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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이런 푸대접, 화병이 날 지경

등록 2015-07-07 20:47수정 2015-10-28 16:00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소수의견
<소수의견>을 보고 새삼 한국영화의 미래는 어둡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누가 봐도 완성도에 흠집이 거의 없는 이 영화가 홍보 규모와 배급 상황 때문에 흥행하지 못한다면 감독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마음은 화병으로 찢어질 것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제 감독과는 그가 피디 시절에 오며 가며 눈인사를 한 기억이 있다. 그가 연출에 꿈을 둔 줄 몰랐다. 아마 오랜 기간 마음으로 절치부심 수백 번 영화를 찍었을 것이다. <소수의견>이 당한 불우가 이 시대의 불우와 직결되는 것 같아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아팠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가 제출한 정의에 관련된 명제는 이 사회에서 소수의견으로 묻혀버렸다.

극장 안의 불이 켜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관객들이 나가면서 한두 마디씩 했다. 나는 무심한 척 일반 관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가 같은 기간 내에 상영되는 <연평해전>과 비교하며 이 영화가 묻히는 것에 혀를 끌끌 찼다. 관객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맨 마지막에 일어서는데 나가던 바로 앞 중년여성 두 명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래서 집안에 판검사가 있어야 해.” “호호호. 그러게 말이야.” 실용적이며 또한 무심한 농담이었다. 배급 규모와 상관없이 관객들의 이런 반응은 <소수의견>이 취한 균형감각, 또는 절제와 상관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견>은 정의가 승리하는 결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부조리한 권력에 패배하는 얘기도 아니다. 권력의 하수인들에게 한 방 먹이기는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들의 논리대로 흘러간다는 암시가 깔리고 윤계상이 연기하는 주인공 변호사는 담담하게 제 갈 길을 계속 간다. 지방대 출신의 국선변호인으로 사다리의 꼭대기에 애당초 올라갈 마음도 없이 대충대충 살던 그가 지배 엘리트들과 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그가 변호를 맡은 사건의 당사자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버지들은 법정에서 인간적인 진심을 담아 간접적으로 화해한다. 그들은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아들은 영화 속 대사에 따르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서로 해코지하는 상황에 처했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민초들은 무지하지만 선량하고 불우하다. 권력의 대리인들은 교활하다. 지식 엘리트들은 권력에 봉사하는 길과 대드는 길 사이에서 갈등한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들은 대드는 길을 택한다. 그럼에도 세상의 기존 질서는 흘러왔던 대로 흘러간다. 이 시대에 거의 사멸돼 가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픽션인 이 영화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여하튼 관객들은 정의가 승리하는 판타지를 원한다. 개연성이 약하더라도 오락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용인되는 판타지 말이다. <소수의견>은 정직함을 택함으로써 오락적 가능성을 부분적으로 포기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김성제 감독의 정직한 균형감각을 존중한다. 야당 대표까지 나서서 <연평해전>을 관람하고 논평을 내놓는 이 멍청한 현실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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