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김, 멸치, 새우, 미역, 다시마 등 건어물을 미리 주문해 쟁여두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게티 이미지 뱅크
서울 성북구에 사는 40대 주부 강아무개씨는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소식을 듣고 지인들과 멸치·다시마·미역 등 수산물 공동구매에 나섰다. 강씨는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오염수 방류에 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대화가 오갔고, 친척 중 한 명이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내가 앞장서 공동구매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한 동안 수산물을 먹기 어려울 것 같다. 건어물은 말린 제품이라 밀봉을 하고 냉동보관을 하면 오래 먹을 수 있어 친구들과 상의해 1년치를 한꺼번에 쟁여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2일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오염수 해양방류 설비 시운전에 돌입한 가운데 수산물과 소금 등 먹거리에 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먹일 건어물과 천일염을 사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가 하면, 횟집·초밥집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들은 자칫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구에 사는 30대 주부 노아무개씨도 원전 오염수에 대한 불안감이 치솟으면서 최근 마트에 가서 마른 김을 사재기했다. 노씨는 “초등생 딸이 김 없이는 밥을 먹지 않는데, 혹시라도 오염수가 방류되면 사 먹기 어려울 것 같아 미리 1년 먹을 양을 구매했다”며 “조만간 마트에 가서 천일염도 구매해 원전 오염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김을 집에서 재워 먹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12일 국회 앞에서 전국어민총연맹과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 주최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온라인에 있는 다수의 맘카페에는 강씨나 노씨처럼 먹거리 걱정 탓에 “소금이나 건어물 등을 미리 사둬야 하는 것 아니냐”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구매는 아예 포기해야 하는 거냐”는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일본이 방류 시설 시운전을 끝내고 올여름 본격적인 방류에 나설 경우, 가격이 급등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맘카페에 글을 올린 한 누리꾼은 “보관·유통 기간이 긴 미역·다시마·새우·멸치 등 건어물과 김치 등에 넣는 젓갈류를 미리 구매해뒀다”며 “하다못해 고기를 구워 먹어도 소금을 치는 상황이니 소금값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를 것 같다. 나중엔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리 사서 쟁여놨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의 위기감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정아무개(50)씨는 <한겨레>에 “가뜩이나 날이 더워져 장사가 잘 안되는 판에 일본이 당장에라도 오염수를 방류할 듯하니 그나마 있던 손님도 끊길까 걱정이 태산”이라며 “지금까지는 원산지 표기를 크게 적어두고 손님들을 안심시켰는데, 오염수가 방류되면 일본산이든 국내산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냐. 다 안 팔릴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오염수 방류 전 소금 대량 구매에 나서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이미 소금값이 크게 오른 터라 한 푼이라도 더 싸게 구매하려는 것이다. 관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자고 일어나면 소금값이 5천원씩 뛰고 있다. 온라인 일부 업체에서는 벌써 ‘신안군 산지직송 천일염 주문이 폭주해 일시품절됐다’는 안내글이 올라오고 있다” 전했다.
전남 신안군 신의도 소금밭 전경.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천일염 산지가격(20kg)은 지난 4월 첫째 주 1만4119원에서 이달 첫째 주 1만7807원으로 두 달 새 27%나 가격이 뛰었다. 앞서 지난 8일 신안군수협직매장은 ‘신안천일염 2021년산 20kg’ 가격을 2만5천원에서 3만원으로 올린다고 공지했다. 신안군수협직매장 쪽은 “수매단가 및 인건비가 상승해 부득이하게 가격을 올렸다”며 “전국적으로 천일염 택배량이 급증해 택배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신안군 염전은 전국 천일염 생산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현지 소금 가격 인상이 아직 마트 등 소매점에 곧바로 반영되지는 않아 소비자의 체감 인상률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해양수산부는 소금 가격 상승에 대해 “올해 4~5월 천일염 최대 생산지인 목포 인근 지역 강수일수가 22일로 평년(15.6일)이나 전년(8일)보다 많아 천일염 생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가 아닌 날씨 탓이라고 설명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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