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 더 머니>의 한 장면. 판시네마 제공
리들리 스콧 감독은 매년 한 편씩 신작을 내놓는다. 여든 살이 넘었는데도 대단한 생산성이다. 매년 걸작을 찍는 건 아니지만 태작도 없고 이번 영화 <올 더 머니>처럼 연륜에 감탄하게 되는 영화도 내놓는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힘을 조금 뺐을 뿐인데도 왜 강렬한 잔상을 남길까 생각하게 된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석유업자 존 폴 게티의 손자가 납치된 실화에 기초한 <올 더 머니>는 특이하게도 이 실화에 내재한 극적 재미를 과장하거나 확장하려는 유혹을 가볍게 뿌리친다. 우선, 납치당한 열여섯살의 손자 폴 게티 3세(찰리 플러머)는 플롯에서 곧잘 잊혀진다. 그가 납치당한 상태에서 겪는 고통이 묘사되기는 하지만 영화의 초점은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와 폴 게티의 며느리이자 폴 게티 3세의 어머니인 게일 해리스(미셸 윌리엄스), 폴 게티 편에서 납치범들과 협상을 벌이는 플레처 체이스(마크 윌버그) 사이에 오가는 드라마에 맞춰져 있다. 폴 게티는 사람보다는 사물을 믿는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있는데 처음엔 단단한 권위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연약함을 억지로 감춘 비극적 인물로 보인다. 게일 해리스는 자존감이 있는 현실적 인물이지만 폴 게티에 맞서 겨룰 만한 힘이 없다. 플레처 체이스는 애초에는 폴 게티의 편이었으나 차츰 게일 해리스의 인간적 면모에 동조하고 납치범들뿐만 아니라 손자의 석방을 위해 한 푼도 내지 않으려는 폴 게티와 협상하는데 전력한다.
영화 <올 더 머니>의 한 장면. 판시네마 제공
따지고 보면 좀 이상한 플롯 구성이다. 납치극 실화에 기초한 소재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않고 돈을 둘러싼 인간들의 개별적 반응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납치당한 소년의 석방이라는 플롯의 목표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돈을 주느냐 마느냐, 얼마나 주느냐로 실랑이하는 가운데 모든 등장인물들의 인간성이 드러나는 틈을 주시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인물을 묘사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돈을 쥐느냐 마느냐로 판가름되는 인간의 권위, 종국에는 허망한 것으로 드러나는 그 권위가 어떤 방식으로 깨어지느냐를 보여준다.
영화 <올 더 머니>의 한 장면. 판시네마 제공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영화 후반에 납치범들이 자른 손자의 귀가 찍힌 사진이 헤드라인으로 실린 신문 묶음이 폴 게티의 거대한 자택에 배달된다. 납치당한 소년의 어머니이자 폴 게티의 며느리인 게일 해리스는 잘린 아들의 귀가 찍힌 사진을 싣는 댓가로 돈을 주겠다는 신문사 간부의 요구를 거절하는 대신 그 신문 천부를 달라고 역제안했다. 게일이 보낸 신문 묶음이 흐트러져 바람에 마구 날릴 때 그것을 바라보는 폴 게티가 비틀거리며 일시적으로 망연자실하는 장면은 말로 옮기기 힘든 것을 전해준다. 돈은 쾌락을 유도하지만 그것의 끝은 자신을 망치는 타락이고 (유산을 받은 폴 게티의 아들은 마약중독과 주색으로 폐인이 된다), 아버지의 타락을 목도한 폴 게티 3세는 로마 사창가를 어슬렁거리다 납치당해 갖은 고초 끝에 귀가 잘리며, 끝까지 돈을 움켜쥐고 미술품 수집에 열중하던 폴 게티 1세는 임종을 봐주는 사람도 없이 홀로 죽는다. 돈에 얽힌 권력의 몰락을 이렇게 건조하게 응시하는 영화는 드물다. <올 더 머니>는 돈을 둘러싼 몰락의 연대기를 그리면서 돈 대신 자존을 지키는 게일 해리스와 플레처 체이스를 은근슬쩍 추켜세운다. 그게 말로는 쉽지만 행하기 어려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