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창세기8, 6-11)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우리 임금이 되어주오’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라는 말인가?’ (판관9, 8-9)
1974년 9월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결성 미사를 한 뒤 사제들과 신도 등 2000여명이 십자가를 앞세워 첫 촛불시위에 나선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구약 성경 창세기의 제1부(1-11장)는 신화적 어법으로 기술한 신앙 고백서이며, 제2부(12-50장)는 아브라함을 축으로 펼쳐진 히브리 백성의 구원사입니다. 온 세상을 만드시고 마지막 날 자신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그리도 흡족해하셨던 하느님께서 왜 무서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렸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것은 제1부에 속한 ‘노아의 홍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와 에덴에서의 추방을 거쳐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그립니다. 인간은 무섭게 타락했고 창조주는 실망을 넘어 후회를 드러냅니다.(창세6, 6)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일을 후회한다는 성경 구절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곱씹어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저버린 인간에 대한 벌로 홍수를 선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노아라는 의인을 선택하여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재확인하십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든 노아는 거대한 방주를 만들고 자신의 가족과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한 쌍씩 배에 실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40일간의 홍수가 시작되었고 불어난 물은 세상을 삼켜버립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퍼붓는 비가 그치자 노아는 까마귀를 날려 보냅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날려 보낸 비둘기는 곧 방주로 돌아옵니다. 땅에서 물은 아직 빠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날려 보낸 비둘기가 드디어 올리브 햇순을 물고 돌아옵니다. 형벌은 끝나고 다시 인간은 지상에서 번성합니다. ‘노아의 방주’ 덕분인지 성경에서 비둘기는 성실, 신뢰의 상징이며 성령도 비둘기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올리브 나무 또한 평화와 풍요, 승리와 성취를 의미합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올리브는 소중한 자원이자 왕과 사제들을 축성할 때 사용한 기름의 원료입니다. 가히 축복의 열매라 말할 수 있습니다. 비둘기가 올리브 햇순을 물고 왔다는 데는 이렇게 다층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전하는 성서적 교훈은 한 번은 ‘쓸어버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멸망이 아니라 햇순으로 표징되는 제2의 창조입니다. 쓸어버림을 개인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목숨을 건 통렬한 회개와 자기 변혁이고 정치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혁명일 것입니다. 지킬 것이 하나도 없는 붕괴, 발밑이 무너지는 절망에서 진정한 회개가 시작됩니다. 부분적 회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적 회개만이 본질에 다가가는 열쇠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입으로만 회개한다고 하여 본질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재를 바르고 옷을 찢는 행위가 아니라 심장을 찢어라.”(요엘2, 13)라는 말씀을 되새깁니다. 죽을 각오로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든 정치든 사회든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혁명적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십자가 자체가 공(空)과 비허(卑虛)를 상징합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하느님 아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비허로 인해 가장 높은 곳에 오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300여 년은 박해의 시대, 순교자의 시대입니다. 당시 교부들의 서간에서 큰 교훈을 확인합니다. 같은 스승에게 같은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전혀 반대의 길을 갑니다.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도 가는 길이 엇갈립니다. 그 뿌리는 바로 이기심과 소유욕, 곧 탐욕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 인간들 역시 탐욕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큰 자유를 방종으로 남용한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오로도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악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고서, 하느님 앞에 어쩔 수 없는 큰 죄인임을 겸허하게 고백했습니다.(로마7장)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을 깨는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는 모든 종교의 기본 덕목이기도 합니다. 솔직한 것이 좋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완벽하게 솔직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느님과 내적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이 지혜의 삶입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햇순은 생명의 계승, 작은 것의 위대함, 희망을 상징합니다. 본래 햇순처럼 작고 여린 힘이 세상을 버팁니다. 허름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지만 진짜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람한 나무를 지탱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이고, 바로 그 뿌리가 햇순의 원천입니다. 우리 시대를 강건히 지탱하는 것이 민중이란 사실을 교회와 정치인, 언론이 되새겼으면 합니다.
