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의 <여배우는 오늘도>는 그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만들었던 단편 세 편을 묶은 연작 장편이다. 나는 그중 첫째와 둘째 단편을 이미 아시아나 단편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봤다. 지난주 개봉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3막으로 구분돼 있는 이 장편 버전에서 셋째 단편, 곧 결말부에 해당하는 3막을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문소리가 장례식장을 찾아 벌이는 내용으로 그려져 있는데 오래전에 함께 작업했던 감독이 그 후 새 영화를 찍지 못하다가 사망하자 조문객이라고는 한때 친구였던 무명의 남자 배우밖에 없는 그 감독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3막의 내용이다. 우스꽝스럽게 전개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반전이 일어나 살짝 감동을 받게 된다.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지만 <여배우는 오늘도>는 재미와 감동은 규모와 상관없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지난 몇 달 내가 본 대다수 한국 상업영화에 비해 이 영화는 꿀리지 않고 더 재미있는 대목도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인 문소리는 대다수 관객이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문소리의 일상으로 착각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세계적인 여배우’가 마음에 드는 배역이 적은 한국영화계의 각박한 현실에 치이고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딸이자 며느리로서 치러야 하는 직장인 여성의 피곤한 일상에 지쳐가는 삶을 연기하고 연출한다. 영화의 1막과 2막에 문소리가 메이크업하는 장면이 나오고 2막과 3막에는 선글라스를 쓰는 장면이 있는데 자신을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강박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그런 문소리의 바람과는 달리 주변의 지인이나 팬을 자처하는 인간들은 기어코 문소리한테 억장이 무너지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 모습을 일정한 거리를 갖고 카메라가 지켜볼 때 유머가 터져 나온다.
풍자의 형태로 조형된 이 유머가 문소리의 이야기로 극화된 소재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이것은 여배우의 일화이자 한국영화계의 어떤 단면을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하고 상호 배려의 예의가 실종돼버린 우리 사회의 타락에 대한 경쾌한 스케치이면서도 잘하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되는 직장인 여성의 삶에 대해 어떤 보편적인 감흥을 이끌어낸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딸을 달래다가 딸로부터 지쳤으니 쉬고 싶다는, 자신에게 하는 것 같은 말을 듣는다. 이 열패감을 구원하는 것은 어쨌든 예술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계기로 주인공이 실패한 영화감독의 삶을 결국 긍정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영화를 보는 우리는 타자의 삶에 대한 공감이 깔린 무한한 인간긍정의 태도를 납득하게 된다. 시종일관 낄낄대며 웃다가 결말부에 느낀 이 따뜻한 느낌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반복된 장면으로 차이를 만들어 재미를 주고 또 다른 단계의 고양된 정서로 이행하는 이 영화는 문소리가 뛰어난 관찰자라는 걸 알게 해준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