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라이프]
2015년2월11일 인천영종대교에서 차량 100여대가추돌하는사고가일어나 2명이 숨진 것을 비롯해 다수의부상자가발생했다.이날영종대교는짙은안개로가시거리가10m도되지않았다. 사진은 에어백이터지지않은한트럭 내부 모습. 영종대교/이종근기자root2@hani.co.kr
#1. 2016년 8월, 광주광역시 매월동의 한 고가도로 위에서 소형 화물차를 운전하다 앞차를 들이받은 ㅅ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사고 차량에는 에어백이 장착돼 있지 않았다.
#2. 소형 화물차로 경기도와 대전 간 고속도로를 매일 왕복 운행하는 택배기사 ㄷ씨. 2016년 11월2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시속 150㎞로 질주하던 외제차에 추돌당해 차량이 완전히 뒤집혔지만 에어백이 터지면서 다행히 전치 4주의 상해만 입었다.
중국산 화물차에도 있는 장치지만
국내엔 의무 규정 없어 ‘사각지대’ 실례로 든 두 사고는 에어백이 탑승자의 안전에 얼마나 직결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ㄷ씨는 “폐차할 정도로 차가 크게 망가졌지만 에어백 때문에 생명을 건졌다”고 말했다. 에어백은 자동차의 필수 안전장치로 인식된 지 오래됐지만 의외로 국내 소형 화물차에선 에어백이 달린 차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ㄷ씨가 타고 다니던 소형 화물차는 중국산이었다. 국산차에 비해 한 수 아래의 기술로 평가받던 중국산 소형 화물차에는 국산 경쟁 차종에 없는 에어백은 물론 배기가스 자기진단장치(OBD II), 타이어 공기압 경보장치(TPMS), 차체자세제어장치(ESC), 브레이크잠김방지시스템(ABS) 등의 안전사양이 기본으로 장착돼 있다. 이 가운데 에어백은 차량 충돌 때 외부 충격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안전장치로 꼽힌다. 요즘 출시되는 신차에는 에어백 네다섯 개가 기본이고 고급 차량에는 열개가 넘게 달리기도 한다. 기술 진전과 첨단 안전장치 개발로 탑승자 안전성이 크게 강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차종 간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문제는 자동긴급제동장치(AEB) 같은 비싼 안전장비는 놔두더라도 탑승자 안전에 가장 기본인 에어백조차 장착이 안 돼 있는 차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마스·라보, 돈 줘도 장착 불가
1t 포터·봉고는 일부만 장착 가능 라보와 다마스에는 에어백 자체가 달려있지 않다. 옵션으로도 선택할 수 없다. 에어백 말고도 대부분의 안전장비가 장착돼 있지 않다. 비용 부담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정부가 안전과 환경 규제를 강화하자 2013년 말 라보와 다마스 생산을 중단해버렸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서민생계형 운송수단임을 내세워 라보·다마스의 차체자세제어장치와 브레이크잠김방지시스템의 의무 장착을 2020년까지 6년이나 미뤄줬다. 하지만 기본적인 안전장치의 설치 유예가 타당한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포터는 15년 만에 차 값이 2배 넘게 올랐지만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현대차는 2016년 8월에 들어서야 새로 출시한 2017년형 포터Ⅱ 2WD(2륜구동) 모델에 한해 에어백을 기본으로 장착했다. 그러나 4WD(4륜구동) 모델과 특장차에는 에어백을 장착할 수 없게 돼 있다. 해당 차량 구매자들은 “돈을 추가로 내고서라도 에어백을 달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토로한다. 기아차 봉고도 포터와 비슷하다. 도로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다닌다. 화물차도 많다. 승용차와 달리 화물차는 차량 전면부에 공간이 거의 없다. 특히 소형 화물차는 충돌 또는 추돌 사고 때의 충격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바로 전달된다. 미국에서 일찍이 트럭을 포함한 모든 차종에 에어백 설치를 의무화한 것과 달리 국내 자동차 관련 법령에는 아직 에어백 장착에 관한 의무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에어백 없이도 차량 판매가 가능한 것은 이런 허술한 안전 법규 탓이 크다. 몇 년 전 보험개발원에서 경차와 소형 화물차의 안전성을 비교 평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시속 64㎞의 속도로 달려와 운전석 쪽을 40% 정도 충돌시켰는데 포터와 봉고는 최하 등급인 4등급이 나왔다. 앞범퍼에서 운전대까지의 거리가 짧아 충격을 흡수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에어백이 장착되지 않은 게 가장 취약한 대목으로 꼽혔다. 마티즈와 모닝은 각각 1, 2등급을 받았다. 같은 조건의 사고에서 소형 화물차가 경차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다. 소형 화물차 치사율, 승용차 2배
“독과점 허물고 안전법규 강화를”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일정한 사고 건수 당 사망자 수를 뜻하는 치사율은 화물차가 승용차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게 나온다. 그만큼 화물차가 안전에 취약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안전 규제가 강화된 승용차의 경우 에어백은 물론 각종 안전장치가 기본으로 장착되는 추세지만 서민생계형 소형 화물차들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서민생계형 운송수단이라는 이유로 안전 규정을 적용하지 않거나 차일피일 미뤘다. 일부 제조사는 소형 화물차의 안전과 환경 규제 강화에 맞서 단종 같은 극단적 조처를 취하기도 했다. 차량에 안전장치를 넣으려면 추가 비용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작은 화물차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서민들에게 굳이 가격 부담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안전은 이제 옵션이 아닌 기본인 시대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비용 부담을 생명과 직결되는 기본 안전장치를 유예할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최근 들어 소형 화물차는 대기업의 택배 차량으로 많이 사용되는 추세다. 택배기사로 고용돼 생계를 잇는 운전자들한테 차량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생계형 소형 상용차 시장이 독과점이다 보니 안전장치가 굉장히 미흡할 뿐 아니라 안전 규제도 느슨하다. 기본 안전장비를 갖추도록 정부는 미비한 법령을 정비하고 제조사들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소형 화물차 시장에서 1t 트럭은 포터와 봉고가, 경상용차는 라보와 다마스가 20여년째 장악하고 있다.
보행자 보호용 에어백도 등장
최근 출시되는 신차에는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개발된 안전장치들이 많이 장착돼 있다. 이른바 ‘능동적 안전장치’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충돌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멈추는 자동긴급제동장치(AEB), 차선 이탈을 막는 차선유지보조장치(LKAS),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해주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감지하는 사각지대경보시스템(BSD)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이 아무리 긴요하게 쓰이더라도 사고가 났을 때 최후의 안전장치는 에어백이다. 에어백은 안전벨트와 함께 탑승자 보호장치의 기본 중 기본이다. 에어백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머리와 어깨, 무릎은 물론이고 안전벨트에서도 에어백이 터지고 차량 천장에서도 터진다. 한국지엠(GM)은 지난해 6월 출시한 신형 경차 스파크에 뒷좌석 사이드 에어백까지 모두 8개의 에어백을 장착했다.
최근에는 보행자 보호용 에어백도 등장했다. ‘자동차 안전의 대명사’로 통하는 볼보가 안전에 대한 철학을 탑승자에서 보행자로 확장시키면서 개발에 성공했다. 볼보는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가 쓰는 3점식 안전벨트를 1959년에 개발한 업체다. 볼보는 보행자 에어백 말고도 사람과 동물, 자전거 등을 식별해 추돌을 방지하는 기술을 개발해 고급 세단 ‘더 뉴 S90’에 적용하고 있다. 차량 탑승자뿐 아니라 보행자까지도 고려하는 안전 철학을 엿보게 하는 기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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