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소리꾼 이자람(오른쪽)씨와 연출가 남인우씨가 지난달 27일 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연습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두 사람의 공동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우리는 짝]소리꾼 이자람-연출가 남인우
브레히트 희곡 ‘사천의 선인’
판소리로 풀어내 런던 공연
1인15역 150분 연기 기립박수 올림픽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지난 7월30일 저녁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퀸엘리자베스홀은 또다른 환호와 기립박수로 뜨거웠다. 이날 한국의 한 여자 소리꾼이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희곡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로 풀어낸 <사천가> 공연이 열렸다. 소리꾼 한 사람이 작창과 1인 15역 연기를 도맡아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2시간 30분 내내 풀어내는 동안 객석에서는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인기 없고 낡은 장르로 홀대받는 판소리의 세계화 가능성이 유럽 최대 복합문화지구(사우스뱅크센터)에 자리잡은 공연장에서 영국 관객들 앞에서 싹을 보인 것이다. 그날 뜨거웠던 공연의 주역인 소리꾼 이자람(33)씨와 연출가 남인우(39)씨를 지난달 말 서울 홍대앞 근처 연습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판소리가 지닌 동시대성과 작품성, 재미를 해외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사천가>나 <억척가>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진짜 우리의 판소리”라며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잘 만들면 세계에서 통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두 사람은 11월 프랑스에서 브레히트의 <억척 어멈>을 판소리로 엮은 <억척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자람씨는 1985년 5살에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하는 노래 ‘내 이름 예솔아’로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스타였다. 12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19살에 판소리 <춘향가> 최연소 완창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웠고 2007년에는 판소리극 <사천가>를 발표하고, 뒤이어 <억척가>를 만들어 무대에 올린 국악인이다.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보컬이고, 영화음악 작곡가, 현대무용가로도 활약하는 ‘21세기형’ 전방위 예술가이기도 하다. 남인우씨 또한 아동청소년 연극 전문극단 북새통의 예술감독 및 상임연출가이자 연극놀이 강사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4년 제주 설화를 토대로 한 아동청소년연극 <가문장아기>로 세계적 호평을 받았으며 2010년 <행복한 왕자>로 서울어린이연극상 작품상·극본상·연기상을 휩쓸었다. 두 사람은 2005년 겨울 국악그룹 ‘타루’에서 활동하던 이자람씨가 옴니버스 형식의 판소리 극 <이야기 셋>을 기획할 때 처음 만나 8년을 따로 또 같이 작업하면서 우정을 쌓아왔다. <이야기 셋>은 ‘조선 나이키’, ‘구지 이야기’, ‘아기돼지 삼형제’ 세 개의 이야기로 이뤄진 판소리극으로, 남인우씨가 연출을 맡았고, 이자람씨는 그중 <구지 이야기>를 작창(판소리 선율을 만듦)했다. 남씨는 “소리꾼 이자람이 아니라 작가 이자람으로 처음 만났다”고 표현했다. 둘은 그 뒤 2007년 판소리창작·공연단체 ‘판소리만들기 자’를 결성해 <사천가>와 <억척가>를 잇달아 발표하며 판소리의 현대화를 이끌고 있다. “어떨 때는 이자람의 작품 세계를 잘 읽어내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또 어떨 때는 내가 만들어내는 인물을 이자람이라는 아티스트가 잘 해내는 게 기분 좋고 행복하고요. 그것을 떠나서 인간적으로는 낄낄거리고 수다 떨고 서로 연애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이런 것을 막 떠드는 친구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서로 화도 내고 밉기도 하고요. 그렇게 8년을 함께했어요.”(남인우) “제가 주로 인우 언니한테 조언을 많이 구하죠. 저한테는 정말 (행사 섭외) 전화가 많이 와요. 이를테면 전통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이름이 저라고 보시는지 많은 행사에서 저를 불러요. 제가 가지 말아야 할 것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전화를 많이 해요. 혹은 징징거리고 싶을 때(웃음). 그러면 저를 진정시키거나 다시 좋은 마음으로 고쳐먹게 해주죠.”(이자람) 이자람씨는 “인우 언니는 저한테는 인생과 예술의 매우 중요한 조언자요, 내 말을 들어줌으로써 내가 나를 돌아보도록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과 인생은 완전 선배인데 일상생활에서 먹고사는 것은 저보다 조금 못한 것 같다”며 까르르 웃었다. 그러자 남인우씨는 “음식을 대충대충 먹는다고 저 엄청 구박당한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람이가 저한테 조언을 구한다고 하지만 거꾸로인 것 같다”며 “저한테도 이자람이라는 존재는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털어놓았다. 남인우가 말하는 이자람
