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전 북베트남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하노이의 럼 카페 외부 모습. 이한우 제공
베트남 가정을 방문하면, 주인장은 “씬 머이 우옹 느억” 하며 ‘물을 먹인다’. “씬 머이”가 권유하는 뜻이고, “우옹”이 마신다, “느억”이 물이니, 물 마시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생수, 차, 커피 등을 모두 포함한다. 베트남 북부 사람들은 예전에 커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셨는데, 남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커피에 더 친근했다. 차 위주였던 베트남의 ‘물 먹이기’ 문화도 이제는 커피로 바뀌고 있다. 하기야 베트남이 이제 커피 생산과 수출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하게 됐으니,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이 수입하는 커피 생두의 4분의 1, 많을 때는 3분의 1을 베트남에서 들여왔으니 베트남 커피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베트남에 커피나무가 들어온 것은 1857년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언제부터 원두가 생산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 서너 해 뒤였을 것이다. 커피가 일반에 보급된 것은 1870년대 프랑스 선교사들이 도입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프랑스는 1858년 베트남을 침공하기 시작해 1862년부터 남부 땅을 빼앗기 시작했으니, 커피를 들여온 시기와 식민 지배를 한 시기가 맞물린다. 프랑스는 1883년에 이르러서는 베트남 전국을 식민 지배하에 두게 된다. 식민지하에서 모던보이, 모던걸들은 앞서서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다. 여느 식민지처럼 베트남에도 식민지 근대화가 진행되며 카페 문화가 만들어졌다.
베트남은 현재 세계 2위의 커피 생산 및 수출국이다. 남서부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대부분 로부스타종이나, 아라비카종의 고급 원두도 생산된다. 베트남 커피 산지 중 하나인 닥농(Dak Nong)의 한 커피 농장에 커피나무의 꽃이 활짝 핀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1941년부터 베트남은 프랑스와 일본의 공동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베트남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하노이에서 9월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자 프랑스가 식민지를 복구하려고 재침입하여 1946년 말부터 독립전쟁을 벌이게 된다. 프랑스가 도시 지역을 점령하면서 하노이도 1954년 5월 프랑스와의 전쟁이 끝나기까지 한동안 프랑스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면서 지역별로 유명한 커피점들이 생겼다. 사람들은 하노이에서 전통 있는 카페로 ‘년, 니, 지, 장’(Nhan, Nhi, Di, Giang)을 든다. 카페 ‘년’은 1946년에 문을 열었다. 거기에 가면 쓴맛이 강하고 진한 로부스타 커피를 맛볼 수 있다. 프랑스 영향을 받아, 강하게 볶는 프렌치 로스팅을 하기에 커피 맛이 대체로 진하다. 또한 옛 커피점들은 주로 로부스타종 원두를 썼기에 쓴맛이 강했다. 그래서 커피에 연유를 넣은 ‘까페 스어’가 유행했나 보다. 쓰고 진한 커피에 달콤한 연유가 잘 어울린다. 커피에 달걀을 넣는 에그 커피는 1946년 문을 연 카페 ‘장’에서 시작됐다. 이후 하노이 옛시가지 딘띠엔호앙 거리의 한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만 카페 ‘딘’(Dinh)의 주인장 ‘딘’도 아버지 ‘장’을 따라 에그 커피를 만들었다. 이제 에그 커피는 하노이의 최고급 호텔인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의 카페에서도 팔고 있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통일 이전 북베트남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하노이의 럼 카페 외부 모습. 이한우 제공
1938년에 개점한 호찌민시의 째오래오 카페에서 융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 째오래오 페이스북 갈무리
하노이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또 다른 곳으로 1952년에 개업한 카페 ‘럼’(Lam)을 들 수 있다. 커피점 주인장 이름을 따 만든 카페 ‘럼’은 화가를 비롯한 작곡가, 작가 등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유명하다. 얼마나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가난했던 화가들이 커피값 대신 던져주고 갔다는 그림들이 지금도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유명한 화가 중 하나인 부이쑤언파이(Bui Xuan Phai)는 담뱃갑에 그림을 그려 건네주고 갔다고 한다. 그 담뱃갑 그림을 아직 보진 못했다. 카페 ‘럼’은 이제 그의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여전히 작은 탁자와 의자에 붙어 앉아 수십년 된 맛을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가난했던 시절 예술가들이 아침마다 커피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던 바로 그 탁자들이다. 이제는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이나 예스러운 맛을 보려는 사람들을 잡아끌 뿐이다.
