 생산(투자), 자금의 역내 환류를 통한 농촌 경제구조의 자기 완결성이 강화되고, 둘째, 농촌경제의 안정성과 농촌 내 주민자치가 확대되며, 셋째 그 귀결로서 농촌사회 전반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농촌사회에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농촌기본소득’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농촌기본소득이 어떤 경로로 ‘지역순환경제’ 구축에 기여하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농촌기본소득은 농촌주민의 ‘지역화’를 실현해낸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농촌 주민들의 지역 내 소비가 커지고, 아울러 지역 내 생산과 조달이 활성화된다. 이는 농촌 지역 외부의 기업 및 생산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 지역 경제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이전보다 커질 수 있다.
둘째, 농촌기본소득은 지역 내에서 생산된 것을 소비하는 문화를 중시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셋째, 농촌기본소득은 농촌 지역 내 산업연관을 강화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킨다. 농촌기본소득을 농촌 주민에게 지급하면 농민은 자신의 농법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고, 비농민 주민들은 농촌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화된다. 나아가 농촌으로의 인구 유입을 유도해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농민의 조달력 확대, 농촌 내 수요 자극, 소비 증대, 농업생산 증대로 이어지게 되면서 농촌 내 비농업 산업 분야를 활성화시켜 결국 농촌 지역 내 산업연관을 강화시켜낼 수 있게 된다. 이는, 농촌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이종 산업 간 교류를 유도하여 농업과 비농업 부문의 생산에 있어 안정적인 계획을 가능케 함과 동시에 보건, 교육, 의료, 복지 등 농촌 내 사회서비스 시장을 확대시켜 마을공동체 복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넷째, 농촌기본소득은 농촌의 생태적 지역발전도 담보한다. 농촌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농촌 주민들이 확보하는 이른바 ‘시간 재량권’은 자기실현, 주민자치, 농촌혁신 그리고 농촌경제를 자극할 여러 활동이 벌어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생태농업이나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등의 지역혁신을 유도한다. 다섯째, 농촌기본소득은 농촌 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한다. 농촌기본소득을 통해 얻은 ‘시간 재량권’은 농촌 주민의 ‘자유시간’을 늘려 농촌의 여러 문제들을 농촌주민이 직접 검토하고 또 국가의 농정에 대해서도 지역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농촌에서의 탄탄한 주민자치 체제는 농촌의 ‘지역순환경제’를 위한 인적, 정치적 조건이자 농촌기본소득의 귀결이다.
소득, 조달력, 그리고 사람이 그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전 세계 각지 농촌들의 고민은 지역 안에서 그 동력들이 돌고 또 돌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지역순환경제’가 농촌기본소득과 잘 맞는 조합이란 사실이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 교수(후기산업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