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감독의 두번째 장편 영화 <초행>은 올해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고 얼마 전 끝난 남미의 가장 중요한 영화제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국제경쟁부문 각본상을 받았다. 이 영화가 제작될 때부터 주목했던 나는 김대환의 재능이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젊은 감독답게 현장에서 틀을 정하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에 모험을 거는 패기가 있는 한편, 젊은 감독답지 않게 신중한 관점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의 불우를 다루되 징징대지 않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응시하는 뚝심이 있다.
7년째 연애하고 있는 수현(조현철)과 지영(김새벽)은 학원 미술 강사와 방송사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직업 때문에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 집들이 인사차 찾아간 지영의 집에서 두 사람은 지영의 어머니가 결혼을 강권하는 잔소리를 하자 난감해한다. 그의 잔소리에는 결혼 문제뿐만 아니라 자식의 삶의 안위를 못 미더워하는 총체적 불신이 있다. 사정은 수현의 집 쪽이 더 복잡한데 수현의 부모는 별거 중이며 칠순을 맞아 찾아간 수현의 집 생일 회식에서 수현의 아버지는 다시 난폭한 주사를 부리고 회식 자리 분위기는 엉망이 된다. 수현과 지영은 각자 자기 집안의 관성적 삶의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그걸 바꿀 수 없는 자신들의 현재 능력에 불만이다.
김대환 감독의 <초행>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지영의 본가 인천과 수현의 본가 강원 삼척을 차례로 방문하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굵직한 줄거리는 따로 없다. 그들 각자의 본가에서 밥을 먹으며 벌어지는, 가까스로 봉인돼 있던 균열과 불화가 슬쩍 터져 나올 때 주인공들이 보이는 반응과 행동이 중요한 사건이다. 최근의 한국 독립영화들에서 나는 이렇게 먹는다는 것을 두고 섬세하게 인물들의 반응을 찍어낸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식구’라는 말의 뜻대로, 같이 밥을 먹는 공동체가 가족일진대 밥상머리에서 어쩔 수 없이 분열의 재앙을 함께 목도하며 그런 가족 공동체가 쇠락하는 정경을 이렇게 찍어내는 것은 김대환의 재능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님과 함께 정겹게 밥을 먹을 수 없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그들 부모의 잘못도 아니다. 젊은 주인공들과 그들의 부모는 모두 그들이 장착하지 못한 삶의 가치로 인해 방황하며 결혼이라는 낡고 완강한 제도의 가치 앞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주인공은 그들 부모의 모습에서 가족의 미래상을 꾸미는 데 있어서 배울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김대환 감독의 <초행>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제공
물론 영화는 잿빛 전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그들의 집에 배달된 중국음식을 남녀 주인공이 맛있게 먹는 장면에서 나는 감동했다. 스포일러라 밝힐 수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어떤 싱그러움을 느끼게 된다. 현실이 이렇다 저렇다 해도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젊고 상식이 있으며 그들과 같은 젊은이들의 기운과 선의에 따라 우리 사회도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