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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책·이벤트·방송·전시 등 들쑤시는, 문화판의 ‘멀더와 스컬리’

등록 2013-04-04 20:00

웹진 <스폰지>의 편집장과 기자로 인연을 맺은 이후 십수년간 대중문화를 비롯한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써온 이명석(오른쪽)씨와 박사씨.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문화광장에서 이씨가 기획한 스윙 댄스 공연을 앞두고 ‘차려입은’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의 수다만큼 심상치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웹진 <스폰지>의 편집장과 기자로 인연을 맺은 이후 십수년간 대중문화를 비롯한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써온 이명석(오른쪽)씨와 박사씨.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문화광장에서 이씨가 기획한 스윙 댄스 공연을 앞두고 ‘차려입은’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의 수다만큼 심상치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는 짝]
‘일인다역’ 이명석과 박사
‘자칭 저술업자’ 이명석
‘인문주의 엔터네이너’ 박사
14년 전 웹진 ‘스폰지’ 에서
편집장과 기자로 만난 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필력으로
전방위 장르에서 종횡무진

도마 위에 놓고 비틀자!
문화를 더 쉽고 더 가볍게
대중들에게 알렸던 그들
“요즘은 지적인 작업을 하는
세력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부터 좀 진지해질까?”

이 두 사람, 첫인상이 세다. 마치 홍명보 감독이나 엄홍길 대장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센 ‘포스’가 느껴진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30일 서울 경복궁역 부근 한 카페에서 마흔세살 동갑내기 이명석과 박사를 만났다. ‘이명석이란 이름을 가진 박사’도 아니고, 필명 ‘박사’의 진짜 이름이 ‘이명석’도 아닌, 말 그대로 이명석과 박사 두 사람이다. 만화 평론부터 개그 평론까지 박사 수준의 해박함을 자랑하는 이명석, 글쓰기부터 그림 그리기까지 다재다능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팔방미인 박사. 대중문화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온갖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이들의 이름을 한두번은 들어봤을 터다. 근엄한 1970~80년대를 지나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70년대생들이 문화판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두 사람은 문화 관련 ‘잡글’도 평생의 직업이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왔다.

저술업자 vs 젖은 낙엽

이명석씨는 스스로를 ‘저술업자’라 부른다.

1990년대 말 웹진의 원조격이었던 잡지 <스폰지> 편집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온갖 다양한 문화 생활 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로 수많은 1970년대생 ‘덕후’(마니아를 일컫는 일본말 ‘오타쿠’를 한국어로 빗댄 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책 <여행자의 로망 백서>를 펴낸 7년 전에 이미 “100개 장르, 1000개 매체 기고가 멀지 않았다”고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그림과 춤도 주 관심사다. 요즘에는 여행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펴내며 자칭 ‘도시 수집가’라는 직업을 추가했다.

박사,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게다가 본명이다.

“둘째딸 이름을 박사라고 지으시오.” 기차간에서 만난 한 스님의 권유를 장난기 많은 아버지가 덜컥 받아들여 평생 꼬리표가 됐다. 여행·커피·고양이·만화·영화의 숨은 매력을 독자들한테 즐겁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씨와 함께 이른바 ‘인문주의 엔터테이너’로 불린다. 그림 쪽에 타고난 집안 혈통 덕분인지, 책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등에서 매력적인 그림과 글씨 솜씨를 뽐냈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나 캘리그래퍼(손글씨 작가)로 착각하기도 한다. 특기는 10년 넘게 ‘무작정 남 따라가기’. 스스로를 “믿을 만한 동행자 등짝에 달라붙어 여행 다니는 젖은 낙엽”이라고 표현하며, 주변 사람들한테도 이런 여행법을 권하고 있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20세기 말 어느 날 웹진 <스폰지> 창간 때 이뤄졌다. 나홀로 편집장이던 이씨가 “그래, 너 정도면 나를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유일한 기자 겸 편집자로 박씨를 뽑았다. 대중문화가 무거운 담론을 이야기하며 대중과 멀어지던 시기, 이들은 “도마 위에 놓고 비틀자”라는 모토로 문화를 더 가볍고 더 자유롭게 다루면서 나란히 톡톡 튀는 필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후 ‘복합문화 프로젝트 사탕발림’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으로 온라인에 공간을 마련한 뒤, 14년간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사이 책 10여권을 함께 썼고, 각종 방송 출연에서 파티 기획, 그림 전시회와 매체 연재 등 온갖 아이디어를 콤비로 실행에 옮겨왔다.

“어릴 때부터 건방졌어요. 그런데 딱 한명 잔소리하는 게 박사예요. 저한테 지나치게 자신감이 강하죠.”(이명석)

“이명석씨가 진지하게 ‘누군가 지구를 정복하면 그건 박사일 거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정복할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겠죠.”(박사)

“나한테 시켜서 정복하겠지.”(이명석)

자석으로 치면 둘 다 엔(N)극이거나, 둘 다 에스(S)극일 것 같은데도 찰떡궁합이다. 특히 글을 쓸 때는 이런 시너지가 더욱 커진다. 스페인, 체코, 앙코르와트, 베트남, 뉴올리언스, 샌프란시스코, 쿠바 등을 같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고 그림을 그려 책을 냈다.

