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경기 일산 킨텍스의 서울모터쇼에서 현대자동차 차량지능화사업부의 황승호 부사장이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를 시연하며 커넥티드카 선행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AI)과 로봇기술, 빅데이터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들은 이미 자동차에 적용 중이거나 채택을 앞두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미래의 자동차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동차 산업의 흐름과 미래의 방향성은 모터쇼에서 그 얼개를 엿볼 수 있다. 선행 기술들이 대거 선보일 뿐만 아니라 시연을 통해 상용화 가능성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경기 일산 킨텍스의 ‘2017 서울모터쇼’ 현대자동차 전시관. 양웅철 현대차 부회장이 연단 가운데에 자리잡은 무선연결장치에 대고 “블루링크, 지금 아이오닉의 위치가 어디지?”라고 말한다. ‘블루링크’는 현대차가 케이티(KT)와 함께 개발한 차량용 텔레매틱스(차량 무선인터넷) 서비스다.
무대 뒤편 차량에서 “일산 킨텍스입니다”라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양 부회장이 “아이오닉을 무대로 보내줘”라고 하자 아이오닉 전기차가 자율주행으로 스르르 등장한다. 탑승자가 운전대와 브레이크에 손과 발을 전혀 대지 않는데도 아이오닉은 무대 가운데에 정확하게 자리를 잡고 멈춰섰다.
레이더, 카메라 등을 활용한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이미지.
음성인식과 자율주행의 결합에 이어 커넥티드 차량 기술도 선보였다. 커넥티드카는 사람과 차, 집과 사무실 등을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해 서로 소통하는 차다. 차량 제어, 인공지능, 네트워크,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현대차는 차 안에서 버튼을 눌러 집 안의 불을 켜고 차에서 듣던 음악을 이어서 듣는 ‘카투홈’(Car to home), ‘홈투카’(Home to Car) 연동 기술도 시연했다. 차 안과 외부에서 각각 관리하고 조종할 수 있는 기능이다. 현대차는 “홈투카 서비스를 내년에 국내 시장에 선보인 뒤 카투홈 서비스는 2019년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서비스는 자율주행 기술과 연동해 이뤄진다. 차와 집, 사무실이 하나로 연결될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현대차·KT, 기아차·SKT 공동 개발한 자율주행+음성인식 기술 관람객 눈길
비록 제한된 공간이지만 현대차는 모터쇼 전시장에서 커넥티드카와 이로 인해 변화할 미래상을 선행기술 시연을 통해 실감나게 보여줬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면 집 안이나 사무실에서 차량을 원격 제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반대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황승호 현대차 차량지능화사업부장(부사장)은 “수년 전부터 카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하고 차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가공과 처리를 맡을 독자 운영체계(ccOS)를 개발해왔다”고 전했다.
오는 9일까지 열리는 서울모터쇼는 신차나 콘셉트카의 단순한 전시를 넘어 미래 기술의 경연장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특히 정보통신기술 업체들의 가세는 자동차를 한층 더 미래지향적인 기기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케이티는 음성인식 인공지능 서비스를 차와 사람, 차와 집으로 확대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차량을 제어하는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진전된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기아차는 에스케이(SK)텔레콤의 음성인식 기기 ‘누구’를 통해 자동차의 사물인터넷 플랫폼과 연동하는 서비스를 시연했다. 자동차 위치 찾기, 시동과 전조등·미등 켜고 끄기, 온도 조절 등의 기능을 갖췄다. 관람객들은 현장에서 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이 벤츠의 미래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이날 커넥티드와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한 미래 전략을 발표한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은 “이제 자동차는 외관이나 성능보다 얼마나 똑똑한지가 중요하다. 자동차는 더 이상 이동하는 데에만 쓰이는 교통수단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사무실 사물인터넷 연결 커넥티드카 벤츠, 모바일 관리·자동주차 연내 도입네이버랩스, 로봇 동원 ‘인지 기술’ 집중IT·AI 결합 ‘똑똑한 미래차’ 현실로 성큼
벤츠는 개발중인 ‘메르세데스 미 커넥트’를 통해 미래 비전과 기술 혁신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 기술은 케이티와 협력해 국내 환경에 맞게 출시한 4세대 이동통신기술인 롱텀에볼루션(LTE) 기반의 커넥티드카 서비스다. 자동 주차 기능과 모바일 차량관리 프로그램 등이 담겨져 있다. 벤츠는 올해 하반기부터 이 서비스를 국내에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베엠베(BMW)는 에스케이텔레콤과 손잡고 5세대 무선통신 커넥티드카 기술을 개발중이다.
정보통신기술 업체와 자동차 업체 간의 협업이 빈번해지는 것은 미래의 자동차에 새로운 가치와 비즈니스 기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모터쇼 조직위원회가 ‘미래를 그리다, 현재를 즐기다’로 주제를 잡은 것도, 자동차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미래 전략을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최대의 가전박람회로 불리는 미국 국제소비자가전전시회(CES)가 더이상 가전업체만의 잔치가 아닌 것처럼 모터쇼도 더이상 자동차만의 전시가 아닌 것이다. 양웅철 부회장은 “자동차와 정보통신기술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세계 산업의 트렌드다. 커넥티드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초연결 지능형 생활 스타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랩스가 선보인 3차원 실내정밀지도 제작로봇 M1. 네어버랩스 제공
국내 최대 포털업체인 네이버는 이번 모터쇼를 통해 새롭게 주목받는 ‘자동차 관련 업체’로 떠올랐다. 네이버의 기술연구개발 자회사인 네이버랩스는 전시장 한켠에 단독 부스를 마련하고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를 선보였다. 네이버가 자율주행차를 공개했지만 자동차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가 추구하는 기술의 방향성은 공간과 이동에 관한 연구를 통한 ‘생활환경지능’이다. 네이버 부스에서 주목받은 것은 자율주행차가 아니라 3차원 정밀지도를 제작하는 키 1m짜리 로봇이었다. 네이버는 ‘인지’ 분야에 집중해 자율주행 기술의 고도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지’는 정밀한 자기 위치, 사물의 인식과 분류, 상황의 판단 등 자율주행에서 핵심적인 감각기관과 두뇌 역할을 한다. 그만큼 정보와 데이터의 분석 처리가 중요하다. 송창현 네이버랩스 대표는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자율주행 분야의 연구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기계학습 기반의 기술을 실제 차량 주행에 접목시키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경제적이고도 정확도가 높은 인지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업체로는 현대모비스와 만도가 각기 자율주행 기술과 함께 가상체험관을 선보였다. 현대모비스는 고속도로 주행지원시스템 개발과 상용화 계획을 발표했다. 조서구 현대모비스 DAS(운전자지원시스템)부품개발센터장은 “2020년까지 자율주행 플랫폼을 개발해 2022년부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는 서울~부산 간 운전자 개입 없이 고속도로 주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새로운 모빌리티의 시대에 미래의 자동차는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모터쇼를 찾은 관람객들은 자율주행과 커넥티드 기술에 신기해하고 때론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을 현실에 접목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극히 제한된 구간과 공간에서 이뤄지는 시험만으로는 상용화를 이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업체마다 실제 도로운행을 통해 데이터를 쌓고 기술을 축적하는 이유다. 사물인터넷과 연결된 커넥티드카든 운전자 조작 없이 움직이는 자율주행차든 새로운 모빌리티의 세계가 다가온다고 해서 당장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전개되고 있는 혁신 기술과 실험들이 미래차 시대를 여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임을 서울모터쇼는 보여주고 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home01.html/◎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