“자람이는 대본도 직접 써요
창조적인 종합예술가죠
제게 행복을 주는 존재랍니다” <사천가>는 2007년 정동극장에서 ‘아트 프런티어’ 시리즈공연을 기획하면서 이자람씨에게 작품 창작을 의뢰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씨는 남씨에게 “무언지 모르지만 제 작품을 쓰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무엇을 만들지는 몰라서 제가 계속 글을 써서 인우 언니에게 보여주면 ‘이건 아니다. 희곡 작품들을 좀 읽어봐라’고 해서 나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극작법 세미나 수업을 청강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수업에서 누군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이라는 희곡을 들려주는데 딱 느낌이 오는 거예요.” 이씨는 “마침 그때 남인우 연출가가 그 학교 도서관 마당에서 계셨는데 제가 ‘연출님, 브레히트 어때요?’라고 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남씨는 한예종 대학원생이었고 우연히 도서관 앞에서 이씨를 맞닥뜨린 것이다. 남씨는 “그때가 2007년 5월 어느 날이었는데 저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람씨가 ‘브레히트요’ 하길래 제가 ‘사천의…’ 하니까 자람씨도 ‘선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사천가>가 만들어진 거예요.” 남씨는 이씨를 도서관에 보내 희곡부터 읽고 <사천의 선인>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 읽게 했다. 그리고 무조건 이씨가 대본을 쓰도록 요구했다. 그는 “자람씨가 가져온 이야기 안에 들어 있는 맥락은 ‘착하게 산다는 게 무언가?’, ‘착하게 산다는 게 너무 어렵다’는 두가지였다. 그게 <사천가>의 뼈대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씨도 “브레히트를 잘 모르지만 풍자 같은 것은 똑똑하게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판소리에서 재미있다, 멋있다고 느끼는 것은 말 속에 레이어(층)가 담겨서 그 말들이 막 장난을 치는 거거든요.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오는 기쁨이 있거든요. 브레히트도 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억척가>도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브레히트를 잘 몰라요.” 브레히트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이 21세기 대한민국 사천시에 사는 못나고 뚱뚱하지만 착한 처녀 순덕이가 팍팍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로 탈바꿈되는 순간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외모지상주의, 유학지상주의, 무한경쟁을 꼬집는 동시대 이야기로 거듭났다.
<사천가>는 2007년 11월 서울 정동극장에서 ‘아트 프런티어’ 시리즈 다섯번째 공연으로 초연된 뒤 매년 한두차례씩 서울과 지방에서 2~3주 장기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2010년 5월엔 폴란드 콘탁트 국제연극제에 초대받아 ‘최고배우상’을 수상했다. 그해 9월 미국 시카고 월드뮤직페스티벌, 지난해 뉴욕 에이팝아트마켓과 프랑스 리옹 국립민중극장과 파리시립극장,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등에 초청받았다. 특히 두차례의 프랑스 공연에서는 중간에 기립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 공연을 본 프랑스의 영화배우 아누크 그랭베르(49)는 “이자람은 마치 (무대 위의) 마리오네트 인형 같고, 또 (무대 밖의) 마리오네트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 같다. 그는 관객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자연스레 감동을 주는 창조적인 종합예술가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남씨는 “조그맣고 하얀 동양 아이가 와서 두 시간 반을 저런 소리로, 음악으로, 연기로 (<사천의 선인>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하더라”고 말했다.