“우리가 여행 떠나는 패턴은 이래요. 제가 ‘오르세 미술관 옥상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하면 이명석씨가 코스와 관련된 계획을 짜요. 저는 여행 기록하고 공동 회비 걷어서 가계부 쓰고.”(박사) “제가 최소 시간에 최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계획을 짜는 걸 재미있어 해서 역할 분담이 되죠.”(이명석)

국물만 좋아하는 남편과 건더기만 좋아하는 아내처럼 묘하게 잘 맞는다.

‘번개탄과 연탄’ 또는 ‘최불암과 김혜자’

지금까지 이들이 ‘수집’한 세계 도시는 모두 52개. 가본 곳도 있고 못 가본 곳도 있지만 자료를 모아 도시마다 하나의 특징만 꼬집어 글 쓰고 그림 그려 한 주 하나씩 52개 도시를 1년 동안 모아 지난해 실제 <도시수집가>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비엔나(빈)에 비엔나커피가 없고 땅굴이 있는 이유, 명탐정 셜록 홈스가 사는 곳,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피아소야)가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멱살잡이를 한 이유 등 여행 책들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깨알 같은 정보들을 담았다. 이씨가 “도시를 들고 올 수 없는 이상 나름의 수집법을 궁리”한 결과라고 한다. 책에 그려놓은 그림이 ‘아깝다’는 이유로 여름엔 ‘도시수집가’ 원화전도 열었다. 요즘엔 일주일 동안 한 도시를 즐길 수 있도록 길잡이 하는 책 <위크 트리퍼 박사와 이명석의 샌프란시스코>도 펴냈다.

박사씨가 그린 버클리의 솔라노 스트리트 페어 축제 행렬에서 여성참정권 코스프레하는 시민.
박사씨가 그린 버클리의 솔라노 스트리트 페어 축제 행렬에서 여성참정권 코스프레하는 시민.
여행이란 게, 신혼여행이어도 다투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가 드문 법. 정말 ‘쿨’해 보이는 이 두 사람도 많이 싸울까?

“한번 싸우면 심하게 하죠. 점성술, 의학발전 같은 걸로 얘기하다 싸워요.”(이명석)

“음모론 듣고 와서 믿으면 이명석씨가 못 참아 하더라고요.”(박사)

“박사는 확 타는 번개탄이에요. 저는 연탄 같은 스타일이라 감정적 소모는 없어요. 다만 번개탄불이 옮겨붙으면 오래 타죠.”

어쨌거나 남녀이기에 이들 사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슨 관계예요?”

이씨가 간단히 정리했다. “(미국 드라마 <엑스(X) 파일> 주인공인) 멀더와 스컬리라고 생각하면 돼요.”

박씨가 맞받는다. “성향상 제가 (남자인) 멀더죠. 소설가 김영하씨는 저희보고 최불암과 김혜자 같은 관계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부부가 아닌데 시골에선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는 거죠.”

조금 진지해진 이씨가 덧붙인다. “묻는 사람이 많아서 처음엔 설명하려고 했는데 나중엔 그런 설정도 필요 없는 사이가 된 것 같아요.” 박씨도 보탰다. “전쟁 나면 아마 가족보다 우리 둘이 만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 그런 사이예요.”

이들이 말하는 이 묘한 커뮤니티의 장점은 이렇다.

일단 이들 둘이 동시에 재밌다고 느끼는 걸 찾는다. 이씨가 외국 웹사이트 등을 찾아서 이 분야에 재밌는 걸 긁어모은다. 그리고 둘만으로 최소 단위의 커뮤니티를 만든다. 박씨가 주변에 커뮤니티에 대한 소문을 마구 퍼뜨린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여기로 모인다. 둘의 성별이 달라서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조건이 더 좋다. 어느 정도 규모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박씨는 이런 순환 구조에 대해 “단순히 노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면 문화가 형성된다. 그런 것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10년 이상 재미있게 해왔던 것에 대한 노하우를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도 진지해지게 될지 몰라요, 세상 때문에

한때 ‘덕후씨들의 선봉대’ 구실을 했던 이들은 요즘 다른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초에는 권위주의 문화의 텅 빈 속내를 알리고, 대중문화를 조금 더 쉽게 알리는 구실을 했다. 사회는 10여년 사이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변했다. 조금은 진지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생긴 이유라고 한다.

이씨는“대중들한테 새로운 것을 손쉽게 알려줘야 하는 문화비평가로서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지적인 작업을 하는 세력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이런 부분에 빈자리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그 지점에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온라인에서 ‘무료 가치’(무가치가 아니다)로 떠도는 콘텐츠에 가치를 매기는 것에 대해 궁리하고 있다. 콘텐츠 제공자로서 문화 경험들을 인터넷에 연재하고 이걸 유료로 보게 하는 것이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에서 이달 공개하는 ‘카카오 페이지’라는 모델을 통해서다. 영화, 전시, 책, 이벤트 등 모든 문화적 경험들을 맛있는 식사로 연결시키는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박씨의 말이다. “여태껏 뚜렷한 연관성 없이 마구잡이로 경험했던 일들이 요즘 하나로 체계화돼 모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런 문화적 경험들을 또다른 네트워크 방식을 통해서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스티브 잡스가 말한 ‘연결된 점’(connected dot)과 닮은꼴이다.

“누구나 깊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있겠지만,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나한테 재밌었던 경험을 차곡차곡 모아서 자랑질 하듯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두 사람의 ‘쿨한 동행’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듯하다. 당장은 지난해 낸 책 <위크 트리퍼 박사와 이명석의 샌프란시스코>를 도시별 시리즈로 내놓으려고 한다. 6~7월에 뉴올리언스, 쿠바 편이 나올 예정이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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