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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껍데기는 가라!” 한 줄의 시로 독재자에 맞서다

등록 2022-02-07 09:59수정 2022-02-07 10:16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19) 4·19혁명의 시인 신동엽

4·19 기점 민중과 저항에 관심
평화와 공존이 깃든 세상 꿈꿔

무소불위 독재자는 종말됐어도
거짓과 위선 고발한 시는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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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마태오 23,27-28)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굴러져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루카 24,1-3)

어린이는 순수함과 정직함의 상징이며 천사들의 대명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이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같은 지도자들과 종교인들은 불법으로 가득 찬 위선자라며 무섭게 꾸짖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도 한때는 천사와 같은 어린이였습니다. 성장하면서 때가 묻고 죄를 짓고 위선자가 되었습니다. 선현들이 초심을 간직하라고 강조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이 왜 때 묻고 죄를 짓는 위선자 어른이 될까요? 그에 대한 답은 아마 사람 수만큼이나 많을 것입니다. 그것을 집대성한 가르침이 바로 종교의 경전입니다. 모든 종교는 수신, 극기, 절제, 양보, 희생, 사랑, 자비를 가르칩니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997년 구제금융 시대를 지나면서 더욱더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중심적으로 변했습니다. 희생과 헌신, 양보 등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나만을 위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인주의야말로 위선과 불법의 온상입니다. 지금 그것을 단호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신학적 회개와 같은 ‘껍데기는 가라’

네덜란드의 신학자 R. 아돌프스는 <신의 무덤>(삼성문화문고 83)에서 복음에 언급된 두 개의 무덤, 곧 ‘회칠한 무덤’과 ‘빈 무덤’을 주제어로 교회 현실을 냉철하게 비판합니다. 겉은 깨끗하고 화려하지만 속은 탐욕과 불법, 이기심으로 가득 찬 것이 회칠한 무덤이라고 질타했던 것입니다. 교회 조직과 체제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지적입니다.

빈 무덤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현장이며, 교회가 지향해야 할 참된 영적 가치라고 주장합니다. 소유한 만큼 위선과 가식이 그득하고 비울수록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움켜쥔 만큼 무겁고, 비울수록 가벼워 쉽게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 종교와 정치가 깊이 되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비움과 절제의 언어가 시(詩)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겪은 역사의 질곡과 개인적 고뇌, 통찰을 응축해 서늘하게 날선 칼을 벼려냅니다. 칼날 같은 단어, 벼락같은 시 한 줄은 불의와 쉬이 타협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눈빛을 형형하게 만들며 다시 심장을 뛰게 합니다. 신동엽(1930~1969)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가 그렇습니다.

이 시는 민중시, 저항시로서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울림이 큽니다. 위선과 가식을 떨쳐내라는 근본적 ‘회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껍데기인 줄도 모른 채 많은 것들을 몸에 두르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벗어던지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자 종교의 본질입니다.

생전의 신동엽 시인. &lt;한겨레&gt; 자료사진
생전의 신동엽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신동엽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 이승만 독재정권과 4·19혁명, 박정희 군부통치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겪었고, 그 상흔을 자양분 삼아 온몸으로 시를 썼습니다. 40년도 채 안되는 짧은 생애는 극한의 대립과 격변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금강과 부소산을 벗하며 자랐습니다. 전주사범학교에 진학했으나 민주학생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그 후 단국대를 졸업하고 교사의 삶을 걸었습니다.

그가 대표적 저항 시인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강렬한 체험 덕분일 것입니다. 그의 초기 시가 신화적 상상력과 원초적 생명력을 노래했다면 4·19를 기점으로 역사, 민중, 저항, 통일이란 주제로 옮겨갑니다. 그의 아내이자 시인 인병선 여사는 1960년 4월 19일 밤늦게까지 연락이 없던 남편의 구두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는 4·19를 지켜보며 민족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빨치산을 소재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린 ‘진달래 산천’, 갑오농민전쟁을 주제로 쓴 장편 서사시 ‘금강’,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된 ‘껍데기는 가라’부터 유작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까지, 그는 시를 통해 민중과 민족이 주체가 되는 세상, 거짓과 위선이 사라지고 공존과 평화가 깃든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사찰계 형사가 회고한 신동엽의 삶

‘껍데기는 가라’는 1967년에 발표되자마자 주목을 받았습니다.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라는 구절이나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와 같은 구절은 반공을 부르짖으면서 유신체제로 향해 가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는 종말을 맞았지만, 시는 살아남았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총 18종 중 14종에 ‘껍데기는 가라’가 실려 있습니다.

선종 50주년을 맞은 2019년 4월, 시인의 문학관이 있는 부여와 서울에서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저는 당시 학술대회에서 <신동엽 산문전집>(창비)에 실린 ‘석림(石林) 신동엽 실전(失傳) 연보(年譜)’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청년 신동엽을 조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쓴 사람은 노문(盧文)으로, 부여에서 시인과 함께 문학 동인 ‘야화’(野火)의 일원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노문의 기록에 따르면, 6·25 전쟁 전후로 신동엽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그가 전쟁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후퇴하는 인민군과 빨치산을 따라 대둔산에서 지리산으로 남하하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중도에 대열을 이탈했고 비록 한 달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이 체험은 시인에게 강렬하게 내재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노문은 ‘신동엽은 빨치산도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다소 복잡한 평화주의자였다’라고 술회합니다. 시인과 뜨겁게 교우했던 문학청년 노문은 이북 출신인 데다 부여경찰서 사찰계 형사였다고 하니 이 또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신동엽 시인을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들과는 인연이 좀 있습니다. 시인이자 민속학자인 인병선 여사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과 관련하여 함께 활동했고, 아드님과는 현재 ‘인권의학연구소’에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인병선 여사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장남인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유신체제 아래에서 야학과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그는 문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당시는 알게 모르게 연좌제가 적용되던 시기라 의대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큰 그림자가 평생 따라다닌 셈입니다.

함세웅 대담집 제목으로 삼아

‘껍데기는 가라’와 관련된 제 개인적인 일화도 하나 있습니다. 2012년 성당을 은퇴하면서 손석춘 교수와 대담한 자료를 책으로 엮어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 제목으로 ‘금송아지를 부수어야’가 좋겠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성경의 모세 이야기에 나오는 글귀로, 종교가 배금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잘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손 교수나 출판사 쪽에서 제가 생각한 제목보다는 ‘껍데기는 가라’가 좋겠다고 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이 글귀에 청년층의 호감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50년 전 시인의 시 구절이 현재의 청년들에게도 울림을 준다고 생각하니 내심 반가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다수의 의견을 좇아, 책 제목을 ‘껍데기는 가라’로 정했습니다. 판권을 갖고 있던 인병선 여사에게 허락을 받았고 대담집에 시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4·19 정신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지향할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본질이라는 외침입니다. 우리는 껍데기에 둘러쌓인 반민주, 반민족, 반생명을 거부하고 민족의 일치와 화해, 평화와 공존, 통일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위선과 가식을 버리고 본질을 찾아가고자 하는 종교적 회개와 같습니다.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의 모든 것, 내면까지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 저희는 언젠가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모두 벌거숭이가 되어 대령하고 부복해야 할 미약한 존재들입니다. 하오니 저희의 모든 위선과 가식, 죄와 잘못을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시어 예수님과 같은 비허(卑虛)와 낮춤, 아름답고 진솔한 은총의 새 옷으로 감싸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 모두 기쁨 충만한 천상 잔치에 참여케 해주소서.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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