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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자백’을 살린 것은 후환에 맞선 카메라의 힘

등록 2016-04-12 18:59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1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는 28일 개막한다. 여기 수석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리 올해의 화제작을 소개해드린다. 이미 남은주 기자가 <한겨레> 지면에 쓴 바 있지만 최승호 감독의 <자백>이 바로 그 영화다.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사건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3월30일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도 단연 화제였다. 전주에서도, 서울에서도 기자들은 이 영화가 과연 전주에서 무사히 상영될 수 있는가, 후환은 없겠는가를 물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예전 같으면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소화할 수 있었던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최승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조차 영화제가 다치지 않겠느냐고 염려할 만큼 민감한 것이 돼버렸다. 기자회견장에서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김승수 전주시장은 영화 표현의 자유는 전주 시민과 관객을 위한 것이며 어떤 외압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백>을 처음 시사했을 때 아직 후반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나중에 넣게 될 내레이션을 설명하느라 옆에 있었던 최승호 감독에게 필자는 한국의 마이클 무어 같다고 농담을 했다. <볼링 포 콜럼바인>과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마이클 무어는 대선배인 배우 찰턴 헤스턴을 찾아가 총기 산업을 옹호하는 이유를 다짜고짜 묻고 황급히 퇴장하는 찰턴 헤스턴에게 총기 사고로 숨진 아이의 사진을 던진다. 쇼맨십이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권력 편에 선 이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대담성으로 명성을 얻었다. <자백>에서 최승호와 그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유우성씨 사건을 취재하면서 감독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쪽에도 거침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의견을 묻는다. 언론이 거의 취재하지 못하는 권력층에게 조금도 꿀리지 않고 돌진하는 이 배짱은 끈질긴 취재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쇼맨십처럼 보이겠지만 놀랍게도 최승호의 카메라는 재판 결과를 뒤집을 증거를 담는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잘 알려진 대로 유우성씨 사건은 최종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는데 이는 중국을 넘나들며 직접 현장을 취재한 최승호의 카메라 덕분이었다. 유우성씨가 북한을 넘나들었다고 주장하며 국정원이 제출한 중국 당국의 서류가 위조되었음을 최승호의 카메라는 그곳 관리들의 증언을 통해 확증한다. <자백>은 그 외에도 간첩 혐의를 받고 자살한 또다른 탈북자의 과거 행방을 좇으며 조작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찾아낸다. 말미에는 1975년 중앙정보부가 조작했고 훗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 받은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을 일본으로 건너가 만나기도 한다. 기자의 펜과 같은 이 능동적인 카메라의 역할은 눈부시다. 저널리즘의 영역이 갈수록 왜소해지는 현실에서 최승호의 카메라는 기록하고 관찰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사실의 맥락적 구성에 집중한다. 팩트로 국가기관의 위증을 반박하고 그 팩트들을 모아 진실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수년간에 걸친 그 진실 찾기 여정은 잠시 동안이지만 정의가 늘 패배하는 건 아니라는 희망을 준다. 전주에서, 아니면 나중에 일반 상영관에서 꼭 보시길 권한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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