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마담 B>는 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상영작이었다. 좋은 영화였으나 최승호의 <자백>, 고희영의 <물숨> 등 다른 쟁쟁한 다큐멘터리에 밀려 상복이 없었다. 이 독특한 다큐멘터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흔히 파란만장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우여곡절을 겪는 중년 여성이 주인공인데 그의 강인함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주인공 앞에 놓인 시련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굴할 줄 모르는 그의 캐릭터 덕분에 줄거리는 파란만장하며 어떤 극영화보다 극적 굴곡이 심해 관객은 압도당하게 된다.
‘마담 B’라고만 지칭되는 주인공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지만 불운하게도 중국의 가난한 시골 농가에 팔려 간다. 돈이 없어 장가를 가지 못한 중국 남자 진씨와 함께 살면서 시부모도 봉양하는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농사 일 외에 밀입국 브로커, 노래방 도우미 알선책 등을 하며 돈을 벌어서 북한에 있던 두 아들과 남편을 한국으로 탈출시켰다. 인상적인 건 그가 중국인 가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다. 그는 중국인 남편과 시부모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다. 그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한국으로 떠나면서 중국인 남편을 한국으로 초청해 결혼하겠다고 약속한다. 북한 가족들에게도 그렇지만 중국인 가족들에게도 마담 B는 삶의 희망이다.
영화 <마담B>의 한 장면. 영화배급협동조합 시네소파 제공
약속의 땅 한국에서 마담 B의 삶은 더 비참해진다. 그는 국정원에 억류돼 간첩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집을 받을 수 없는 비보호자로 분류돼 풀려난다. 미리 도착해 있던 그의 가족들도 이미 비슷한 시련을 겪었다. 마담B는 자기 선택을 후회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질 수 없다는 듯 살아간다. 오랜 단절로 한 가족이라고 하기 애매한 그의 가족들도 자신들에게 닥친 시련을 겉으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새로 희망찬 출발을 하기에는 서먹한 입장에서 각자 힘들어 하고 있다. 윤재호의 카메라는 이런 곡절을 담으면서 어떤 감정적 윤색도 시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냉정한 거리두기를 꾀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그의 카메라는 윤색하지 않되 미적 품위가 있는 근사한 격을 유지한다. 마담 B의 탈출 경로에 동행하는 급박한 상황들 속에서도 그의 카메라는 침착하며 절묘하게 함축을 남겨놓는다.
영화 <마담B>의 한 장면. 영화배급협동조합 시네소파 제공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지속적인 박해와 시련을 겪었음에도 마담 B가 갖고 있는 불굴의 생존력은 경이적이다. 윤재호의 최적화된 다큐멘터리적 시선 안에서 그의 캐릭터가 지닌 폭발력은 화면을 뚫고 나올 듯 맹렬하다. 나는 어떤 한국의 극영화에서도 <마담 B>의 주인공만큼 대단한 캐릭터를 보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장윤정의 노래 ‘초혼’을 부를 때 그 노랫말이 그의 삶을 웅변하고 있어 가슴 아팠다. 극장 개봉 성적과 상관없이 <마담 B>는 속 빈 강정 같은 공허한 정치적 구호 아래 가린 이 땅의 현실의 증거로 누군가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