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을 보고 나는 수첩에 ‘최승호, 최승호, 최승호’라고 메모했다. 다른 말을 적을 게 없었다. <문화방송>(MBC)의 전설적인 시사 다큐멘터리 피디(PD)였던 그가 해직당한 이후 <뉴스타파>에 재직하면서 <자백>에 이어 <공범자들>이라는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빠른 속도로 만들어낸 것도 굉장한데 심지어 <자백> 이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서 놀랐다. 국정원의 간첩 조작사건을 파고든 <자백>이 악전고투하며 진실을 파고드는 호흡이라 관객도 마음을 졸이게 한다면, <공범자들>은 언론탄압의 연대기를 조망하면서 주요 사건들의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최승호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정재홍 작가의 구성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나는 주어진 소재를 이렇게 풍부하면서도 동시에 간명하게 조합하는 연출력에 탄복했다.
<자백>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범자들>에서도 최승호는 곧잘 카메라 앞에 나선다. 그는 공영언론을 망친 주요 인사들을 찾아가 직설적으로 책임을 묻는다. <자백>에서 국가권력기관 종사자들에게 최승호가 문전박대당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최승호의 단도직입 질문을 피해 한때 공영방송의 수장이었던 취재 대상자들이 쩔쩔맨다. 일부는 카메라를 피해 도망치기도 한다. 물론 그들 대다수는 자기 책임을 부인하는데, 단연 압권의 반응을 보이는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영화의 말미에 카메라 기습을 받은 그는 최승호의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 공영방송을 망친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차를 타고 사라진다. 최승호는 책임소재를 묻는 질문의 답을 얻지 못하고 거듭 취재에 실패하며, 시킨 인간이나 시키는 대로 한 인간들이나 똑같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는데도 좌절감이 들진 않는다. 그보다는 싸움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고 반전은 가능하다는 희망을 최승호의 화면 속 현존과 카메라가 거듭 확인시켜준다.
영화 <공범자들>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그리고 그 희망 뒤에 따라붙는 것은 슬픔이다. 나는 씩씩거리며 화면을 따라가다가 공영방송 조직 내에서 싸우다 밀려난 수많은 언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담담했는데 후반부에 병마와 싸우는 해직기자 이용마씨의 수척한 모습을 보곤 어쩔 수 없이 울음이 터졌다. 그는 지난 정권의 두 대통령과 그들에게 굴종한 타락한 언론인 선배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싸웠다는 기록을 남긴 게 어디냐고 자신을 망가트린 세월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이런 순결한 용기에 먹먹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이런 언론인들이 있었는데도 공영방송은 지속적으로 타락했고 정권에 과잉 충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와 같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현대 한국 언론의 역사에 남겼다. 그런 걸 생각하면 답답하고 화기 치밀지만 우리의 주인공 최승호를 보면 마음이 설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하던 날 그는 환송 인파 무리에 섞여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당당하게 질문했다. <공범자들>에는 최승호를 비롯한 언론인들의 불굴의 기개가 넘친다. 대다수의 ‘기레기’들 가운데 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나라는 망할 것 같지 않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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