이런 하노이 커피점에 버금가는 전통의 때가 묻어나는 소박한 집을 호찌민시(옛 사이공)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째오래오(Cheo Leo) 카페일 것이다. 1938년에 개점했는데, 3군의 응우옌티엔투엇 109번지 골목 안에 있다. 융 드립 커피를 마셔볼 수 있는 곳이다. 조그만 라켓같이 생긴 채에 스타킹처럼 생긴 천을 매달아 커피를 걸러낸다. 좀 더 번듯한 곳으로는 옛 카티나(Catinat), 현재 동커이(Dong Khoi) 거리에 브로다르(Brodard), 지브랄(Givral), 라 파고드(La Pagode) 등이 있었다. 브로다르는 1948년 당시 카티나 거리에 베이커리로 문을 연 뒤 몇 번 간판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2019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50년에 개점한 지브랄은 지금의 동커이 거리 콘티넨털 호텔 건너편에 있었는데, 통일 전에는 기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라 파고드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식민지 시절의 카티나, 독립 이후 뜨조(Tu Do)로 불리던 서울의 명동과 같은 요지에 있었으니 당연했겠다. 이후 지브랄은 베트남의 부호 팜녓브엉(Pham Nhat Vuong)의 빈(Vin)그룹이 이 건물을 허물고 새 백화점을 지으며 없어졌다.
베트남이 통일된 뒤 경제상황은 매우 나빴다. 이를 극복하려고 지도자들은 1986년 말에 ‘도이머이’(쇄신)를 선포하고 개혁에 착수했다. 베트남 경제상황이 나아진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개혁 과정에서 민간기업들도 여러 개 생겨났다. 커피 업계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기업이 쭝응우옌(Trung Nguyen)이다. 카페 쭝응우옌이 만드는 믹스커피 지세븐(G7)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쭝응우옌은 하일랜즈(Highlands, 하일랜드)와 함께 전국에 가장 많은 커피전문점을 냈다. 이 두 브랜드가 베트남의 커피 맛을 표준화시켰다고 할 정도다. 쭝응우옌이 중원, 즉 미들랜드이니, 미들랜드와 하일랜드 간 경쟁이 붙은 셈이다. 베트남에서 커피는 주로 남서부 산간지대의 닥락성, 럼동성 등지에서 생산된다. 닥락성의 중심 도시가 부온마투옷이다. 고원 도시 달랏을 끼고 있는 럼동성은 지대가 높아 고급인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한다. 달랏은 프랑스 식민지배 시기에 휴양지로 개발된 곳이다. 호찌민시에서 사시사철 여름 속에 살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악지대인 달랏으로 휴양을 가곤 했다. 달랏 지역은 해발 1500미터에 있어, 아라비카 커피 생산에도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달랏 인근 꺼우덧(Cau Dat)은 아라비카 커피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스타벅스도 2015년에 꺼우덧 커피를 쓰기 시작했다.
