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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강원도의 옥자’가 더 황홀했던 이유

등록 2017-07-10 16:21수정 2017-07-13 18:22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영화 <옥자>. 넷플릭스 제공
영화 <옥자>. 넷플릭스 제공
지난 주말 남들보다 좀 늦게 봉준호의 <옥자>를 보았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람들의 평을 보니 이 영화가 봉준호의 평작이니 걸작이니 살짝 설왕설래가 오가는데 난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봉준호가 현존하는 한국의 영화감독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늘 새로운 걸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건 이 영화를 통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난 이 영화에서 이야기가 한국에서 펼쳐질 때 훨씬 재미있었고 이상하게도 미국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좀 지루했다. 외국인 배우들이 나오는 단락들도 마찬가지였다. 틸다 스윈턴이 일인이역을 하는 미란도 그룹의 쌍둥이 자매 대표는 그들의 물리적 행동들이 독특한 덕분에 각이 선명히 잡힌 캐릭터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머지 캐릭터는 다들 전형적으로 보였다. 그들 대다수가 약간 코믹한 캐릭터인데도 그랬다. 무엇보다 미국 뉴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한국에서의 묘사에 비해 공간이 평면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규모 있는 군중 장면이 펼쳐지고 심지어 수많은 ‘옥자들’이 나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음산한 재난 장면을 보고 있어도 그랬다.

그에 반해 강원도 산골에서 미자가 여동생 같은 옥자와 할아버지 희봉과 함께 사는 모습을 담은 초반부나, 미자가 미란도 그룹 종사자들에게 사로잡힌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추격전을 벌이는 중반부 장면은 황홀했다. 공간이 평평하지 않고 깊은데다 큰 사건 묘사 여부와 상관없이 장면의 전경·중경·후경 각 층위에 촘촘하게 시각적 정보들이 박혀 있어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소란스럽게 장중한 시각적 화음을 자아냈다. 봉준호는 <설국열차> 이전의 전작들에서 매우 한국적인 공간들을 다른 감독들이 전혀 다루지 않았던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데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했던 감독이다. 그게 아파트 베란다나 지하실이든, 시골 논두렁이든, 한강 다리 밑이든, 달동네 옥상이든 간에 겉으로 평화롭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공간을 봉준호가 접근하면 전혀 다른 시각으로 우리 삶의 희비극을 재설정해서 보게 되는 마법이 일어났던 것이다.

크레딧이 나오기 직전, 미자와 희봉 할아버지가 밥을 먹고 있는데 새끼 돼지가 그 옆에서 알짱거리다 눕고, 화면 끝 창가에선 옥자가 거대한 체구를 보이며 서 있는 <옥자>의 끝 장면에서 난 다시 봉준호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자그마한 안도감을 가졌다. 봉준호가 미국의 자본으로 창작의 자유를 누리면서 영어를 쓰는 배우들을 거느리고 다국적 스태프를 지휘하며 미국 기준으로는 대작도 소품도 아닌 제작 규모로 영화를 만들어 세계적인 감독의 길을 향해 가는 것에 불만은 없지만, 아울러 극장 개봉 중심의 유통 채널을 바꾸는 데 일조하는 것도 환영하지만, 한국의 지형지물과 한국적인 캐릭터들로 다른 문화권의 관객에게 매혹과 공감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명성을 글로벌화하는 것도 더 자주 시도해줬으면 한다. 봉준호가 보여주는 한국적 공간의 영화적 재해석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관련영상] | <한겨레TV> 대중문화 비평 ‘잉여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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