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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마음 잡아끈 이병헌의 연기력

등록 2015-11-24 19:16수정 2015-11-24 21:48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내부자들
주연배우가 이병헌이라는 이유로 관람을 꺼리는 아내를 반강제로 꼬드겨 모처럼 부부동반해 <내부자들>을 봤다. 아내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정치깡패 안상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화면을 외면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영화 속에서 안상구는 유력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권력의 하수인들에게 이용당한 후 버려진다.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한 그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는 내 옆자리 관객인 아내의 마음을 확 잡아끌었던 것이다. 그는 권력자 옆에서 권력을 대리투사하며 엄한 마음을 먹었다가 배신당하고 복수를 꿈꾸는 저렴한 내면의 소유자다. 놀랍게도 사적인 복수욕에 사로잡힌 그에게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은 꽤 빨리 온다.

필자는 그동안 이병헌이 연기를 잘 한다는 평가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생활형 연기를 하기보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관객이 알면서도 넘어가주는 테크니션에 가까웠다. 올해 개봉했던 <협녀>에서도 이병헌의 연기는 뛰어났으나 계산된 연기라는 저항감도 동시에 줬다. <내부자들>에서 필자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 전력을 다해 연기하는 밀도가 어느 경지를 넘어서서 맡은 인물에 완벽하게 밀착한 끝에 관객을 압도한다. 상대배우 조승우도 기세가 대단했지만 이병헌은 내뿜으면서 동시에 포용하는 기운으로 화면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안상구가 아니라 안상구가 된 이병헌이다.

<내부자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기운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려준다. 조 상무 역으로 나오는 조우진이라는 배우는 몇 장면 나오지도 않고 변변한 대사도 얼마 없는데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금방 존재감을 새겼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선악 이분법 구도가 너무 단순하고 굵은 이 영화에서 권력자들인 악인들은 인간적 매력 따위 풍길 사이 없이 말과 행동이 추하다. 악인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공식은 이 영화에서는 쓸모가 없다. 누가 더 나쁜가 경쟁하는 듯 이어가는 악인들의 면모는 관객의 예상수위보다 높다. 악행의 전시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할 수 있다는 건 배우들의 기량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표시일 것이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내부자들>은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확 나뉘어 대결하는 영화인 척 하지만 실은 두 주인공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 악의 전염도를 테스트하라고 권유하는 영화이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깡패 안상구와 조승우가 연기하는 검사 우장훈은 우리 안의 그늘에 있는 영혼을 닮았다. 그들은 기득권층을 욕하지만 실은 열심히 따라하고 싶어하는 우리 내부의 악마들의 현현이다. 그들이 결과적으로 정의의 편에 서게 되는 반전은 여하튼 통쾌하지만 뒤끝이 남는다. 그들은 언제든지 악의 편에 설 수 있었고 앞으로도 설 수 있다. 나쁜 놈들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있다. 이병헌은 특히 본디 선하지는 않았으나 상황에 따라 좋은 편에 서게 된 인물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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