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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부조리로 이어진 운명적 만남
“남다른 완벽주의…늘 팽팽하죠”

등록 2012-09-06 20:16수정 2012-09-07 10:44

‘연극계의 최강 콤비’로 꼽히는 김광보 연출가(왼쪽)와 고연옥 극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마당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다 자세를 취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연극계의 최강 콤비’로 꼽히는 김광보 연출가(왼쪽)와 고연옥 극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마당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다 자세를 취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우리는 짝] 연극 연출가 김광보·극작가 고연옥
▶중국 고전 <열자>의 ‘탕문’ 편에는 춘추전국시대 거문고의 명수인 백아와 그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친구 종자기 사이의 ‘지음지교’(知音之交) 이야기가 나온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세상에 내 음악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며 통곡했다고 <여씨춘추>는 전한다. ‘연극계 최강 콤비’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연출가 김광보(48·극단 청우 대표)씨와 극작가 고연옥(41)씨가 꼭 그런 ‘지음지교’ 사이 같다. 두 사람은 2001년 창작극 <인류 최초의 키스>로 처음 만나 올해 8월 <내 이름은 강>까지 지난 12년 동안 사회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 12편(창작 5편, 번안·각색 7편)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연극대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서울연극제 대상, 삿포로 연극페스티벌 특별상 등 숱한 연극상을 휩쓸었다. 극작가 고씨는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뒤집어 보는 역설과 아이러니가 뛰어난 작가이다. 연출가 김씨는 희곡에 대한 철저한 이해로 그 의미를 무대에 드러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두 사람을 설득해 지난달 29일 ‘우리는 짝’ 코너에 앉혔다.

12년동안 12편 함께…사회성·예술성 겸비 호평

연극 연출가 김광보
연극 연출가 김광보
김 연출가가 보는 고 작가
일관성 있는 사회 메시지 강점
정제된 언어, 토씨하나도 생생
작가세계로 너무 빠진건 아닌가…

먼저, 연극계 최강 콤비로 통하는 까닭을 물었다.

“<인류 최초의 키스>로 처음 같이 작업했지만 지금까지 계속할 줄 몰랐어요. 연출가는 좋은 작품을 찾고 작가 또한 항시 새로운 연출가를 만나고 싶어해요. 그래서 서로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맞아떨어지면 같이 하고 아니면 한판 쉬는 것이죠. 그런데 저나 고 작가가 지난 12년 동안 만든 작품 가운데 우리 두 사람이 한 작업이 상대적으로 제일 나으니까 연극계 사람들이 ‘콤비’라고 부르는 것이죠.”(김광보)

“저희가 처음에 인터뷰를 거절한 것은 지금껏 해온 작업들이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길 만한 성취를 이뤘다고 자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올해 8월에 했던 <내 이름은 강>은 극단 청우의 젊은 단원들에게 장을 열어주려는 것이지 저희 두 사람만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고연옥)

12년 동안 손발을 맞춰온 사이인데도 서로 까칠하다. 언뜻 팽팽한 긴장감마저 든다. 김광보 연출가는 “제가 인터뷰에 응했다고 고연옥 작가가 저에게 삐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두 사람의 ‘협업’은 고 작가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2000년에 제 희곡 <인류 최초의 키스>가 삼성문학상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어요. 작품이 아까워서 김 연출가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다짜고짜 ‘공연할 수 있겠느냐’고 전화를 했어요. 그때 제가 막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와 아는 연출가가 없었어요. 그런데 김 연출가가 대본을 읽어보더니 하겠다고 하데요. 김 연출가는 제가 1999년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소극장페스티벌에서 희곡 <꿈이라면 좋았겠지>로 연극계에 데뷔할 때 알게 되었어요. 그때 김 연출가가 연출한 연극 <흰색극>도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작품을 보니까 정말 좋은 거예요. 연출이 매력이 있었어요. 깔끔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확신에 차고 에너지가 있어요. 그런 인상이 깊게 남아서 전화할 용기가 생긴 거죠.”(고)

“고 작가의 전화를 받고 대본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대본을 읽어보았더니 보호감호소가 무대인데 무척 재미있었어요. 고 작가의 희곡은 일관되게 사회 부조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하기에 고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요. 그리고 워낙 언어를 정제해서 대본을 씁니다. 그래서 저는 연습 첫날부터 배우한테 고 작가 것은 토씨 하나 고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토씨 하나가 달라짐으로 해서 의미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거든요.”(김)

두 사람의 첫 공동작업인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는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매진 행진을 하며 앙코르 공연을 거듭했다. 2001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올해의 우수희곡’으로 선정됐다. ‘보호감호제도’의 인권 침해 문제를 환기시켜 이 제도 자체를 용도 폐기시키는 데도 일조했다는 평을 받았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확대됩니다.) (왼쪽부터) 인류 최초의 키스, 지하생활자들, 주인이 오셨다

고 작가는 “<인류 최초의 키스>가 잘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2000년 부산의 중견 연출가 두 사람에게 대본을 보여주자 “감옥 이야기라서 너무 어둡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들었다. 2001년 초연 당시에 그는 큰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이듬해 재공연을 하면서 부산에 사는 시부모가 며느리 공연을 보고 싶다고 서울 나들이를 왔을 때 극장 앞에 관객들이 기다랗게 줄을 지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김 연출가는 “고 작가가 첫 작품에서 용기를 얻어서 2003년에 두번째 작품 <웃어라 무덤아>를 초고 탈고하고 바로 저에게 보내왔는데 그것도 대박이 났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고 작가는 연출가 김광보를 “사심이 없다”고 했다.

