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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대사없는 퍼포먼스 ‘점프’ 영국서 대박…눈물 핑 돌았죠

등록 2013-01-03 20:06

공연 연출가 최철기(왼쪽)씨와 백원길씨. 두 사람은 1997년 서울 대학로 연극판에서 만나 16년째 우정을 쌓아오면서 ‘원길의 작게 집요하고, 철기의 넓게 집요한’ 성격이 잘 어우러진 ‘논버벌 퍼포먼스’로 세계 공연 팬들을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비밥> 전용극장 무대에서 공연 소품을 들고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연 연출가 최철기(왼쪽)씨와 백원길씨. 두 사람은 1997년 서울 대학로 연극판에서 만나 16년째 우정을 쌓아오면서 ‘원길의 작게 집요하고, 철기의 넓게 집요한’ 성격이 잘 어우러진 ‘논버벌 퍼포먼스’로 세계 공연 팬들을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비밥> 전용극장 무대에서 공연 소품을 들고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는 짝]
공연연출가 최철기-백원길
두 남자가 만나면 꼭 ‘사고’를 낸다. 그것도 ‘말이 필요 없는’ 초대형 공연 사고다.

둘은 2003년 대사 없이 무술과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로 꾸미는 논버벌 퍼포먼스 <점프>를 선보였다. 2005년 세계 최대 공연 페스티벌로 평가받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티켓 판매 1위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했고 중국, 두바이, 그리스, 스페인, 독일 등 세계를 누비며 ‘한국형 마셜 아트’ 바람을 일으켰다. 현재 서울과 제주의 상설 전용관에서 외국인 문화관광 상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단 사다리 연극 선후배로 첫 인연
한국형 ‘마셜아트’ 바람 전세계 전파

둘은 2008년 8월에는 중국 문화부 산하 대외문화집단공사의 의뢰를 받아 중국의 서커스와 코미디 연기를 결합한 논버벌 퍼포먼스 <젠>을 제작해 베이징올림픽 기념공연으로 올렸다. 2011년 5월에는 비빔밥과 스시, 누들, 피자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대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비트박스, 비보잉, 아카펠라로 버무린 <비밥>을 선보여 히트를 쳤다. 2011년 8월엔 무술 고수인 신라 화랑들과 도깨비의 추격전을 코믹하게 담은 <플라잉>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주제공연으로 올렸다.

‘논버벌 퍼포먼스’라는 장르로 세계에 ‘공연 한류’를 전파하는 최철기(40·극단 페르소나 대표)씨와 백원길(41·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배우 겸 연출가)씨. 두 콤비를 지난달 초 서울 관철동에 있는 극단 페르소나 회의실에서 만났다. 요즘 두 사람은 올해 <비밥>과 <플라잉> 국외 공연의 ‘업그레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원길 형이 코믹한 것만 잘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반대의 정서도 되게 잘 표현해요. 연극적인 아이디어가 아주 좋지요. 예를 들어 제가 ‘장면 구조를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말하면 ‘오케이~, 내가 무조건 거기 맞춰주겠어’ 해요.(웃음) 정말 1~2주일 안에 그 장면 아이디어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옵니다. ‘아~ 형이 또 풀어냈구나’ 하고 무릎을 딱 치게 되죠. 그런 점에서 원길 형은 천재적이지요.”(최철기)

“철기는 일단 똑똑하고 착하죠. 뭔 말이냐 하면, 연극쟁이들은 자기들 예술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기적일 만큼 고집이 센 편입니다. 그런데 철기는 고집도 있지만 사업가적 기질이라고 할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보통 연극쟁이보다는 넓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을 아우르고 믿음을 주죠. 저는 제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인데, 철기는 더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더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백원길)

두 사람은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하면서 그런 차이점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점프>, <비밥>, <플라잉> 등 많은 논버벌 퍼포먼스 작품을 공동 연출하면서, 최씨는 제작·기획을, 백씨는 배우 연기 지도와 장면 작업을 나눠서 맡아왔다.

최씨는 “그간 여러 작품을 함께 만들고 키워왔는데 원길 형이 작품의 밀도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니까 제가 바깥으로 더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백씨는 둘의 기질을 원에 빗대어 설명했다. “철기는 바운더리(경계)가 넓은 원이죠. 그 원이 똑바르지 않아도 신경을 별로 안 쓰는, 그래서 ‘조금 비뚤비뚤하면 어때. 크게 보면 원인데’ 이런 편이죠. 저는 반대로 그게 원인지 삼각형인지 미친놈처럼 들고파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한없이 작게 집요하고, 철기는 넓게 집요한 편인 것 같아요.”(웃음) 그러자 최씨가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며 박장대소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6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1997년 서울 대학로의 극단 사다리에서 만났다. 서울예전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한 최철기씨가 이 극단에 들어갔더니, 고등학교(서울 중앙고) 연극반 출신으로 이미 입단 4년차이던 25살 백원길씨가 있었다고 했다. 백씨는 “가난한 극단에 몇년 만에 후배가 들어왔는데 똑똑한데다 저하고 뜻이 맞아서 정말 좋았다”고 떠올렸다. 최씨도 “그때 시장통에 가서 막걸리와 돼지 머릿고기를 먹곤 했는데 주로 원길 형이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어와 후배들 술을 다 샀다”고 했다.

그렇게 2년 남짓 함께 무대 밥을 먹던 둘은 1999년 봄 헤어졌다. 최씨가 공연제작자 송승환씨가 대표로 있는 피엠시(PMC)프로덕션의 <난타> 연출가로 스카우트됐기 때문이다. 국내 논버벌 퍼포먼스의 효시 격인 <난타>는 해외 진출을 위해 ‘공연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최씨는 <난타>에 드라마와 캐릭터를 더 보강해서 그해 여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무대에 올려 큰 호평을 받았다.