1년 전 ‘역사기도’를 시작할 때는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산, 완덕의 경지 이상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저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이야기로 새 생명과 희망의 시대를 상징하는 ‘올리브 햇순’을 선택했습니다.
역사기도를 시작한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자는 의도였습니다. 기억의 힘은 올리브 햇순을 싹트게 할 만큼 위대합니다. 북의 애창가로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은 아름다운 회상을 묘사합니다. 심장은 생명체 실존의 핵심이며 인격체의 집약입니다. ‘내 심장에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사제품을 받던 그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이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함께 일을 도모했습니다. ‘심장에 남는 사람’ 노래에서는 만남과 상통, 사랑의 과정을 기억이라 말합니다.
기억이란 그때 만난 사람과 그때 했던 일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성서작가들 역시 기억에 기초해 생각과 행업을 집필했고, 기억에 기초해 하느님을 공경했으며, 기억에 기초해 역사를 새롭게 되새겼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이 기억으로 직조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장 기쁘고 아름다운 순간이 있으며 그것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염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는 힘이 기억입니다.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그중에서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억은 영적 힘이며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조상들을 모시는 제례의식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기억이 형식에 매몰될 경우 위선과 가식, 껍데기가 되기도 합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라고 하면서, 핵심을 놓친 채 불필요한 분란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유다인들도 똑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안 하면서 “그 대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바쳤노라”고 읊어대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을 향해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버린다”(마르코7, 9)고 무섭게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거짓말쟁이”(1요한4, 20)라는 말씀과도 상통합니다.
2018년 12월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에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나승구 신부가 아기예수 조각품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이 아니라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법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1조는 평등과 공공(公共)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전제합니다. 여기서 늘 스쳐 지나갔던 공화국(共和國, Res Publica)의 어원적 개념과 가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의 예로, 공공(公共)과 공화(共和)에서 앞 글자인 ‘공’의 한자어가 서로 다릅니다. 사실 두 단어의 어원은 같은데 이렇게 헷갈리게 표현했습니다. 본래 공공(公共) 질서는 공적 이익을 위한 법적 의미로 사용되고, 공화(共和)는 일치와 화합을 지향하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도 뿌연 관념만 남을 뿐 명확한 의미가 확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규정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민주’는 귀가 닳도록 들어왔지만, 공화란 말마디를 따로 떼어내면 생경하기조차 합니다. 그런데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된 임시정부의 헌법 초안을 설계한 조소앙(1887∼1958) 선생 등은 공화제를 강조했습니다. 이제 공동체의 일치, 화합을 위해 공화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민주공화국이 핵심입니다. 민주공화국이 확인되는 그때에만 자유의 참된 뜻이 확인됩니다.
요즘 ‘자유, 자유’를 외치는데 그 자유는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체가 전제되어야 하며, 민주공화국 안에서만 보장됩니다. 우리가 놓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공공화(公共和)라고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공공(公共)이라 하면 공안 통치가 연상되고 공화(共和)라고 하면 관념뿐이니 본래의 뜻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분리시킨 것을 온전히 하나로 묶고 그 본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다소 반복이 되더라도 공공화국(公共和國)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공공성을 깨는 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성경의 핵심 역시 공동체성의 회복과 공동선의 실현입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영적 투쟁”(에페6, 10-20)이라 말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인권과 민주회복의 헌신을 “기억 투쟁”이라고 부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을 “역사 전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역사기도는 바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편 작가의 종합기도인 것입니다. 역사기도는 공동체의 가치와 정의를 세우는 기도로, 역사 속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매일 매 순간 깨닫고 고백하고 실천하는 행업입니다.
1970~80년대 민주화 투신 현장에서 저희는 승려, 목사, 원불교 교무 등 많은 종교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체험과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다 보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듭니다. 반성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저는 교단이라는 틀에 종속되지 않고 처절한 자기반성을 통해 이 또한 넘어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국 가톨릭학생회의 초석을 놓으신 거목 나상조(1921∼2008)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1974년, 청년 사제이던 시절 나 신부님을 찾아뵙고 ‘개신교의 문동환 목사님과 동년배이시니 저희의 버팀목이 되어 주십사’ 간곡히 청한 바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저희의 뜻에 동조하시면서도 김수환 추기경과의 껄끄러운 관계 등을 들어 끝내 승낙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부님 은퇴 후에 찾아뵈었더니 “자네들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자네들이나 나나 다 예수님을 팔아먹고 사는 놈들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취중진담에 뒷덜미가 서늘해졌습니다.
