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이제까지의 홍상수의 영화 가운데 가장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개인적인 연애사 경과가 어떤 것이든 간에 이 영화는 감독과 배우가 사랑했을 때 화면에 어떤 기운이 남는지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짧은 1부와 긴 2부가 펼쳐지는 동안 김민희가 연기하는 여배우 영희는 유부남 감독과 사랑한 대가로 고통을 받고 있다. 1부의 독일 함부르크에서 영희는 사랑하는 남자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태로 곧잘 외롭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영희의 주변에는 그의 상태를 함께 걱정해주는 지인들이 늘 있다. 한국 사람들 습성이 그렇듯이 가끔 지나치게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참견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영희의 아픈 상태를 진심으로 지켜봐주려 한다.
그래도 영희의 외로움과 결핍이 해소될 리 없다. 1부에서 영희는 아는 선배와 함께 먹고 자고 돌아다니는 가운데 스스로 느끼는 감정적 허기를 반영하듯 어지간히 먹어댄다. 강릉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담은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희는 늘 배고픈 상태다. 그런 영희가 식사자리에서나 술자리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은, 이제까지 홍상수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상태가 대개 그랬지만, 감정의 고저가 심하다. 아니, 조금 더 심하다. 평소에는 상대방에게 공손한 예의를 잃지 않지만 술자리에선 느닷없이 상대의 허술한 말실수를 지적하는 공격성을 보인다. 가만 생각하면 평소에도 그렇다. 다소곳한 체념으로 위장하지만 지인들이 자기 사생활에 주제 넘게 가르치려 들 때 영희는 단단하게 응수한다.
결국 어떤 우정을 확인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피곤하다. 아무도 자기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절대 고독, 사랑의 충족이 영원이 연기되는 결핍 상태, 주인공 영희가 그런 감정의 허기짐에 허덕일 때 화면에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이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1부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 무명의 남자는 영희 일행에게 다가와 시간을 물으며 횡설수설한다. 그 다음에 영희가 그를 봤을 때 영희는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1부의 끝에서 영희가 일행과 해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 문제의 그 무명씨는 잠시 무리와 떨어진 영희를 들춰 업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2부에서 이 남자는 또 등장한다. 영희가 묵는 강릉의 어느 콘도에서 이 남자는 열심히 베란다의 창문을 닦고 있다. 그 다음에는 영희가 선배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베란다에서 마치 호위무사처럼 서 있다. 이 남자가 영희의 오지 않는 연인, 유부남 감독의 얼터 에고인지 또는 유령인지 잘 모르겠지만 영희는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론적 고독을 지극히 염려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걸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천연덕스럽게 화면에 그 무명의 남자가 그토록 등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김민희의 놀라운 연기력이 폭발하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감독이 배우에게 바치는 연서이자, 사랑이라는 결핍을 견디는 인간의 초상이기도 하다.
김영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