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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가깝지만 낯선 ‘춘천의 힘’

등록 2018-10-02 05:00수정 2018-10-02 09:07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춘천, 춘천>의 한 장면. 봄내필름 제공.
<춘천, 춘천>의 한 장면. 봄내필름 제공.
벌써 세 편의 장편을 만든 장우진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국독립영화계에서는 인지도가 넓은 나름 스타 감독이다. 첫 장편 <새 출발>은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을 받았고 로카르노 영화제에 진출했다. 두 번째 영화 <춘천, 춘천>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베를린영화제 포럼에 나갔다. 세 번째 영화 <겨울밤에>는 전주영화제에서 투자 기획하는 JCP(전주 시네마 프로젝트) 선정작으로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돼 선수들 사이에선 장우진이 미래의 거장감이라는 낯간지럽고 과장된 찬사가 돌았다. 이제 그의 두 번째 영화 <춘천, 춘천>이 처음으로 극장 개봉했는데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자기가 살았고 살고 있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그의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춘천, 춘천>은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춘천적인 것’의 영화적 활기를 담아낸다.

각자 가정이 있는 중년남녀(양흥주·이세랑)가 춘천으로 가는 기차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 중년남녀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청년(우지현)이 기차에서 내려 역 에스컬레이터에서 고교 동창을 스치듯 재회하는 장면을 이어붙임으로써 한 청년과 두 중년남녀의 이야기로 전개될 것임을 알려준다. 중년남녀의 여행은 굳이 따지자면 불륜에 가까운 것인데 새내기 연인처럼 그 두 사람은 수줍고 쭈뼛 쭈뼛거리며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각자 젊었을 적 이곳 춘천 청평사에 당시의 연인과 여행 왔던 사연을 나누며 지나간 시공간을 심상하게 떠올린다.

젊은 청년 우지현은 서울에서 치른 직장면접에서 또 떨어지고 동창과 술을 마신 후 예전에 놀러갔던 청평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배편을 놓쳐 거기서 하룻밤 묵으며 역에서 스쳐 지나갔던 고교 동창 친구와 긴 통화를 나눈다. 지현은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게 수치스럽다며 느닷없이 울기도 하고 가수를 지망했다가 포기한 친구에게 노래 한 자락을 청해 듣기도 하는데 그런 행동들이 주접이라기보다 어쩐지 순진해보이면서도 동시에 잔망스럽다. 그곳 춘천에서 성장한 그도 서울에서 온 중년남녀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청평사 여행을 추억한다. 많이 변한 현재의 청평사 공간은 춘천사람인 그에게도 낯설다. 한 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삶에 대한 은유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배 위의 갑판으로 나갔다가 문이 잠겨 실내로 돌아가지 못하는 에피소드로 되풀이된다.

<춘천, 춘천>의 등장인물들은 다 주변머리가 없고 자기 삶의 무게 앞에서 비실거리지만 어떻게든 자기 앞의 삶을 감각하려고 애쓰는 진지한 열망이 있다. 그걸 돋보이게 하는 건 춘천이라는 공간의 지리적 진실성이다. 서울사람들에게는 여행 기분을 내면서 갔다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비교적 가까워 만만해 보이는 곳이 춘천이다. 이 가깝고도 먼 느낌을 주는 공간 안에서 주인공들은 탈일상적으로 자기 삶의 현재를 그윽하게 정관한다. 장우진의 영화에 줄곧 나오는 우지현과 양흥주 두 배우는 특히 이 평범함 속의 비범한 순간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춘천, 춘천>을 보면서 새삼 다시 들었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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