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이웃집에 신이 산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
자코 반 도마엘의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보면 감독이 남자들을 이 지구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걸 알 수 있다. 그 남자들이 그나마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건 여자들의 하해와 같은 마음씨 덕분이다. 같은 남자로서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일리 있고 재미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판타지 영화에서 브뤼셀에 살았던 것으로 설정된 창조주 하나님은 억압적 가부장의 최고 지존이다. 그는 아내와 딸을 들들 볶고 서재에 틀어박혀 인간들을 괴롭힐 궁리만 한다. 아버지를 혐오하는 그의 딸 에어가 출입금지인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컴퓨터로 지구상의 인간들에게 사망예정일을 전송한다. 죽을 날짜를 받아든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을 재설정한다. 죽음에 대한 외경과 두려움이 없어진 인간들은 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매우 불경하고 도발적인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삶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부정하지 않는데, 이 기적도 자기를 배신한 딸 에아를 찾아 하느님이 인간세상에서 악전고투 추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일어난다. 기적은 신이 부재중일 때 일어나고 이 기적의 매개자들은 모두 여자들이다. 에아가 새로운 복음을 쓰기 위해 고른 여섯명의 사도들 가운데 다섯명의 남자들은 여자들을 잘 만나 팔자를 고친다. 그들 중 유일한 여자인 마르틴은 최상위 계층의 불행한 사모님이며 그녀에게 행복을 주는 이는 인간 남자가 아니다. 그녀는 동물원의 남자 고릴라를 만나 한 눈에 반하면서 행복을 얻는다. 그들 중 가장 어린 소년 윌리는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억압적인 부모의 견제에서 풀려나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데 그건 여장을 하고 여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감독이 이 정도로 여성숭배주의자라면 할 말은 없다. 하느님을 포함해 영화 속의 남자들은 대화에 서투르며 이심전심이라고 착각하고 저지르는 건 모두 일방적인 행동이다. 그에 반해 여자들은 가만히 남자들의 반응을 견디고 지켜보며 슬픈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다. 그들은 남자들이 집행하는 비극의 목격자들이다. 영화 속의 한 에피소드에서 한 쪽 팔이 의수인 우울한 미녀 오렐리는 죽을 날짜를 앞두고 암살자로 살아가는 프랑소와의 총을 맞고도 멀쩡하게 살아서 걸어간다. 프랑소와는 기적을 봤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녀를 따라가고 사랑에 빠진다. 나중에 오렐리는 왜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프랑소와에게 묻는다. 프랑소와는 내 총을 맞고 살아난 당신을 따라가다가 당신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맡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오렐리는 그렇다면 오세요, 라고 그의 사랑을 허락한다.
동화적인 구성으로 익숙한 구성을 돌파해가는 이 매력적인 판타지 영화에서 인상적인 유머가 하나 있다. 60년도 넘게 죽을 날짜를 받아둔 어느 청년은 장난삼아 매일 자살을 시도한다. 당연히 그는 죽지 않는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지나가던 행인이 그에게 깔려 죽는 식이다. 이 청년은 신이 나서 그 짓을 계속한다. 남자들은 저지르고 여자들은 지켜보며 견딘다. 인간 역사의 대다수가 이렇게 진행돼 왔다는 걸 새삼 느낀다. 철없는 우리 남자들에게 강력추천하는 영화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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