백원길이 말하는 최철기

“연극쟁이론 드문 사업가 기질 있어
극단 그만둘때 술 사주며 말렸는데
3년뒤 대박작 ‘점프’ 들고 돌아왔죠”

“철기가 극단을 그만둔다기에 며칠 동안 술집에서 밤을 새우며 말렸는데 뜻이 완강했어요. ‘반드시 돌아오겠다. 그때 재미있는 걸 갖고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말 3년 뒤에 <점프>의 소재를 들고 돌아왔어요.”(백원길)

2002년 초 어느 날, 최철기씨는 “태권도와 동양무술과 퍼포먼스라는 소재를 갖고 뭔가 하나 만들어보자”며 백원길씨를 찾아왔다. 백씨는 “철기가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연극과는 다른 장르여서 처음에는 싫다고 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최씨는 “<난타> 공연을 위해 에든버러에 가서 세계 관객의 환호를 접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탁 트였어요. 왜냐면, 저는 그때까지 대학로만 바라보면서 연극을 해왔으니까요. 그래서 원길 형한테 ‘우리가 대학로 안에서 해야 할 일도 중요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논리로 설득했죠. 그래서 3년 전에는 형이 나를 말렸는데 이번엔 며칠 밤을 새우고 술을 먹으면서 제가 형을 설득했어요. 그렇게 <점프>가 태동하게 된 거죠.”(최철기)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코미디가 들어가야 하며, 언어 장벽이 없도록 논버벌이 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백씨는 연극 배우로, 연출가로 뛰고 있었기에, 최씨가 새벽마다 저녁 연극공연으로 피곤함에 떨어진 백씨를 깨우러 갔다.

최철기가 말하는 백원길

“제가 기획한 뒤 연출장면 말하면
며칠뒤 기막힌 아이디어로 가져와
그걸 실험해보면 무릎을 딱 치죠”

두 사람은 2002년 겨울,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무술 고수 3대가 사는 집안에 어수룩한 도둑 2명이 들어와 벌어지는 소동을 <별난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 시범공연을 올렸다. 전문가들의 반응이 좋자 작품을 보완해 2003년 7월 <점프>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공연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5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점프>는 2000개가 넘는 공연이 올라가는 이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장인 어셈블리극장 무대에서 1주일간 공연하면서 매일 티켓 매진을 기록했다.

“아직 작디작은 개미들이긴 하지만 철학도 있고 실력도 있는데, 아무도 개미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소리쳐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우리가 혼신을 다해서 <점프>를 만들었는데 국내에서는 몇몇 전문가 외에는 아무도 안 알아주었죠. 영국 어셈블리극장에서 관객들이 몇백 미터를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 보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사흘째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모두 기립박수를 치는데, 저절로 욕이 나왔죠. ‘씨바, 거봐, 우리 말이 맞잖아. 되잖아’ 하고요.”(백원길)

백씨는 “그때 <점프> 공연으로 ‘철기 말이 맞구나. 세계가 참 넓구나’ 하고 실감했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생기고 ‘우리는 괜찮은 작업인이다’는 자존감이 높아졌다”고도 했다.

최철기씨와 백원길씨가 함께 만들어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는 대표적인 논버벌 퍼포먼스 작품 <점프>(왼쪽부터)와 <플라잉>, <비밥> 공연 장면.
최철기씨와 백원길씨가 함께 만들어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는 대표적인 논버벌 퍼포먼스 작품 <점프>(왼쪽부터)와 <플라잉>, <비밥> 공연 장면.
<점프>의 성공으로 두 사람의 작업은 속도가 붙었다.

2010년 <비밥>을 만들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호평을 받았다. 2011년 5월부터 서울 관철동에 전용공연장을 지어 <비밥>을 상설공연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싱가포르 공연도 매진(객석 3000석)시켰고 중국, 일본, 대만, 마카오, 인도네시아 등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2011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에서 선보인 <플라잉>은 지난해 4월부터 경주 전용관에서 상설공연한다. 11월 싱가포르 공연에 이어 올 3월 싱가포르, 9월 터키, 10~11월 중국 순회공연이 예정돼 있다.

새해에 두 사람은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정 공모사업으로, 첨단 과학기술을 무대시스템에 결합시킨 새로운 개념의 복합공연물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신체의 극한과 뮤지컬의 음악적 아름다움에 판타지를 섞은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올해 열심히 준비해 2015년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야기가 있는 ‘태양의 서커스’라고 보면 된다”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세계 무대공연에서 ‘태양의 서커스’가 큰 자본과 시스템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잖아요. 서커스에 무용, 오페라, 음악 등을 결합한 공연이죠. 연극은 아니지만 무대공연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인류가 만든 거대한 작품입니다. 저희도 그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만든 게 ‘태양의 서커스’라면 동양에서는 우리가 시작을 할 겁니다. 거기에는 드라마와 연기와 캐릭터도 반드시 들어가고, 서커스 기술이나 동양의 무술 등 여러 요소가 들어가는 공연을 올리려고 합니다.”(최철기)

두 사람은 한국 예술가들의 능력이 세계 관객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에 다다랐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는 “그동안 서양인들이 서양의 가치관으로 라스베이거스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아시아의 사고와 철학이 들어가 있는 대형 작품들이 나올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는 “무대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세계 관객 모두가 행복해지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두 사람의 또다른 ‘점프’가 기대된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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