당레응우옌부(Dang Le Nguyen Vu)는 1996년 커피 주산지인 부온마투옷에서 세 친구와 함께 쭝응우옌 커피점을 처음 냈다. 프랜차이즈 영업을 시작한 1998년 이후 4년 만에 400개의 커피점을 전국에 열었다고 한다. 그는 1971년 중부 해안도시 냐짱에서 났다. 그의 부모는 두 아이와 함께 1979년에 서부 산간지대의 ‘신경제지구’로 이주해 살던 벽돌공이었다. 신경제지구는 통일 후 도시의 과잉 인구를 분산하려고 이주시켰던 지역이다. 떠이응우옌(Tay Nguyen) 대학 학생이던 응우옌부가 이곳에서 쭝응우옌을 일으켜 ‘베트남 커피왕’이 됐으니 대단한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하일랜즈 커피가 영어로 빨간색 바탕의 간판을 내걸고 2002년에 1호점을 열어 쭝응우옌에 도전장을 냈다. 호찌민시 메트로폴리탄 빌딩에 열었던 하일랜즈 1호점은 지금 문을 닫았고, 그 옆에 커피빈이 생겼다. 하일랜즈 커피는 베트남 남부 태생으로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던 데이비드 타이(David Thai)가 스타벅스의 성공을 베트남에서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더 커피 하우스도 프랜차이즈 업계에 새로 이름을 올리고 경쟁에 나섰다. 최근 실적은 하일랜즈, 더 커피 하우스, 스타벅스, 푹롱(Phuc Long), 쭝응우옌 순이다. 현재 하일랜즈가 300개, 더 커피 하우스가 16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쭝응우옌은 100개 정도 매장을 운영한다. 쭝응우옌의 명성은 사라지고 있다. 이 밖에 아직 프랜차이즈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커피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를 슈퍼마켓 선반에 올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일리(Illy), 세가프레도(Segafredo),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글로리아 진스(Gloria Jean’s) 등 외국계 브랜드도 진출했으나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커피빈이 베트남에서 몇 군데 가게를 냈으나 고전하고 있고, 스타벅스는 좀 늦게 2013년 베트남에 들어와 2020년 말에 67개 매장을 가지고 3위로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 호찌민시 뉴월드 호텔 한편에 스타벅스가 넓은 현대적 매장을 냈는데, 그 후 길 건너편에 베트남 차와 커피를 파는 푹롱이 들어섰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스타벅스는 어쩌다 가는 곳이지만, 푹롱은 매일 갈 수 있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처럼 외국계 커피의 공세가 산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베트남 커피는 아직도 건재하다.
최근 복고풍 카페로 유명한 하노이시의 꽁 까페. 이한우 제공
복고풍인 꽁 까페 내부의 소박한 모습. 이한우 제공
베트남에서 복고풍으로 성공한 커피전문점은 ‘꽁 까페’(Cong Caphe)다. 여기서 ‘꽁’은 공산주의의 ‘꽁산’(Cong San)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이 카페는 2007년 하노이 구시가지 찌에우비엣브엉(Trieu Viet Vuong) 거리에서 조그맣게 시작했다. 건물 바깥벽을 국방색으로 칠하고 실내장식도 거칠고 투박하게 꾸며 개혁 이전 사회주의 분위기를 냈다. 실내는 낡은 탁자와 작은 나무 의자 등 소박한 것들로 채웠다. 20대 젊은이들은 개혁 이전 시기를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 시절이 궁금하긴 할 것 같다. 이제는 매장이 하노이에 24개, 호찌민시에 17개 있고, 이를 포함해 전국에 56개나 됐다. 베트남을 다녀온 한국인들의 유난스러운 ‘꽁 까페’ 사랑에 한국에도 7곳이나 매장(콩카페)이 생겼다. ‘꽁 까페’는 또 베트남 내 복고풍 카페 열풍을 일으켰다. 하노이에는 사회주의 시기 허름한 모습의 카페들이 문을 열었고, 호찌민시에는 통일 전 사이공의 카페 모습을 연출한 카페들이 등장했다. 아예 ‘레트로 카페’라고 이름 붙인 곳도 있다. 여기에 베트남의 전통 의상 ‘아오자이’를 소재로 한 영화, <꼬바 사이공>이 복고 문화 확산에 부채질을 했다.
이런 베트남 커피점 얘기도 머지않아 옛날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쭝응우옌, 하일랜즈, ‘꽁 까페’를 넘어 개인 로스터리가 우후죽순 생겼고, 널찍한 곳에 현대식 실내장식으로 멋진 분위기를 낸 카페가 수없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이한우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아시아 지역연구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 40년간 지역연구에 매진해왔다. 동남아시아의 경제·사회·문화적 중요성이 커진 신남방 시대, 연구소는 그동안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어 멀지만 가까운 이웃 동남아의 다양한 면모를 전한다. 랜선 여행을 하듯이 흥미롭게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