<억척가>는 유럽의 30년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한 브레히트의 서사극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의 중국 삼국시대(2~3세기) 무대로 옮긴 작품. 전남 시골 마을 여인 김순종이 소박을 맞고 중국 한나라로 들어가 억척스럽고 비정한 어미로 변모하는 과정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냈다. 이씨가 <사천가>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대본·작창·연기를 도맡고, 남씨가 제작과 연출을 맡았다. 오는 11월8~9일 프랑스 파리 민중극장 공연에 이어 루마니아의 연극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두 사람에게 짝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저는 짝으로서 소리꾼 이자람에게 예술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고 듣고 그래서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과 만나서 섞이고 싶어요. 그래야 다시 이자람과 남인우가 만났을 때 또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남인우)
이자람이 말하는 남인우
“인우 언니는 제 조언자예요
칭찬받고 확인받고 싶은
예술 선배이자 귀명창이죠” “다음 작품을 인우 언니와 하고 싶은가? 저도 궁금해요. 왜냐하면 이런 작업을 인우 언니 아닌 사람과 한 적도 없고, 잠깐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것 같아요. 제가 작가로서 모자라는 점이 있을 때 채워주는 연출가이고, 작창가로서 항상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은, 내가 맞게 가고 있다고 확인받고 싶은 예술 선배이고 귀명창인데요.”(이자람) 남씨는 “저희가 <사천가>와 <억척가>를 공연하면서 주목을 받고, 본의 아니게, 특히 제가 마음이 조금 오만해진 것 같다”며 “이런 마음을 서로 일깨워주고 견제해주는 게 진정한 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도 “저도 올가을에 ‘나는 누구일까’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며 “제가 얻은 결론은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긴 대로 죽 살면 되는구나’라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문득 소리꾼 이자람이 연출가 남인우에게 물었다. “제가 판소리 인간문화재 선생님 앞에서 벌벌 떨면서 판소리 레슨을 받고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주말이면 홍대앞에서 기타를 메고 밴드 공연을 한답시고 돌아다녀요. 도대체 이자람은 누구예요?” 그러자 남 연출가 입에서 간결한 대답이 나왔다. “그게 너야!”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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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로 풀어내 런던 공연
1인15역 150분 연기 기립박수 올림픽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지난 7월30일 저녁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퀸엘리자베스홀은 또다른 환호와 기립박수로 뜨거웠다. 이날 한국의 한 여자 소리꾼이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희곡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로 풀어낸 <사천가> 공연이 열렸다. 소리꾼 한 사람이 작창과 1인 15역 연기를 도맡아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2시간 30분 내내 풀어내는 동안 객석에서는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인기 없고 낡은 장르로 홀대받는 판소리의 세계화 가능성이 유럽 최대 복합문화지구(사우스뱅크센터)에 자리잡은 공연장에서 영국 관객들 앞에서 싹을 보인 것이다. 그날 뜨거웠던 공연의 주역인 소리꾼 이자람(33)씨와 연출가 남인우(39)씨를 지난달 말 서울 홍대앞 근처 연습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판소리가 지닌 동시대성과 작품성, 재미를 해외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사천가>나 <억척가>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진짜 우리의 판소리”라며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잘 만들면 세계에서 통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두 사람은 11월 프랑스에서 브레히트의 <억척 어멈>을 판소리로 엮은 <억척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자람씨는 1985년 5살에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하는 노래 ‘내 이름 예솔아’로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스타였다. 12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19살에 판소리 <춘향가> 최연소 완창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웠고 2007년에는 판소리극 <사천가>를 발표하고, 뒤이어 <억척가>를 만들어 무대에 올린 국악인이다.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보컬이고, 영화음악 작곡가, 현대무용가로도 활약하는 ‘21세기형’ 전방위 예술가이기도 하다. 남인우씨 또한 아동청소년 연극 전문극단 북새통의 예술감독 및 상임연출가이자 연극놀이 강사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4년 제주 설화를 토대로 한 아동청소년연극 <가문장아기>로 세계적 호평을 받았으며 2010년 <행복한 왕자>로 서울어린이연극상 작품상·극본상·연기상을 휩쓸었다. 두 사람은 2005년 겨울 국악그룹 ‘타루’에서 활동하던 이자람씨가 옴니버스 형식의 판소리 극 <이야기 셋>을 기획할 때 처음 만나 8년을 따로 또 같이 작업하면서 우정을 쌓아왔다. <이야기 셋>은 ‘조선 나이키’, ‘구지 이야기’, ‘아기돼지 삼형제’ 세 개의 이야기로 이뤄진 판소리극으로, 남인우씨가 연출을 맡았고, 이자람씨는 그중 <구지 이야기>를 작창(판소리 선율을 만듦)했다. 남씨는 “소리꾼 이자람이 아니라 작가 이자람으로 처음 만났다”고 표현했다. 