“김 연출가는 인간적인 매력은 저에게 별로이지만 저뿐만 아니고 제 동년배나 후배 작가들이 굉장히 같이 작업하고 싶어하는 연출가예요. 왜냐하면 많은 연출가들이 희곡을 읽을 때 사심 없이 읽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많은 연출가들이 자기가 구현하고 싶은 무대나 메소드(기법)를 통해서 희곡을 읽고 짜맞추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희곡이 훼손되기도 합니다. 작가가 드러내는 세계관이 아무리 비루하고 촌스럽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의 어떤 미덕이 있는데 그것조차도 없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김광보 연출가는 일단 희곡 분석을 가장 우선으로 합니다. 희곡에 대한 자신만의 분석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작가의 장점과 연출가의 메소드가 어떻게 하면 잘 결합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연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고연옥)

“고 작가와 작품을 하면서 한 번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대본을 고쳐 달라거나 해석해 달라고 물어본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다른 작가나 연출은 작품으로 열몇 시간씩 토론한다는데 저희는 그래 본 적이 없어요. 아마 지난해 10월 국립극단의 소극장 판에서 연극 <지하생활자들>을 올렸을 때 처음으로 물어보았어요. 그런데 뭘 물어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김광보)

“만약 작가인 저의 세계관과 김 연출가의 방법이 충돌했더라면 아마 김 연출가는 바로 안 하겠다고 할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지하생활자들>은 제가 기존에 썼던 것과는 다른 작품이었어요. 저는 그때 다른 것을 시도해보려고 했어요. 장면과 장면 사이, 대사와 대사 사이의 인과관계가 전혀 없이 뜬금없이 이어지죠. 그래서 저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게 뭔 말인지 모르는 대사들이 있거든요. 저는 무척 재미있었는데 김 연출가가 전화를 해서 몇 군데 대사를 불러주며 ‘무슨 말이냐’고 물어왔어요. 그뿐입니다.”(고)

극작가 고연옥
극작가 고연옥
고 작가가 보는 김 연출가
철저한 희곡 분석 최우선으로
작가 개성·무대 독창성 살려내
더 깊은 세계로 여행 함께 할지…

연극 <지하생활자들>은 한국의 뱀 신랑 설화인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를 모티브 삼은 작품이다. 고 작가는 뱀 신랑 설화에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이미지를 입혀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와 밑바닥 인간군상을 그려냈다. 그리고 김 연출가는 몹시 난해한 이 작품을 우리의 마당놀이에서 빌려온 열린 연극 형식으로 풀어내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조 있는 무대로 꾸몄다. 올해 국립극단 레퍼토리 작품으로 선정되어 6일 강원도 철원에 이어 20일 충남 논산, 28일 금산으로 순회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준비중인 다음 작품이 궁금했다.

“내년에 국립극단에서 할 작품을 쓰고 있는데 김 연출가가 할지 안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지하생활자들2’ 같은 작품이에요. 제목은 <칼집 속의 아버지>인데,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방랑하는 어떤 무사의 이야기를 우리 고전의 영웅신화를 얹어서 쓰고 있는데 엄청 힘들어요. <지하생활자들> 같은 작품은 김 연출가가 보기에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더 탐구해보고 싶어요. 저는 <지하생활자들>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희곡과 제가 알고 있는 기존 희곡이 다뤄왔던 세계보다 더 크고 깊은 세계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세계를 기왕 시작했으니까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런 게 저에게는 행복인 것 같아요.”(고)

“고 작가의 연극 언어가 갈수록 더 정제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인물과 인물의 상호 간의 관계를 쉽게 쓰세요, 설명적으로 쓰세요’ 하는데 고 작가가 점점 더 반대쪽으로 가고 있어요. 자기 검증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펼치다 보면 그 속에서 어느 순간 인과가 생길 수도 있고 설명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다 거두절미해 버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결국은 작가만 아는 세상이 되는 거죠. <지하생활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 작가 작품이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저조차도 전화를 해서 ‘이게 무슨 소리예요’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는(웃음) 상황이 생기는 거죠.”(김)

‘연극계 최강 콤비’가 주고받는 대화는 두 사람의 표현처럼 “까칠”했다. 그러나 12년 동안 서로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켜낸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팽팽한 긴장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그런 긴장감을 “작품에 대해서는 강박증에 가깝도록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기질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극 연출가 심재찬(59·국립극단 사무국장)씨는 “부산에서 자란 동향이라는 인연과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공한 연극인이라는 공통분모가 두 사람의 끈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연극이 만남의 예술이라면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났다”는 것이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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