비슷한 경험이 더 있습니다. 기독교 방송 인터뷰를 기다리던 자리에서 경기도 교육감을 지낸 이재정 성공회 신부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시죠?”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지난해 선종한 김택암(1939∼2021) 동료 사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 하셨는데 교회와 우리 사제들은 고작 소금 장수 노릇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저는 “소금 사려!”를 외치는 소금 장수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며 이 체험을 『암흑 속의 횃불』 길잡이에 기록한 바 있습니다.
요즘 저는 성경의 지혜문학에 심취해 있습니다. 전에 없이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허구성이 한눈에 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숙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지혜문학 코헬렛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구절을 절감합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제 마음도 그렇고, 이 해석도 그렇습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영원불변하시며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춘원 이광수의 소설 <꿈>을 읽고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성장한 후 그가 친일 작가임을 알고 실망이 컸지만 <꿈>의 교훈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인생은 꿈’이라는 가르침이 지혜문학과 상통합니다. 어느 무신론자가 한평생 봉쇄수도원에서 헌신하고 있는 수도자에게 묻습니다. “만일 수사님이 믿는 그 하느님이 안 계시고 영원한 세계가 없다면 수사님의 삶은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이 도전적 질문에 수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이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시간, 영원과 만나는 시간이니까요”라고 답합니다. 매일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축복이며 새 생명, 햇순의 원천입니다.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꿈은 컸으나 결과는 미약합니다. 젊은 시절에 가고 싶었던 길이 있었지만, 중간에 예상치 못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제가 ‘예상 못 했던 그 길’이 바로 저의 길임을 새삼 깊이 깨닫습니다.
그동안 역사기도를 바치며 되짚어보니 ‘과연 우리가 진정한 지도자를 가졌었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뼈아픈 지점입니다. 나랏돈을 낭비하는 공직자,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력을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는 정치인들, 속된 말로 그놈이 그놈입니다. 50여 년 전, 명동수녀원에서 강의 중 대화를 나눌 때 지원자 한 명이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이곳에 왔습니다만 또한 어머님께서 남자들은 다 도둑놈이니 시집가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큰 계기가 되어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말이 예언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놈이 그놈이고 역사가 반복된다 할지라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시고 우리 인간은 인간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9월 26일은 제 삶에서 뜻깊은 날입니다. 1974년 9월 26일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출범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함께 한 모든 선후배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모든 교우들을 마음에 모시고 순교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특히 선종하신 모든 분들을 기립니다. 사제단도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겼습니다. 은퇴 후, 후배 사제들과 만나보면 생각과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뜻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세대의 몫입니다.
역사의 순교자들, 48년 전의 사제단, 지학순 주교,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던 청년, 학생, 시민, 노동자, 농민 나아가 구속자 어머니들의 결의와 기도를 되찾는 일이 햇순을 지키는 일이라 확신합니다. 이로써 1년 동안 간절함으로 바친 역사기도 연재를 마치며, 하느님께 세계의 평화와 온 겨레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끝〉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1년 귀한 글을 보내주신 함세웅 신부님과 연재를 사랑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시편 작가를 표본으로 니카라과의 혁명 시인 에르네스토 카르데날(1925∼2020) 사제의 도전적 기도에서 용기를 얻고 또 고난의 현장에서 함께했던 수도자의 조언에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느님, 저희는 모두 생각과 기도 안에서 이미 만나고 함께한 동지들입니다. 사랑하는 동지들과 함께 뜻을 모아 남북의 겨레를 하나 되게 해주소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상의 모든 비극과 불의를 끝나게 해주시고 우리 모두 햇순을 품게 하소서. 바람과 바다, 맑은 공기로 온 세상, 온 우주를 온전히 새롭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