둘은 그 뒤 2007년 판소리창작·공연단체 ‘판소리만들기 자’를 결성해 <사천가>와 <억척가>를 잇달아 발표하며 판소리의 현대화를 이끌고 있다. “어떨 때는 이자람의 작품 세계를 잘 읽어내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또 어떨 때는 내가 만들어내는 인물을 이자람이라는 아티스트가 잘 해내는 게 기분 좋고 행복하고요. 그것을 떠나서 인간적으로는 낄낄거리고 수다 떨고 서로 연애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이런 것을 막 떠드는 친구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서로 화도 내고 밉기도 하고요. 그렇게 8년을 함께했어요.”(남인우) “제가 주로 인우 언니한테 조언을 많이 구하죠. 저한테는 정말 (행사 섭외) 전화가 많이 와요. 이를테면 전통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이름이 저라고 보시는지 많은 행사에서 저를 불러요. 제가 가지 말아야 할 것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전화를 많이 해요. 혹은 징징거리고 싶을 때(웃음). 그러면 저를 진정시키거나 다시 좋은 마음으로 고쳐먹게 해주죠.”(이자람) 이자람씨는 “인우 언니는 저한테는 인생과 예술의 매우 중요한 조언자요, 내 말을 들어줌으로써 내가 나를 돌아보도록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과 인생은 완전 선배인데 일상생활에서 먹고사는 것은 저보다 조금 못한 것 같다”며 까르르 웃었다. 그러자 남인우씨는 “음식을 대충대충 먹는다고 저 엄청 구박당한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람이가 저한테 조언을 구한다고 하지만 거꾸로인 것 같다”며 “저한테도 이자람이라는 존재는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털어놓았다. 남인우가 말하는 이자람
“자람이는 대본도 직접 써요
창조적인 종합예술가죠
제게 행복을 주는 존재랍니다” <사천가>는 2007년 정동극장에서 ‘아트 프런티어’ 시리즈공연을 기획하면서 이자람씨에게 작품 창작을 의뢰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씨는 남씨에게 “무언지 모르지만 제 작품을 쓰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무엇을 만들지는 몰라서 제가 계속 글을 써서 인우 언니에게 보여주면 ‘이건 아니다. 희곡 작품들을 좀 읽어봐라’고 해서 나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극작법 세미나 수업을 청강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수업에서 누군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이라는 희곡을 들려주는데 딱 느낌이 오는 거예요.” 이씨는 “마침 그때 남인우 연출가가 그 학교 도서관 마당에서 계셨는데 제가 ‘연출님, 브레히트 어때요?’라고 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남씨는 한예종 대학원생이었고 우연히 도서관 앞에서 이씨를 맞닥뜨린 것이다. 남씨는 “그때가 2007년 5월 어느 날이었는데 저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람씨가 ‘브레히트요’ 하길래 제가 ‘사천의…’ 하니까 자람씨도 ‘선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사천가>가 만들어진 거예요.” 남씨는 이씨를 도서관에 보내 희곡부터 읽고 <사천의 선인>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 읽게 했다. 그리고 무조건 이씨가 대본을 쓰도록 요구했다. 그는 “자람씨가 가져온 이야기 안에 들어 있는 맥락은 ‘착하게 산다는 게 무언가?’, ‘착하게 산다는 게 너무 어렵다’는 두가지였다. 그게 <사천가>의 뼈대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씨도 “브레히트를 잘 모르지만 풍자 같은 것은 똑똑하게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판소리에서 재미있다, 멋있다고 느끼는 것은 말 속에 레이어(층)가 담겨서 그 말들이 막 장난을 치는 거거든요.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오는 기쁨이 있거든요. 브레히트도 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억척가>도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브레히트를 잘 몰라요.” 브레히트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이 21세기 대한민국 사천시에 사는 못나고 뚱뚱하지만 착한 처녀 순덕이가 팍팍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로 탈바꿈되는 순간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외모지상주의, 유학지상주의, 무한경쟁을 꼬집는 동시대 이야기로 거듭났다.
소리꾼 이자람씨가 지난 7월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여우락페스티벌 무대에서 <사천가>를 공연하고 있다. 판소리창작집단 ‘판소리만들기 자’ 제공
“인우 언니는 제 조언자예요
칭찬받고 확인받고 싶은
예술 선배이자 귀명창이죠” “다음 작품을 인우 언니와 하고 싶은가? 저도 궁금해요. 왜냐하면 이런 작업을 인우 언니 아닌 사람과 한 적도 없고, 잠깐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것 같아요. 제가 작가로서 모자라는 점이 있을 때 채워주는 연출가이고, 작창가로서 항상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은, 내가 맞게 가고 있다고 확인받고 싶은 예술 선배이고 귀명창인데요.”(이자람) 남씨는 “저희가 <사천가>와 <억척가>를 공연하면서 주목을 받고, 본의 아니게, 특히 제가 마음이 조금 오만해진 것 같다”며 “이런 마음을 서로 일깨워주고 견제해주는 게 진정한 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도 “저도 올가을에 ‘나는 누구일까’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며 “제가 얻은 결론은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긴 대로 죽 살면 되는구나’라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문득 소리꾼 이자람이 연출가 남인우에게 물었다. “제가 판소리 인간문화재 선생님 앞에서 벌벌 떨면서 판소리 레슨을 받고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주말이면 홍대앞에서 기타를 메고 밴드 공연을 한답시고 돌아다녀요. 도대체 이자람은 누구예요?” 그러자 남 연출가 입에서 간결한 대답이 나왔다. “그게 너야!”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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