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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부도덕한 가족에서 비정한 세상으로 돌아간 아이들

등록 2018-09-03 17:43수정 2018-09-03 20:56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
*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티캐스트 제공.
티캐스트 제공.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을 보기 위해선 꽤 뜸을 들여야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선 상영관이 드문드문 열려 있어서 좀처럼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이들은 핏줄로 엮이지 않았는데도 생존의 필요에 따라 같이 사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할머니 밑에 일용직 노동을 하는 남자 오사무와 세탁소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 노부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처제 사야카와 소년 쇼타, 그리고 원래 부모에게 학대받다가 이제 막 이 가족에 합류한 어린 여자아이 주리가 이 가족의 구성원들이다. 궁하면 아이들에게 좀도둑질도 서슴지 않고 시키는 부도덕한 가족이지만 서로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상호 배려하고 존중하는 경계를 지키며 나름 화목하게 사는 걸 신기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게 영화 중반까지의 전개다. 고령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의 죽음을 감추고 계속 살아가려던 이들 가족의 정체가 세상에 탄로 나면서 영화는 그때까지 이들 가족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괄호를 쳐두었던 도덕성 문제를 정색하고 지켜본다. 경찰과 언론의 심문과 취재를 통해 제기되는 그 질문들이 보는 사람을 먹먹하게 만든다.

중반부까지 홈드라마 형식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후반부에 다큐멘터리 질감을 띤 사회 드라마로 이동하는데 이렇게 분절된 형식을 관통하는 감독의 문제의식은 ‘생존’이다. 아이들에게 좀도둑질을 가르치는 중년 남자 오사무는 부도덕하지만 그것만 빼면 좋은 아빠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늘 친구가 되어 주는 오사무처럼 주리의 상처를 섬세하게 보듬어주는 노부요도 좋은 엄마다. 이들과 함께 있어서 감사했다고 죽기 직전에 혼잣말하는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들에겐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돈벌이 능력이 부족하다. 오사무는 일용직 노동도 여의치 않아 툭하면 공을 치고 노부요는 일하던 세탁소에서 구조조정으로 잘린다. 할머니는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혼자 사는 것처럼 위장한다. 먹을 게 떨어지면 오사무는 쇼타를 데리고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다. 표 나지 않게 훔치는 것은 죄가 아니라면서.

그걸 민감하게 의식하는 유일한 이는 소년 쇼타이다. 나쁜 짓을 계속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라고 쇼타가 고민할 때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여동생 주리는 그런 오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경찰과 언론은 이들 가족을 이끈 어른들의 부도덕을 비난하지만 이 가족의 바깥 사회에는 이들의 부도덕을 결과적으로 부추긴 더 큰 부도덕이 있다. 주리는 다시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에게 돌아가야 하고 사회는 그런 주리의 운명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쇼타는 이제 더 이상 정감이 없는 환경에서 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의 매듭으로 풀리지 않는 세상의 모순 앞에서 이 영화 속 어른과 아이들의 투명한 절망을 보여주는 얼굴들은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질문일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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