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시 삼미시장에서 상인과 주민이 지역화폐 ‘시루’로 옷값을 거래하고 있다. 홍용덕 선임기자 ydhong@hani.co.kr
경기도가 하반기에 실시하려는 농촌기본소득은 주민들에게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를 지급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만 24살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기본소득과 산모에게 지급한 산후조리비 지원사업뿐 아니라, 지난해에 전 도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재난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해왔고, 올해 농촌기본소득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농민기본소득의 지급수단으로도 지역화폐를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지역화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부터 시행한 청년배당 때부터 지급수단으로 활용됐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와 결합한 기본소득이 소비를 촉진하고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을 증대하는 ‘복지적 경제정책’이라는 지론을 펴고 있다. 특히 농촌기본소득은 특정 지역 내 전체 주민에게 지급한다는 특징으로 인해 지역 내에서 소비와 생산이 연계되는 경제 순환의 효과가 정책의 주요 목표이고, 이로 인해 지역화폐의 역할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역화폐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란 일각의 비판도 나온다.
지역화폐, 코로나 19를 계기로 발행규모 급증
지역화폐는 코로나 19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2018년만 해도 성남시 등 66개 지자체가 총 3714억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했지만, 2019년에 172개 지자체가 2조2573억원을 발행한 데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중앙정부가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지난해엔 230개 지자체가 9조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했다. 이 발행액에는 지자체가 만든 자체 지급 결제수단인 제로페이(서울), 성남사랑카드(성남), 온통대전(대전), 탐나는전(제주) 등으로 발행된 것도 있지만, 정부가 신용카드의 포인트 형태로 지급한 것들도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해 1차 추가경정예산안으로 지급된 아동수당 대상자 돌봄쿠폰, 저소득층 소비쿠폰, 노인일자리 쿠폰뿐 아니라, 2차 추경으로 지급된 전국민 재난지원금의 상당액도 이같은 신용카드 포인트 형태의 지역화폐로 지급했다. 지역화폐가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상의 정의 규정상으론 ‘지방자치단체장이 일정한 금액을 기재해 발행한 증표’이지만, 중앙정부가 정책적 수요에 따라 지급한 신용카드 포인트 역시 한 지역 내에서 소상공인에게만 지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화폐로 분류된 것이다.
지역화폐의 발행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정책발행형으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급하는 각종 수당, 쿠폰 등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할인발행형이다. 지역의 주민이 한도 내에서 할인된 금액으로 지역화폐를 구매하고, 할인된 금액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눠서 부담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6월에 발간한 ‘2020년도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역화폐의 판매할인율 지원에만 국비 6689억원, 지방비 15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할인 발행에 들어가는 재원이 전체 발행액인 총 9조원의 9% 정도에 달한다.
지역화폐에 대한 비판도 주로 할인발행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적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송경호·이환웅 부연구위원이 지난해 12월에 발간한 보고서인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에서도 지역화폐를 발행하는데 들어가는 정부 보조금 9000억원의 경제적 순손실이 460억원 규모이며 관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순손실의 규모는 지난해 한 해에만 2260억원으로 커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 보고서에도 “동 사업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의견이 존재한다”며 “과학적 성과평가를 통해”, “상품권 발행의 적정규모와 지원수준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실렸다.
조세연 “인접지역 소비는 감소 효과”
전문가 “지역화폐 용도 착각한 분석
대기업 매출 소상공인 이전이 목적”
앞서 조세연이 지난해 9월 보고서의 요약본을 발표하면서 지역화폐 효과성 논쟁이 촉발됐다. 이후 진행된 논의를 살펴보면 지역화폐 찬성과 반대 양쪽은 서로 주목하는 효과가 달랐다. 조세연쪽은 지역화폐가 지역 내에서만 소비되는 효과에 집중했다. 이 효과의 일부 영향으로 인해 인접한 타지역의 매출이 지역화폐 발행 지역으로 이전되고, 그 결과 인접 타지역의 소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조세연쪽은 설명했다. 쉽게 말해 서울 외곽 지역의 주민들이 같은 생활권에 있는 경기도에 가서도 소비를 하게 되지만, 서울서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가 지급될 경우 이를 사용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서울 안에서 소비를 한다는 의미다. 조세연쪽은 이 효과 때문에 지역화폐 발행 지역이 인접 지역으로 확대될 것이고, 이렇게 모든 지역이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타 지역의 매출을 이전해 발행지역 내 매출을 증가시키는 효과는 사라지고, 각 지자체의 발행 비용만이 순비용으로 남는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세연쪽의 요약보고서가 공개되자, 경기연구원이 바로 ‘2019년 1~4분기 지역화폐의 경기도 소상공인 매출액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간해 반박에 나섰다. 경기연구원은 지역화폐 결제액이 증가했을 때 소상공인 매출액이 45% 증대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이는 지역화폐 결제액 100만원 만큼 증가할 때마다 소상공인 매출액은 145만원 가량 증가했다는 의미다. 경기연구원은 지역화폐가 소비를 유도했다는 실증적인 통계를 제시한 셈이지만, 조세연이 주장한 타 지역의 소비를 이전한다는 주장을 반박하진 않았다.
지역화폐를 접목한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을 설계했던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지난 4월20일 주최했던 제3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에서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는 지역화폐의 목적을 착각한 것”이라며 “지역화폐의 목적은 타 지역의 매출을 뺏어오는 게 아니라, 지역 내에서 대기업으로 몰리던 매출을 소상공인에게 이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소상공인을 살려보려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설립장소 등을 규제했지만, 전부 성공적이지 못했다. 반면 지역화폐는 소상공인에게만 소비할 수 있도록 규제를 했고, 소상공인의 매출을 늘리는 효과가 있었다. 조세연의 연구대로 인접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도록 유도해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 발행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대기업에서 소상공인에게 매출이 이전됐으면 정책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화폐는 정책 목적에 따라 시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소멸되는 형태로 발행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직접적인 소득 지원이 다른 재정지출에 비해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는 지원금액의 상당액이 바로 소비되지 않고 저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은 3~4개월이 지나면 사라지는 ‘소멸형 지역화폐’로 지급됐고, 이는 현금성 복지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4월29일 경기도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던 조세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 정부도 지난해 코로나 확산 대응으로 한국처럼 전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했으나, 소멸성 디지털 화폐를 사용한 한국의 소비 효과가 더 컸다"고 평가했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