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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독도 평화선만은 이승만의 업적이었건만

등록 2021-10-25 09:59수정 2021-10-25 15:28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
(4) 독도와 평화선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기 1,1-10)

“주님께서는 당신 계획에 따라 깊은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고 그곳에 섬들을 심으셨다.”(집회서 43,23)

하늘과 땅, 바다와 섬, 자연의 신비 앞에 사람들은 그 어떤 신비감과 경외심을 갖습니다. 그 느낌과 체험을 절대자와 연계할 때 그것이 바로 하느님 체험과 사랑, 신앙고백이 됩니다. 나라와 공동체에 대한 사랑도 한가지입니다. 일제 탄압에 항거하며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숨결도 남북 8천만 겨레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울릉도 동쪽 이백 리 바다를 지키는 ‘독도수호대’를 비롯해 새로운 독립군들이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나라와 시대를 지킨 불침번들을 마음속에 모시면서 독도와 평화선을 묵상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좋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대자연 앞에 머리를 숙이며 경탄합니다. 깊은 바닷속 물고기와 산호 등 온갖 신기한 사물과 현상에 대해서도 감탄합니다. 자연에 대한 경탄이 신앙과의 접점입니다. 그러나 늘 보고 대하고 익숙해지면 감탄도 흐려집니다. 이에 선현들은 늘 처음의 감격을 마음에 간직하고 되새기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섬에 대한 첫 체험과 사랑을 새롭게 되새기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전한 곳을 원합니다. 그래서 땅에 근거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고 가까운 섬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육지와 아주 멀거나 농사짓기 어려운 섬에는 살지 못했습니다. 울릉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 섬을 돌섬이라 불렀고, 우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천연기념물 제336호, 동도와 서도 외에 89개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진 독도가 이제 우리에게 보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보물의 가치를 이제껏 몰랐고 놓쳤습니다. 당연하다 여기며 홀대와 무관심 속에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독도와 평화선’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포해서 우리의 독도를 굳건하게 지켜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에 대해 당당한 것도 기뻤고 또 그것이 평화를 위해서라니, 어린 마음에도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흘러 이승만 정권의 실상을 알게 되고 그가 민족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분노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평화선만큼은 그의 업적이라 평가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직전에
이승만, 평화선 선포로 독도 지켜
역대 정권들은 독도 가볍게 여겨
10월25일 독도의날 뜻 새겨야

평화선은 1952년 1월18일에 선포했는데, 이 시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일본은 승전국 미국의 군정 통치 아래 놓입니다. 1946년 연합국은 한반도와 독도를 포함한 부속 도서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영토에서 분리합니다. 이는 독도를 일본이 러일전쟁 후 불법적으로 침탈했음을 국제사회가 공인한 구체적 증거입니다. 당시 일본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각서 677호와 1033호는 일본 선박에 대해 독도 인근 해역 12해리(22.2km) 내 출입을 금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1951년 9월 일본의 주권 회복을 공인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조인했습니다. 이듬해인 1952년 4월 정식 발효를 석 달 앞두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선포했습니다. 몇 달 후면 일본이 결사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의 해안 자원과 주권을 보호하고 한일 간의 평화 유지를 위해 60해리(110㎞)까지를 평화선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동쪽으로 독도, 남쪽으로 마라도, 서쪽으로 마안도에 이르는 한반도 해안의 모든 도서가 포함되었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거리가 60해리 조금 못 미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조치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해양에 관한 국제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3해리(5.5km) 정도를 영해로 인정했습니다. 그것의 20배 가까운 60해리를 주장했던 이승만의 배포 하나는 인정할 만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전 시점이라 일본은 항의 성명만 발표하고 이렇다 할 조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여 뒤, 평화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평화선 안에서 조업하는 일본인을 한국 교도소에 구금했고, 나포한 일본 어선을 불하하는 등의 초강력 조치를 실행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영토 침략이라고 극렬히 항의했지만, 이승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화선을 해외에서는 이승만 라인, 혹은 리 라인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은 ‘한일어업협정’을 통해 일본과 한국의 12해리(22.2km) EEZ(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해 합의합니다. 그 대가로 일본은 9천만 달러의 어업협력자금을 내놓습니다. 협정을 맺었지만 일본이 독도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케시마의 불법 점거에 대해 엄중 항의한다’는 문서를 보내 한국의 독도 지배를 인정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독도 수호의 의지는커녕 귀찮아하는 듯한 속내를 보였습니다.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일본의 오히라 외상이 만나 독도를 폭파, 또는 양도하기로 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이러한 대응이 오늘날 일본의 뻔뻔하고 집요한 도발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국제사회에서 당당하지 못한 원죄가 되었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한일어업협정을 폐기하고 신 한일어엽협정을 체결하면서 독도를 공동관리구역(중간수역)으로 만들고, “섬(Island)”이 아닌 “암초(Rock)”로 표기해 1999년 1월6일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했습니다. IMF 시기였다지만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독재자 이승만은 평화선을 선포하고, 또 다른 독재자 박정희는 독도를 포기했으며, 독재자들에게 핍박받은 김대중은 매우 미숙한 정책으로 분쟁의 불씨를 살렸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10월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 고종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규정한 대한민국 칙령 제41호를 선포한 1900년 10월25일을 기념해,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2000년에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일본 시마네 현은 맞불을 놓듯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습니다. 역사의 줄다리기는 끝나지 않았고, 지킬 것을 지키지 못했던 우리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국제 분쟁에서 역사적 맥락이나 정당성 따위는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치지 않을 것,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것, 행동해야 할 순간에 행동할 것입니다.

독도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바로 우리 민족의 자화상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우산도(512년), 삼봉도(1471년), 가지도(1794년), 석도(1900년) 등으로 불렀으며, 독섬 또는 돌섬이라는 이름을 한자로 표기해 독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독도의 역사와 그 이름의 변천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독도의 존재 가치와 평화선의 민족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은 스스로 큰 모멸을 자초했고, 김대중 정부 전후의 외교부와 수산청(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민족 정체성과 선조들의 피 끓는 애국애족 정신을 잃고 일본 관리들의 꾀에 넘어가는 무능과 무책임으로 독도가 큰 상처와 아픔을 겪게 했습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한 외교관의 말에 따르면, 일본 외교관들은 한일 협상에 임할 때 늘 독도를 염두에 둔다고 합니다. 이 증언을 들으며 저는 매우 암담했습니다. 우리 외교부 공무원들과 해양수산부 관리들은 눈앞의 문제에 급급해 독도를 따로 떼어 논의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일본 외교관들의 함정에 빠져 늘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열들에게 부끄럽고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도 그랬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요청 사항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일본 측의 이의 제기로 한반도기에 표시한 독도를 삭제했습니다. 이 또한 현 정부의 당당하지 못한 오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일본은 2021년 동경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일본 지도에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기했습니다. 우리가 더욱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욱 분발해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들의 뜻을 되새기며 평화선을 다시 구축해야 합니다.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서도 독도를 더 잘 지켜야 합니다. 그곳이 종교인들의 수련장,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의 섬이 되길 바랍니다. 아니, 남북 8천만 겨레의 염원과 꿈을 실현할 남북 평화와 만남의 장이 되고 우리 민족의 이념인 홍익인간을 바탕으로 나라와 겨레, 더 나아가 온 세계 평화의 섬이 되길 바랍니다.

거룩하신 하느님, 선조들이 몸 바쳐 지킨 우리의 조국과 세상 모든 이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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