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몇년 전 일본 여행을 하다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다음 날 묵고 있던 호텔 프런트로부터 내 지갑을 맡아놓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신용카드는 놔두고 현금만 쏙 빼간 상태였다. 나는 지갑만이라도 찾아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일본인 지인들이 안 됐다는 듯 말했다. 일본에선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줄 때 원래 상태 그대로 돌려주며 돈을 뺀 채로 돌려주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공공의식은 놀라운 데가 있다. 지하철 등의 공공장소에서 휴대폰을 하지 않는 것을 비롯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하는 일본 사회의 일상적 분위기는 버스나 지하철, 거리에서 늘 시끄러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신기할 따름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꼴은 비슷할 테지만 이 영화 속 사람들은 상처와 상실감과 슬픔을 조용조용 처리한다. 부모가 이혼하고 자식들을 방기한 상태에서 서로 보살피며 자라나 어른이 돼서도 자기들끼리 함께 잘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는 겉과 속이 다 건강하다. 상처가 있더라도 굳이 내색하려들지 않고, 내색하더라도 다른 걸로 능히 보완할 만큼 그들의 내면은 튼튼하다. 아버지가 두 번째 아내에게서 낳은 배다른 여동생 스즈를 세 자매가 자기들 집에 들이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죽음을 포함해 여러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 모든 통과의례가 요란하지 않고 잔잔하다.
물론 영화니까 그럴 수 있다지만 동시대 한국영화는 비슷하게 선의를 다룬다 할지라도 훨씬 요란하지 않은가. 한국영화에서 인간의 선의를 다룰 때 관객을 펑펑 울리는 건 필수 장착 아이템이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왜 이렇게 고요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지 복기해봤더니, 이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상처의 단초가 될 만한 사소한 일상적 사건에 훨씬 민감하다. 영화 속 네 자매의 일상은 여느 사람들처럼 자잘한 다툼들의 연속으로 채워지지만 상대에게 비수가 될 만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서 나왔을 때 그걸 처리하는 속도가 빠르다. 제일 막내인 스즈가 특히 그런 일에 예민하다. 스즈가 아이들과 불꽃놀이를 마치고 학교 남자친구와 돌아오는 길에 자기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난 내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그러자 상대편 사내아이는 삼형제 중에 막내 아들로 태어나 딸을 바랐던 부모님에게 실망을 줬단 얘기를 한다. 남에게 상처를 준다고 믿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아이들의 이 대화 장면은 아름다웠다.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는 등장인물들 모두 예쁘고 그들이 사는 풍경도 근사하지만 그게 감정의 설탕가루로 포장된 가식덩어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감독은 전력을 다해 인물들의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포용하려 애쓴다는 인상을 준다. 등장 인물들의 상처는 문득 드러나고 재빨리 누군가가 그 상처를 덮어주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무한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 낡고 오래된 마을의 풍경이 아름답듯이 인간들의 묵은 관계도 상처를 보듬을 만큼 성숙해진다는 걸 이 영화는 낮은 목소리로 찬미한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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