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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스승 붓글씨가 독재를 끝장내다

등록 2021-12-13 09:59수정 2021-12-13 15:56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11)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4·19 뒤 버티는 이승만 끌어낸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
25일 교수들 시가행진 현장에서
성균관대 교수 임창순이 붓으로 써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카인이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창세기 4,8-10)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 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창세기 9,6)

피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성서작가들은 하느님의 성성(聖性)과 연계해 “살인하지 마라, 피를 마시지 마라, 오직 공적 예배에서만 동물의 피를 뿌리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라”라고 명합니다. 피의 신학, 생명의 신학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매일 미사 때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의 의미를 되새기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피로 맺은 계약의 재현입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친형제를 죽인 이 엄청난 죄악이 바로 하느님을 배신한 원죄의 결과입니다. 성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동태 복수법의 원리로 보복적 살해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골리앗을 쳐 이긴 소년 다윗,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살해한 용맹한 여성 유딧, 가족과 이웃, 동족을 위해 침략자들과 맞서 싸운 이들의 용맹한 행업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수보다 더 큰 사랑과 용서를 명하심으로써 히브리 성경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가치를 선언하셨습니다.

성경은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과 예언자들을 칭송하며,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시리라 선포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피로 구원되었음을 확신하고 고백하는 근거입니다.

피는 또한 하느님께 대한 전적 봉헌과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사하는 정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을 장엄하게 예찬한 말씀이 그 예입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묵시 7,14)

“어린 양이 흘리신 피”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 피로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만들었다는 문학적 역설은 진실한 신앙 고백과 기도입니다. 묵시록의 저자가 순교의 아름다움을 장엄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열사들의 피로 백합꽃이 활짝 피어나리라”라는 표현과 상통하는 열정의 노래입니다.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바로 “어린 양의 피”로 구원되었습니다. 이 해방의 역사가 십자가 예수님을 통해 완결되었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이 4·19 희생자들의 피로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를 실현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교회도, 민족과 공동체도 그 누군가의 피와 희생으로 정화되고 성장합니다. 신화의 새, 펠리칸은 자신의 피를 먹여 새끼들을 키웁니다. 펠리칸이 바로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신 예수님, 성체성사의 상징입니다. 또 다른 사랑의 펠리칸, 4·19 청년 학생들의 피를 생각하며 묵상합니다.

3·15 선거 당일부터 전국서 항위 시위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뿌리 내린 땅에 선대의 피가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고, 후대를 위해 기꺼이 우리의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나무를 올곧게 가꾸는 방법입니다.

195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이승만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 임계치를 향해 달려갑니다. 국민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알아챈 자유당 정권은 1960년 3월에 있을 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침 대선 직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급서합니다. 대통령에 입후보한 사람은 단 두 명, 이승만은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부통령이었습니다. 85세 고령이었던 이승만은 유고 시 자동으로 권한대행이 되는 부통령에 이기붕을 꼭 앉혀야 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은 민주당 후보 장면에게 크게 밀리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이전 선거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이 다른 당에서 나오면 응종(응하여 따름)치 않겠다”라는 폭탄 발언까지 합니다. 후안무치라는 말도 아깝습니다. 대통령이 앞장서 헌법 유린을 자행한 셈이니까요. 게다가 이승만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모든 공무원은 선거 운동을 하라, 내가 책임지겠다”라며 대놓고 선거 부정을 부추깁니다. 2월 28일, 민주당 후보 장면의 유세에 청중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에 학생들을 강제 등교시킵니다. 이 조치가 단초가 되어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합니다. 바로 2·28 학생 민주 의거입니다.

시위를 주도한 경북고 2학년 이대우 군은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라고 외쳤습니다. 피는 헌신의 상징이자 행동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렇게 대구에서 시작한 시위는 서울, 부산, 충주, 전주, 그리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들은 “대학생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시대의 지성인은 어디에 있는가? 왜 침묵하는가?”라며 어른들을 질타했습니다.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3·15 선거는 우리 역사상 최악의 부정 선거로 기록되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을 저질렀고, 선거 당일 낮부터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당황한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를 자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종되었던 열일곱 살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릅니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경찰은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민주주의 희생은 대접받지 못하고
권력 기생세력이 기득권화 돼
미래 위해 과거 망각 말고 단죄해야”

1960년 4월 25일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글씨를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 행진을 하는 대학교수들. 4·19혁명기념도서관 제공
1960년 4월 25일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글씨를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 행진을 하는 대학교수들. 4·19혁명기념도서관 제공

4월 18일 드디어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나섭니다. 정치 깡패들의 폭행과 경찰의 폭력 진압에도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과 시민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4월 19일엔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그날만 서울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합니다. 시위대는 온몸으로 총탄을 막으며 중앙청, 경무대를 향해 행진합니다. 죽음의 행진, 피의 화요일입니다. 고등학생이 시작하고 대학생과 시민이 이어받은 부정 선거 반대 시위는 거센 탄압에 직면했고, 희생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4월 25일이 되자 대학교수들이 움직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죽어 나갈 때 침묵했던 자신들을 반성하며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간 것입니다. 그 플래카드에 적힌 글귀가 바로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입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스승의 뒤를 따라 행진했고, 경찰의 강경 진압에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시위는 활화산처럼 살아납니다. 결국 다음날 이승만은 사임하고 망명길에 오릅니다.

‘대통령 하야’ 문구를 관철한 한학자

4월 25일 대학교수들의 시위에서 플래카드에 친필로 글을 쓴 분은 성균관대 교수였던 청명 임창순(1914~1999) 선생입니다. 한학자이자 서예가였던 그는 이 시위에 앞장섰으며, 시국선언에 ‘대통령 하야’를 꼭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명 선생은 5·16 이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사건으로 3개월간 구속되었다가 성균관대학교에서 해직되었으며,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란 이름의 나무를 지키고 키우기 위해 많은 학생, 청년, 시민들이 피 흘렸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희생을 치른 분들은 대접받지 못하고, 권력에 아부하고 기생했던 이들은 부와 권력을 세습하며 지금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 행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당 정권, 유신 정권, 그 이후의 군부 독재 정권을 지나오는 동안 이런 일들은 반복되었고, 역사의 암적 존재들은 ‘그래도 괜찮다’라는 것을 학습했습니다.

시간은 결코 망각의 과정이 아닙니다. 과거는 현존합니다. 미래는 선취해야 합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분칠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우리 옆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60년 전의 죄악을 끝까지 물어야 합니다. 60년 전의 행업을 칼같이 단죄해야 합니다. 또한 60년 전, 피의 희생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책무입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의로운 이들의 희생을 굽어살피시어 저희 모두 그들과 함께 은총의 삶을 살게 해주소서. 4·19 청년, 학생, 시민들의 희생을 기리며 바치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아직도 이 땅의 불의한 과거에 기생하는 잘못된 무리들을 퇴치해 주시고 정화해주소서.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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