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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전주국제영화제가 확인해준 ‘영화의 힘’

등록 2017-05-08 16:43수정 2017-05-08 20:22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가 6일 폐막식을 치르고 10일간의 일정을 끝냈다.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면서 주제넘게 전주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일을 겸하는 필자는 축제가 끝나면 산후우울증 비슷한 증상이 도져서 몸과 마음이 욱신거린다. 동시에 잔치 도중 있었던 벅찬 만남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마음에 퍼져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해지곤 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투자 지원하는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 가운데 한 편인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가 처음 상영됐을 때, 이 영화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었던 필자는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에 객석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슬쩍 들어가 보았다. 극장 복도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객석에서는 계속 관객들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들은 일제히 터져나오는 통곡이 아니라 울음을 가까스로 참다가 내는 흐느낌이었는데 객석 여기저기서 굽이굽이 돌아 내려오는 샘물 소리처럼 작지만 강하게 리듬을 타고 퍼져 나갔다.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는 투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필자는 <노무현입니다>의 이창재 감독이 촬영 도중 원래의 콘셉트를 버리고 정치인 노무현이 여당 대선후보가 되는 극적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그게 가능하도록 만든 시민운동을 소재로 삼았을 때, 내심 못마땅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직간접적으로 원래의 콘셉트, 정치인 노무현의 공과를 다루되 그의 성공과 실패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성공과 실패이기도 하다는 걸 드러내는 콘셉트의 초심을 종용했으나 감독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 작품 결과를 필자가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지만 그날 극장에서 수많은 관객이 흘린 눈물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전된 것과 비슷한 충격을 줬다.

영화평론가 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영진.
그 다음날 늦은 저녁 필자는 젊은 감독들과 함께 뒤풀이 술자리를 가던 중 야외상영장을 찾아 스태프들을 격려하고 돌아가던 김승수 전주시장과 마주쳤다.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 중 한 편인 <초행>을 연출한 김대환 감독이 김승수 시장에게 같이 한잔하자고 당돌하게 제안했다. 그가 나중에 들르겠다고 했을 때 그냥 인사치레인 줄 알았으나 그는 실제로 우리의 뒤풀이 장소를 찾아와 열 차례 건배를 나눈 후 계산하고 돌아갔다. 그날 대화에서 김승수 시장은 수년째 전주 서노송동에 있는 낡고 오래된 집창촌을 예술가들이 꾸미는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지휘하면서 겪은, 누아르 영화의 소재를 방불케 하는 일화들을 털어놓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오랫동안 외부인들은 들어가지 못했던 그 집창촌 내부에 김승수 시장이 들어가 처음 봤던 것은 집 내부에서 자라고 있던 오동나무였다. 오동나무는 딸이 자라 시집갈 때가 됐을 때 아버지가 튼튼한 가구를 짜주려고 심는 나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마음으로 심은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정작 그곳에는 누군가의 딸들이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이 슬프다고 그는 말했다. 필자는 그 오동나무 일화가 선한 마음과 희망을 상기시키는 예술에 관한 거대한 메타포로 느껴졌다. 이날 김승수 시장은 “예술은 힘이 세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날 자리에 있었던 젊은 영화인들은 그 말을 주문처럼 받아들였다. 힘들기는 하지만 때로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현실을 바꿀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확인한 믿음이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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