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규의 장편 데뷔작 <폭력의 씨앗>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과 배급지원상을 받은 작품이다. 11월5일 현재 관객 수는 천 명이 채 안 되지만 막 익기 직전의 과일과 같은 싱그러움이 있다.
등장인물의 곁에 밀착해서 줄곧 따라다니는 들고 찍기 스타일로 유명한 예술영화계의 슈퍼스타 감독인 다르덴 형제가 없었으면 어떻게 찍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 한국 독립영화들이 지난 몇년간 꽤 있었다. 이 영화 역시 비슷한 스타일로 일관한다.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한 주인공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하는 전개와 맞물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고구마를 백 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영화는 군복무 중인 주인공 일병 주용이 단체 외박을 나왔으나 부대 내 가혹행위를 병사 누군가가 간부에게 고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맞는 곤경을 다룬다. 고발자로 의심받는 주용의 후임병 필립은 자신이 고발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하는데 여하튼 주용은 선임자에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플롯이 전개됨에 따라 군내 내 폭력과 주용의 가족 관계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나는데 주용은 거기에 응전할 실력이나 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주용은 우왕좌왕하며 오직 분노만을 표출할 수 있을 뿐이며 그의 후임병 필립도 조금씩 제정신을 잃는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일직선으로 쭉 흐르는 플롯에 등장인물의 심리적 고양이 느껴질 겨를이 없고 상황의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것은 젊은 감독이 보일 수 있는 순진한 치기라고 생각했다. 정직하지만 다소 비관적인 이 접근법은 현실을 재창조하는 게 아니라 모방하는 일차적 리얼리즘의 결과물일 수 있다. 두 번째로 영화를 봤을 때 이런 식의 반응 역시 관습적인 수용일 수 있다고 반성하게 됐다. 이런 유형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폭력의 씨앗>이 특이성을 보이는 것은 주연배우들의 굉장한 에너지다. 특히 주용을 연기하는 신인배우 이가섭은 가냘픈 인상과는 달리 근기 없는 젊은이의 초상 이면에 엄청난 폭발력의 분노를 장착한 인물로 잘 어울린다. 길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모두 ‘헬조선’ 사회의 멍에를 짊어지고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면서 박박 기며 살 거라는 어른들의 선입견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눈빛만으로 섬찟하게 만드는 반역의 기운이 있는 것이다.
십수년 전에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가 나왔을 때 나는 장차 윤종빈이 한국의 스필버그가 될지도 모른다고 썼다. 얼마 전 우연히 윤종빈 감독을 만났는데 그가 이 평을 기억하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작은 저예산 독립영화에 대해 그런 평을 써서 신기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 영화, <폭력의 씨앗>의 감독과 주연배우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