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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당신도 우리 편으로 들어오라고 권하는 목소리

등록 2018-01-08 19:42수정 2018-01-08 21:12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마음 착한 영화’가 고정시킨 시간
‘다음세상’ 전망은 다른 영화의 몫
영화 <1987>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1987>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무서운 속도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는 이상하게도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 영화 곁에서 겸손하게 꾸준한 흥행세를 보이는 <1987>에 대해서는 너도나도 한마디 이상씩 적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이건 친구를 극히 일부만 두고 있는 내 페북 네트워크의 한계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온라인의 반응이 오프라인의 그것과는 온도 차이가 있는 거라고 짐작해본다.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반응은 흥미롭지만 일부 비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영화에 나오는 최 검사의 대사, ‘서울대 다니는 아들이 죽었는데 시신 화장에 동의하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를 두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타박하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이다. 누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가로 경쟁하듯이 평가하려 드는 이런 태도는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구나 실감하게 한다.

영화 <1987>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1987>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그런 비판보다 나는 페북 친구인 촬영감독 박홍렬의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1987>은 마음이 착한 영화다. 만든 사람들, 참여한 배우들, 역사의 변화를 믿는 관객들. 모두의 마음이 보이는 따뜻한 영화다. 그러나 착한 마음이 시간과 이미지를 고정시켜 버린다. 고정된 이미지는 영화가 갖고 있는 내재적 힘을 사라지게 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이 구분한, 공간으로 나눠진 시곗바늘의 간격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 저편에 은밀하게 잠재해 있는 실상이다.” 좀 어렵고 관념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내 식으로 풀어 말하면 <1987>은 우리 편을 확인하는 영화이고 당신도 우리 편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영화이다. 그게 지금의 시대정신이라고 뜨거운 목소리로 말하는 영화이다. 그다음의 세상에 대한 전망과 성찰은 또 다른 영화의 몫일 거라고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생각한다.

영화 <1987>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1987>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개인적으로 작년 한국 상업영화의 수준이 최악이었다고 보는 나는 <1987>을 보며 그래도 누군가는 수준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라고 안도했다. 전설적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이래 후속 작품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장준환 감독이 그간 자기 재능을 잘 벼려왔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역사적 사건의 조각들을 모자이크하듯 다양한 인물들의 연쇄를 통해 박력 있게 조감하는 중반부까지가 특히 압도적이었다. 약간의 로맨스와 이별의 파토스를 결합해 후반부를 끌고 가고 주인공이 거리시위에 뛰어드는 결말로 맺은 것은 대중오락영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또 하나, 박찬욱의 <아가씨>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등장했던 김태리는 이 영화에서 한국 영화의 새로운 주역이 되었음을 당당하게 선포한다. 나는 한 신인 배우가 삽시간에 한국 영화계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이런 사건을 최근 십여년간 별로 본 적이 없다. 역사의 주변부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제든 일시적으로라도 중심에 설 수 있는 필부들의 잠재력을 그는 가냘픈 자신의 육체를 통해 영웅적으로 웅변한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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